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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Apr 19. 2020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꼭 일 년이 되었다

사실 고민을 좀 했다. 이번 글을 쓸까 말까.
안에서 간질간질, 뭔가 내놓고 싶은 말들은 있는데 괜히 부끄럽기도 했다.
내 안의 다중이들이 뛰어나와 어깨를 으쓱거리며 외쳤다.

네가 일 년 된 거 우리가 알아야 돼?(주인에게는 특별히 가차 없는 놈들이다.)

 주인 닮은 신체 비율을 선보이는 다중이들

하지만 이번 한 번만 쓰기로 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글 쓰고 싶은 분들께 손을 내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 쓰신 이런 종류의 글들을 읽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꼭 움켜쥐고 일정한 시간을 헤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타인의 경험이라 해도 '돌아보는 시간'이 주는 의미가 나에게도 거울처럼 깊었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

뭐 그렇다. 제목대로, 오늘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꼭 일 년이 되었다. 일 년간 적어도 일주일에 한편씩 꾸준히 글을 올렸고, 그 일 년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브런치라는 매체가 있다는 것도 들었고, 그곳에 글을 써 보라고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첫발을 내딛기가 쉽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머리채를 잡혀 사는 것 같은 바쁜 일상 때문이었다. 나는 비빌 언덕 없는 외국에서, 한창 손이 많이 갈 시기의 어린아이를 둘 키우고 있었다. 겨울잠을 미처 못 잔 곰처럼 늘 피로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처지에 차분히 앉아 글을 쓸 여유란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꼭 쓰고 싶은 책이 두 권 들어 있었다. 살다 보면 꼭 쓸 수 있겠지. 수유를 하면서 내 안에서 깜빡이는 아이디어들을 황급히 메모했고, 아이를 재우며 둥둥 떠오르는 문장들을 더듬더듬 적어 나갔다. 브런치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몰랐던 상황에서, 그렇게 나는 조금씩 브런치를 만날 준비를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학교 놀이를 하자고 꼬드겨서, 시간을 정해 과목별로 친구들에게 문제집을 풀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친구들아 용서해 줘.) 두 번째로 되고 싶었던 건 글 쓰는 사람이었다. 책이,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집에 있는 허락된 모든 책들을 꿀꺽꿀꺽 삼켰고, 친구네 집에 처음 보는 책이 있으면 다 읽을 때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구름을 보며 이야기를 지어냈고, 공책에다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맛있는 음식이 잔뜩 나오는 동화를 몇 편 쓰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르치며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길을 느릿느릿 걸어오기는 했다. 모교에서 정치철학으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잠시 설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 내 맘대로 가는 것만은 아니어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그 기회 대신 아이들과의 일상을 선택했다. 그래도 좋았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꿈은 혼자 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는 꿈은 혼자서도 마음껏 꿀 수 있었다. 거대한 자본이 드는 일도 아니고 그저 마음만 먹으면 틈틈이 키워나갈 수 있는 꿈이었다. (심지어 오늘날 같은 역병의 시대에도 아무런 제약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다.)  


아이들은 무탈히 자라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글들이 내 안에서 썩어 한창 시큼거릴 무렵 다행히 출구가 마련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을 때, 브런치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낯선 공간이 어색했지만 곧 내 글을 하나 하나 물어다 둥지를 쌓기 시작했다. 이 글쓰기 플랫폼은 그만큼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집을 빠르게 정리한 뒤, 딱 브런치 먹기 좋을 시간에 내 글로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간 페이스북에 가끔 글을 올리기는 했지만 그곳은 너무 휘발성이 강했다. 내 글을 모으고 다듬어 정리해서 펼쳐둘 수 있는 집중된 공간이 필요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마음속에 쓰고 싶은 책이 몇 권 들어있는 사람에게, 이만한 공간이 또 없었다. 4월, 5월, 6월,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렇게 지난 한 해,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썼다.


그리고 글들을 읽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차분히 눈 둘 곳 없이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이 이미지의 시대에, 글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의 에너지는 신선했다. 강한 전류라기보다는 은근한 자기장 같은 느낌이었다. 파바박 튀는 불꽃은 없어도 은근히, 묵직하게, 그리고 꾸준히 나를 끌어당겼다. 놀라운 문장들이 내 눈으로 펄떡이며 뛰어들 때도 있었고, 다양한 온도를 가진 이야기들이 화선지 위 먹물처럼 내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뿜어낸 물방울들이 내 마음을 적시고 물들일 때, 나는 이 자기장 안에서 조금씩 충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페이스북이 내 사랑스런 지인들로 이루어진 포근한 버블이라면, 브런치는 그 버블 밖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곳이었다. 늘 삶과 죽음을 직시하는 의료인, 작은 가게를 꾸려가는 사장님, 다양한 아이들을 품는 선생님, 끊임없이 자소서를 쓰는 청년, 오늘도 슬기로운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 사회의 어두운 스냅샷을 글로 풀어내는 기자, 강단 있게 홀로서기를 결행하는 엄마들, 열심히 뭔가를 배우는 사람들, 음악과 영화와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맛있게 먹는 사람들, 정말 하루하루를 느슨하게, 또 밀도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구독자 수가 늘어가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보다 관심작가의 수가 늘어가는 것이 더욱 감사했다. 내밀한 곳에서 글로 길어 올린 생각들, 세계 각지에서 사람 사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마치 잘 차려진 풍성한 식탁처럼 늘 나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달고 시고 고소하고 매콤하고 쌉싸름한 글들, 푹 익은 글들과 갓 베어낸 풀 같은 글들이 세상 여기저기에 돋아나 있었다. 여기에서 글을 쓰고 또 글을 읽고 있으면, 만나서 소소하게 차 한 잔,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생면부지의 이웃들이 생겨난다. 타인의 글에서 내가 생각을 넓히고 글감의 씨앗을 얻어 오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는 이 공간에서 함께 정답게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가 고맙다. 무엇보다 글 쓰는 일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준 점, 내 지인들만의 작은 동그라미에서 벗어나 내 글로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피드를 따라 여기저기 모이면서 새 글이 나올 때마다 조그만 잔치를 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준 점.


지난 일 년간의 성과를 나열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딴지 걸 놈들이 몇몇 떠오르지만 사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가장 큰 성과 하나는 밝히고 싶다. 일 년간 꾸준히 글을 쓰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스스로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그것을 남들에게도 담백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남들이 알아주든 아니든, 나는 내 기준에서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꿈 하나를 이렇게 이루었으니 나는 요즘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글이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부끄러워 말고 그냥 쓰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글에는 인간의 수만 가지 감정이 얽히기 마련이지만, 또 내가 쓴 글을 두고 타인의 오만 가지 감정을 대해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깜빡이는 커서를 한없이 오른쪽으로 밀어내며 내 안의 것들을 쏟아내는 느낌.
그럴 때 나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꺼내놓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에 구슬처럼 품고 있던 책 두 권은 (별 일이 없다면 아마도...) 세상에 나올 듯하고, 지난 일 년간 나는 쓰고 싶은 책이 세 권 더 생겼다.  
나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와 서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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