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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otion Feb 27. 2019

미국 디자인 유학/취업1

영어를 배우러 미국 대학원으로


나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2013년 가을, 미국 유학을 시작해서 모션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는 로스 엔젤러스에 위치한 소니 픽쳐스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모션 그래픽 쪽으로 유학 및 해외취업을 바라는 분들께서 가끔씩 이런 저런 질문을 주시는데, 그때마다 나 혼자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유학을 준비하면서 정말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이유로 내가 그동안 유학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경험했던 것, 내가 유학을 준비했을 때 누군가가 자세히 말해줬으면 했던 것 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유학 및 해외취업을 고려하시는 분께서 지나가시다가 내 글들을 읽게 된다면 별건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첫 글은 유학과 영어학습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관심이 없던 내가 영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


나는 스무 살 중반까지 유학이나 해외취업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어디선가 계속 꾸준히 들었지만 수능 시험 이후 영어에 크게 관심을 준 적이 없었고, 한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생각이 크게 바뀐 계기가 있었다. 나는 다니던 대학교에 휴학을 신청하고 그동안 모션 그래픽 디자인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작업을 하던 도중 어떤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배웠어야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튜토리얼을 찾던 도중 유튜브를 발견하였는데 한국어로 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영어로 된 튜토리얼을 봤어야만 했고, 이해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바쁜 일정에 밤새 작업하고 있었는데 튜토리얼을 이해 못하고 있으니 집에 더욱 늦게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완전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영어는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구나..." 그 순간 영어라는 것이 수능을 보기 위해,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 혹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내 인생을 자유롭게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정보가 영어로 되어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보고 듣고 배우기 위해서는 영어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이 사실을 스무살 중반이 넘어서 깨달은 것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당시 정말 일하고 싶어 했던 회사였고 즐겁게 일을 했었지만,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를 끝내던 날 바로 그만두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이왕 영어를 배울 거면 미국 대학원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일단 대학교로 돌아왔다.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방학 때는 영어 학원도 다니고, 이런저런 영어 학습책, 영단어집을 사서 영어를 공부하고자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실제로 공부는 하지 않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 가를 공부(?)하며 고민만 했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허무히 지나가고... 나이는 거의 30이 되어가고... 대학 졸업이 다가왔다. 졸업이 닥쳐오니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본격적인 미국 대학원 지원이었다. 실제로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일단 무지막지하다고 들은 학비 걱정이 되었고, 대학 졸업 후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내 실력으로 대학원을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을 준비하면 토플 영어 시험을 봐야 하고 에세이, 레쥬메 등을 영어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토플 시험은 영어 실력이 객관적인 숫자로 나오기 때문에(물론 실생활 영어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막연히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모르는 것보다는 객관적인 결과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미국 대학원을 합격만 해보자는 목표로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대학교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바로 토플 학원에 등록해서 하루에 영단어 100개 이상씩 외우고, 집에서 3~5시간 정도 자는 시간 빼고는 학원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공부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고... 당시에 가수 싸이가 한창 전 세계적으로 뜨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싸이가 영어로 했던 옥스포트 연설을 자막 없이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졸업 후 미래에 대한 확신 없이 공부로 몸과 마음이 찌들어 있던 그때 조금 행복감을 느꼈다. 나도 영어 공부를 하니까 영어가 조금 들리는구나... 하면서.



미국 대학 리크루터와의 만남 그리고 생각치 못했던 미국행


토플 학원을 다닌 지 3개월째 되던 2013년 봄,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그 친구가 지원한 서배너 컬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의 리크루터분이 한국에 방문해서 인터뷰를 받을 예정인데 나도 대학원 지원을 할 예정이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때 토플 스피킹은 연습은 했었지만 살아있는 사람과 영어로 말해본 적이 전무해서 겁도 나고 토플 성적도 없어서 망설였다. 하지만 내 포트폴리오가 미국에서 통할까 하는 궁금중에 일단은 같이 가기로 했다. 막상 인터뷰를 가보니 한국인 실장님도 계셔서 어설픈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가며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리쿠르터분께 내 영상 작업 데모 릴을 보여드리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제작한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내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았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리쿠르터분께서 작업을 다 보고 갑자기 누구에게 전화를 하더니 나에게 물어봤다.


"너 우리 학교 말고 다른 데 가고 싶은 데가 있어?"


당시 나는 뉴욕에 있는 SVA 지원을 생각하고 있어서 내가 왜 그랬는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 너무 쿨하게 답했다.


"SVA 가고 싶어요."


리쿠르터분이 말했다.


"너 잠깐 방에서 나가 있을 수 있어? 우리 얘기할 게 있는데 조금 있다가 다시 부를게."


그래서 인터뷰하던 방에서 나와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뭔가 큰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느꼈다. 몇 분 뒤, 한국인 실장님께서 다시 방으로 불러 주셔서 들어갔는데 리쿠르터 분께서 말했다.


"네가 우리 학교로 왔으면 좋겠다. 네가 토플 점수 85점 이상만 받아오면 전액 장학금 줄게. 올해 가을에 바로 입학할 수 있어."


바로 다음날 죽도록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입학을 한다면 몇 달이 안 남은 상황인데, 급하니까 공부가 잘 됐다. 원래 영어 공부를 1년을 계획하고 있었고, 많은 주변분들이 다른 학교들에도 지원을 해봐야한다고 해서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일단 미국에 빨리 내 몸을 옮겨서 부딪쳐 보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결국 나는 83점을 받고 토플 커트라인을 넘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장학금을 이름을 바꿔서 전액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모션 미디어 디자인 학과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뷰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몸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준비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아서 준비가 되기 전에 일단 그냥 미국에 가보기로 했다.



대학원에 갔으니 논문을 영어로


대학원을 졸업하려면 논문을 써야 한다. 미국 대학원이라면 물론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한다. 나는 영어 실력을 높여서 꼭 논문을 다 쓰고 졸업을 제대로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다짐을 했다. 대학원에 가니 한국에서 듣던 대로 영어가 토플 시험과는 차원이 틀렸다. 수업을 끝내면서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주시는데 못 알아들어서 두 달 정도는 수업 후 과제가 무엇인지 항상 물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영어로 과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던 것 자체가 대견하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에 와서도 6개월 정도는 꾸준히 문법을 공부하고 항상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영문을 많이 읽었다. 그다지 친구도 많지 않고 놀러 다니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수업 후 집에 오면 과제, 영어 공부, 책 읽기, 글쓰기, 영어 유튜브 채널 보기 등으로 4년을 보냈다. 학교 생활하는 동안 가족들과 전화 통화하고 가끔 한국인 친구를 만나는 것 외에는 한국어를 사용을 안 했다. 모든 정보를 영어로 받아들이려 애써 노력하다 보니 느리긴 하지만 2년이 지난 후 영어로 무언가를 읽고 듣는 것이 비교적 편해졌다. 그리고 결국 입학한 지 4년 후 졸업 논문을 완성하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도 논문을 마친 생각을 하면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하면서 가끔씩 놀라워한다.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인생


2013년에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한 지 5년이 조금 넘었다. 영어, 아직도 잘 모르고, 어렵다. 그러나 확실히 조금 더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이제는 일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유뷰브나 구글에서 검색해서 본다. 5년 전과는 달리 내용들이 다 들리고 이해가 된다. 이 희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는 영어를 쓰는 전 세계인과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전 세계 아무 곳이나 나를 떨어뜨려놔도 영어가 안돼서 두려움에 떠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유로우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 두렵지 않으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많은 분들이 유학, 해외 취업을 고려하시면서 나중에 유학이나 취업을 실패해서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시기도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나중에 뭐가 어떻게 되든 그 과정으로 통해서 얻는 언어능력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망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정확히 안 나와도 일단 영어를 습득하는 것 자체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을 읽으면서 유학이고 뭐고를 다 떠나서 영어 배우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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