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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Apr 13. 2020

I의 사회, we의 사회 (2)

개인주의자 없는 개인주의 사회,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사회

(앞 글에서 계속)

https://brunch.co.kr/@jinmin111/85


폭력적이던 we의 시대

우리는 한때 엄청난 we의 시대를 살았다.

대통령이 작사 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가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며 새벽종이 울렸으니 이제 일어나 일하시라 권했고, 동네 꼬맹이들은 2루타가 될 건지 3루타가 될 건지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저녁 6시가 되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기가 하강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그 사이에 공은 속절없이 굴러갔다. 움직이면 행여 공산당이라고 놀림받을까 봐 꼬맹이들은 차렷 자세로 서서 공이 굴러가는 쪽으로 눈알만 굴렸다. 6시에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잠시 멈췄다. 우리는 태극기 앞에서,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곤 했었다.
we의 정신이 가장 강조되는 집단인 군부가 정권을 잡았으니, 온 국민을 병장부터 말단 이등병까지 마치 군대처럼 조직해 두었다. 마침 시대는 빨강과 파랑이 선명하게 구분된다고 믿었던 냉전과 반공의 시대였다. '우리 아니면 너희'였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편 아니면 적'에 가까운 사고방식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we라는 이름으로 심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6시면 모두 얼음땡 ⓒ김보섭

온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반공과 산업화를 외쳐야 했던 병영 사회에서, 그냥 광부, 회사원, 노동자였어야 할 개인들은 산업 전사가 되어야 했고 모든 초등학교 학생들은 내 입이 조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무릅쓰고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는 이승복이 되어야 했다.

광산이 많았던 강원도 태백시에는 높이가 17미터나 되는 거대한 '순직 산업전사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데, 75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탄광에서 사고로 숨진 광부들을 '순직 산업전사'라고 추서하고 세운 탑이라고 한다. 탑문을 쓴 분은 봄처녀 제 오신다던 노산 이은상 시인인데, 탑문을 읽으면 영 입맛이 쓰다.  

"400개 광산 5만 명을 헤아리는 종업원들은 영광된 사명을 어깨에 메고 있는 고귀한 산업전사들이다. 더욱이 어두운 땅속 깊은 곳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힘과 지혜와 용기를 다하여 피땀 흘려 일하는 이들이라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병들과 더불어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거기서 일하다 불행히도 희생된 이들이야말로 나라 위해 생명을 바친 제물이라 순국의 뜻이 있는 것이니 우리 어찌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빌지 않을 수 있으랴."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병과 다름이 없다는 것까지는 어찌 넘어가더라도 나라 위해 생명을 바친 제물이라니. 내가 저 광부의 딸이었다면 탑문의 글귀들이 과연 자랑스러웠을까.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어깨에서 산업전사 같은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걷어내 드리고 싶었을 것 같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와 애도의 마음이야 그들과 내가 다를 바 없겠지만, 그냥도 안타까운데 제물로 죽어 팔자에 없던 군인으로 남은 고귀한 생명들이 나는 더욱 안타깝다. 죽어서까지 공동체의 부담스러운 시대정신에 갇혀 있는 영혼들.


죽은 자들에게도 저러했으니 산 자들에게는 오죽했으랴.

정부가 국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정부가 의식주를 세세하게 규율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른 문제다. 7,80년대 군부정권은 사람들의 의식주까지 규율하며 규격에서 벗어나지 않은 삶, 나라에서 권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할 것을 강요하곤 했다. 나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새마을 주택 1호에서(노래도 만드시고 집도 지으시고, 너무나 르네상스맨이셨던 것이다) 실제로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폈다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의 경찰들은 아버님들의 머리 길이와 어머님들의 치마 길이를 재기 위해 어깨와 무릎에 자를 들이댔고, 꼬마들은 혼분식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짝꿍이 싸 온 보리밥에서 보리를 몇 알 덜어다 내 쌀밥을 건강식으로 데코하며 푸드 스타일리스트 꿈나무로 자랐다. 어린 나는 꿈나라에 가 있어 몰랐지만, 82년까지는 통금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이 신데렐라가 되어 열두 시 종이 치기 전에 귀가해야 했던 것이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당시에 우리나라에 착륙하지 못한 국제선 비행기는 일본이나 홍콩, 하와이, 알래스카로 회항하는 경우가 많았다니 그것 참 낯설고 신기하고 어처구니 없다.

지나간 시간은 늘 그립고 따스하게 느껴지지만,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분명 무지개처럼 다양한 인간들로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참 폭력적인 시간들이었다. 밥 먹는 것까지 애국적으로 먹어야 하다니.

쌀 세 알에 보리 한 알이 권장되었다 ⓒ tvN 수요미식회


개인화된 시간 속의 아직 개인화되지 못한 우리


시간은 흘러 우리는 점점 개인화된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팟캐스트라는 것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의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을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굉장히 인상적인 통찰로 시작했다. 그 핵심은, 팟캐스트는 사람들이 각자 개인화된 시간에 받아들이는 새로운 방식의 매체라는 것. 땡전뉴스라는 슬픈 용어를 우리가 기억하듯, 소설가는 "지난 시대의 시간이라는 것은 모여서 하는 매스게임처럼 집단화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어떤 이야기가 집단적으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폭력적으로 잡아먹으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개인에게 유연하게, 선택적으로, 때론 은밀히 가 닿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개인들이 전파에 자기만의 목소리,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실어 나르는 시간을 살고 있다. 옆집 삼식이가 라면에 뭘 넣어 끓여 먹는지, 앞집 삼순이가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직접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시간은 개인화되었으되 그 안의 사람들은 아직 충분히 개인화되지 못했다. 앞글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individualism), 즉 독립적인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가치를 두는 이 멀쩡한 입장에 부정적 뉘앙스를 강하게 버무려 놓았다. '나만 중요하고 남들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을 때, 우리는 점잖은 표정을 하고 '그 사람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중요하다는 말보다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말이 왠지 더 정답 같고, 멋있어 보인다.


거대한 병영 사회를 만들었던 막사의 장막을 우리 손으로 걷어내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 파편들이 깊이 남아있다. 짬밥, 군번, 고문관, 각개전투, 깔깔이, 관등성명 등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든 군대 용어들이 여전히 많을 뿐 아니라 (나는 이 단어의 대부분을 대학 신입생 시절에 듣고 체험했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까라면 까야하는 군대 문화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뭘로 뭘 까라고요?) 학교 선배들이 얼토당토않게 소위 '군기'를 잡다가 사람 잡는 가슴 아픈 일들도 늘 있어 왔다. 학교에도 회사에도 사회에도, 오래된 군대 문화의 그늘은 여전히 그놈의 밤송이처럼 따갑게 드리워져 있다.

최근에 가장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단어는 '스펙'이라는 단어다. 2004년에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말이니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단어인데, 위풍당당하게도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삶을 통째로 삼키고 있다. 삶이란 것이 알고 보면 그저 죽는 날까지 스펙 쌓기의 여정인 것 같고,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리디 어린 학생들이 고스펙을 향한 질주를 시작한다.

과 to the 외 파.워.스.펙. (유쾌하기 그지없는 이 광고의 작성자를 찾습니다.)

그런데 이 스펙이라는 단어는 specification을 줄인 말로, 실은 기계나 상품, 무기의 사양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 총은 얼마나 빠르게 연사가 가능하고,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얼마고, 이런 걸 설명하는 말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스펙을 쌓는다는 건 스스로를 팔리기 위한 상품, 혹은 전쟁에 쓰일 무기로 규정하는 걸 저변에 깔고 하는 얘기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상품이나 무기로 규정하는 말이라니. 원래부터 그다지 정이 가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배경을 알고부터는 정이 급속도로 뚝 떨어졌다.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공자는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려면, 일단은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 스펙이란 말이 널리 통용되는 사회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는 사회,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기 힘든 사회다. 아버지는 무기, 자식은 상품인 사회.

한 사회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단어를 보면 그 사회를 움직이는 정신이 어떤 것인지 보일 때가 많다. 스펙이라는 단어가 큰 거부감 없이, 긍정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쓰이는 사회는 굉장히 차가운 피가 흐르는 자본주의적 사회이거나, 인간을 성능에 따라 늘어놓고 줄 세우기 좋아하는 사회다. 성공의 사회적 의미가 아주 담백하게 돈과 출세로 귀결되는 사회. 전 국민이 하나의 거대한 사다리에 모두 함께 매달려 층층이 올라가야 하고, 모두가 바라보는 사다리 위의 그곳을 바라보지 않고 그 옆의 별을 바라보며 멍 때리거나 발아래 들꽃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면 왠지 그 사람은 한심한 낙오자로 평가받는 사회.

그래서 나는 스펙 쌓기라는 비인간적인 단어를 굳이 널리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장 촉촉하고 말랑말랑해야 할 나이에 스펙이라는 비인간적인 단어로 스스로를 재단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이 스펙 말고 경험을, 능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빛나는 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고스펙을 쌓으라고, 성형도 스펙이라고 압력을 가해대는 무시무시한 we가 없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정답 사회다.
어려서부터 그리 사지선다 오지선다 정답 맞히는 걸 시키더니, 어른이 되어서도 볼품없는 선택지를 주고 그 안에서 정답을 따라가라고 성화다. 생애주기별로 클리어해야 할 미션들이 주어지고, 심지어 널리 통용되는 이상적인 신체 사이즈가 있을 정도로 꽤 획일적인 기준을 가진 사회다.


미국 역시 미(美)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강한 사회긴 하지만, 내가 그곳에 가서 가장 자유로움을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어이없게도 속옷 사이즈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제법 여러 사이즈가 갖춰져 있지만, 한동안 우리나라 대다수의 속옷 매장에서 팔던 사이즈는 딱 세 가지뿐이었다. 그 안에 대충 나의 몸을 끼워 맞춰야 했다. 잘 모아서 구겨 넣든지,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어떤 여백의 미를 느끼든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사이즈를 고려해 만든 속옷들이 갖춰진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 안 작은 칸에서, 나는 몸에 딱 맞는 속옷을 처음 입어보고 너무 좋아서 춤을 출 뻔했다. 주어진 몇 안 되는 선택지 안에서 나를 조이던 물건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나에게 찰떡같이 들러붙는 물건을 찾았을 때의 그 기분이라니. 다양성이란 좋은 것, 이렇게 소박한 방식으로도 인류를 자유케 한다.


물론 상품이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과 가격 등 많은 것들을 고려해서 내놓는 것이기에, 사이즈의 선택지가 빈곤하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한 공동체의 경직성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꼭 사이즈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취향은 꽤나 획일적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유행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 안의 유행은 좀 극단적인 면이 있다. 모두가 입으면 나도 입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수군거림이나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유행.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님들의 허리를 아프게 하는 그런 유행,

컨트리 뮤직의 대부 조니 캐시는 초록은 40가지 색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말한다. 사실 초록이 동색이다 보니 그 초록들이 자꾸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국민 교복입니까


개인주의자 없는 개인주의 사회,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사회


내가 앞글의 서두에 우리는 과연 we의 사회인가, 아니면 I의 사회인가, 하는 질문을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던 것은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자 없는 개인주의 사회,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는 충분한데도 개인주의적이지 못하다. 민주주의인 것 같은데 민주적이지 못하다. 뭔가 이상하고 오묘하다. 정답을 맞히기에 급급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답만 맞춰 놓은 학생 같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일단 가져다 놓긴 했는데 포장과 알맹이가 서로 삐걱거리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고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다소 그렇지 못하다. 뉴스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방종을 헛갈리거나, 개인의 이익을 개인의 자유와 쉽게 동일시한다. 개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소위 '개인주의적 성향'은 지탄받고(솔직히 개성이란 게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의 줄임말 아닌가요), 개인이 어여쁘게 꽃필만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까뮈는 "세상에는 그저 정상적이고 평범해 보이기 위해 미칠 듯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Nobody realizes that some people expend tremendous energy merely to be normal.)"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미칠 듯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까뮈가 살았던 1900년대 초중반의 프랑스보다 적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래의 일러스트에서 보듯, 우리는 2007년까지도 개인주의에서 '개'를 강조해 읽곤 했다.

"'밉보이는 신입사원' 첫째 이유는 '개인주의'"라는 2007년 한겨레신문 기사에 실린 일러스트. 칼퇴를 개인주의라 칭하며 '개'를 강조하는 개인주의가 놀랍고 슬프다. ⓒ 김재욱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피땀 흘려 민주주의적 제도를 쟁취해 냈지만 우리는 정작 그 민주주의 투사들 중 상당 수가 일상에서는 반민주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정치인들이 그러했다. 밖에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고 집에 돌아와서는 소파에 누워 밥 차려내라는 꼴이랄까. 학생운동의 중요성과 그들이 이루어낸 귀중한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경험한 90년대까지도 그 조직은 굉장히 배타적이고 꽤나 반민주적이었다. 민주적 가치를 위해 반민주적 전략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의아하고도 안타까웠다. 민주주의를 내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어떤 제도나 이상으로만 이해하고, 기본적인 삶의 태도로 이해하지 못했던 탓인 것 같다.

노룩패스와 연탄 색깔 발언으로 유명하신 이 분도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것입니다 ⓒ 연합뉴스

김누리 교수님은 "4.19, 5.18, 6.10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민주혁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또다시 박근혜와 최순실의 시대를 겪어야 했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왜 이리도 허약한가," 하는 질문에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가정, 학교, 일터에서 우리는 얼마나 민주주의자로 사는가."


we의 그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동질성-획일성-경직성으로의 점층법, 선을 긋고 싶어 하는 배타성, 책임 소재가 흐려지고 비판이 어려워진다는 점 등 각각으로도 충분히 글 한편씩이 나올만한 특성들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측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we 문화의 가족적인 특성이다. (정확히는 가족적이라기보다 부권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비뚤어진 사람이라 괜히 부권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었다.)

가족이 어때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가족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좋은 것,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말이다.

우리는 온 국민이 한 가족이다. 이 세상이 언니 오빠 이모 삼촌 어머니 아버지들로 가득하다. 정 많고 따뜻한 사회다. 한데 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 뒤에는 서늘한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앞서 말한 폭력적인 we의 시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아버지 대통령 각하'였다. 그렇게 미워하던 '어버이 수령'을 닮았다.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 역시 모성성을 내세웠다. 모성 성치, 모성적 리더십이라는 말은 섬세하게 약자들을 품겠다는 포근한 말로 들리지만, 아버지 대통령이든 어머니 대통령이든 국민들은 그 앞에서 어린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함정이 있다. 그분들께는 내가 학원을 땡땡이치고 어딜 다녀왔는지 내 동선을 낱낱이 파악할 권위가 있고,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를 하시면 눈 동그랗게 뜨고 말대답을 하기보다는 고맙게 네-하고 들어야 하는 것이다. 2012년 12월, 당시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의 마지막 TV토론을 보면서 가장 뜨악했던 것은 "4대 강 사업은 현 정부 최대의 핵심 사업이라 개인이 그것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최대한 좋게 해석하면 "나라의 핵심 사업인데 국민이 반대하는 것보다는 성원을 보내며 지켜 봐주면 좋지 않겠느냐"이겠지만, 내게 저 말은 "나라의 핵심 사업으로 대통령이 미는 사업이면 국민 개개인은 그저 입 다물고 조용히 따라오는 것이 옳다"는 말로 들렸다. 말대답하는 자식 놈 꾸짖는 엄마처럼, 그분은 그렇게 온화하게 웃으며 그런 놀라운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4년 뒤, 집안 말아먹듯 나라를 말아드시고 청와대를 불명예스럽게 떠나셨다.


이 세상 인간관계 중에서 가족관계가 가장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개인 대 개인'의 개인주의적 관계가 되기 어렵고, 동등하고 평등한 민주주의적 관계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아버지 같은 정치, 어머니 같은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걸 조금은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경계해야 한다. 나는 주민번호가,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수시로 불러대던 출석번호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한민국은 전 국민을 번호로 부를 수 있게 해 놓고 수시로 번호를 확인하는 나라다. 우리 사회의 어른에 대한 예절은 윤활유가 되기도 하지만 자기 검열의 기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교수님 앞에서, 선배들 앞에서, 어른들 앞에서, 내 의견을 밝히는 것을 스스로 두려워하곤 한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교수님들만 보면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는 몸에 밴 벌떡이 사라지지 않아, 많은 교수님들을 웃음 짓게 했다. 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신체를 규율하는 문화와 제도가 있어왔다. 나는 내 아이들이 선생님을 만났을 때, 몸보다는 마음이 공손하게 일어서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긴장하며 벌떡 일어서기보다는 마음껏 춤추며 자라기를 바란다.


I의 사회, we의 사회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다들 힘들어한다. 무엇보다 친구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I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 나의 삶에 we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을 그리워하면서도 자가격리 외국인들에게 세금을 쓴다며 험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는 we의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we는 연대의 we가 아니라 획일적이어야 한다는, 동질해야 한다는 강박이 섞인 we 같다. 내가 이렇게 옳은 말은 하는데 너는 왜 동참하지 않냐며 비난하고, 문제가 되면 we라는 단어 뒤에 쏙 숨을 수 있는, 그런 비겁한 we를 보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비관적 낙관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자가격리 외국인들에게 세금을 쓴다며 정책입안자들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거 아니냐고 앞다투어 성토하는 맘카페들도 있었지만, 사재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공적 마스크를 더 필요한 분들께 양보하거나, 택배 기사님들께 간식과 마스크를 선물하는 유행을 만든 맘카페들도 있었던 것이다. 아직 괴물 같은 작은 we들이 활개 치고 다니기도 하지만, 연대의 마음으로 모인 아름다운 we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개인들이 자유로운 가운데 연대할 수 있는, 그런 we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일그러진 개인들의 집합체인 괴물 같은 we가 아닌,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개인들이 조화롭게 모인 점묘화 같은 we.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는 개인화된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개인화되지 못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했다.

개인주의는 만연해야 하며, 민주주의는 가치가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

내 철학을 가지고 내 행복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버티며 살아낸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것이 반드시 강하거나 모범적일 이유는 없다. 약하고 비틀거렸기에 더 울림이 크고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이 I로, 또 we로 건강히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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