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라도 적어야 할 것 같은 날
4년에 한 번씩 온다는 윤년 2월 29일,
사실 특별한 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배가 부르니 감성이 생겨서 그런지 무언가라도 적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 2월 29일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언가 사진이라도 찍었는지 싶어 휴대폰 갤러리를 열었다. 그때 찍어둔 사진은 없더라고. 무언가 기억이 날 것도 같아서 이메일을 열었다. 아, 그 맘 때의 나는 출국을 준비하고 있던 게 기억이 났다. 벨기에에 합격했던 인턴십이 3월 1일에 시작하기로 했었고, 대학원에 지원해서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처음으로 유럽 땅에서 길게 산다고 신나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long term 비자를 받는다고 정신없이 서류 처리를 하느라 허덕였다. 서류와 비자를 전부 준비했더니 코로나가 한참 심해졌고, 2020년 2월 29일에는 아마 시작 날짜를 알 수 없는 인턴십과 사용하지 못한 벨기에 비자만 남았었을 것이다.
2월 29일에 찍은 사진은 없어서 그날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때 나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남기고 싶었을까.
알 수 없다. 힌트를 얻을 만한 사진도 이메일도 일기도 없으니.
대신 29일 전후로 찍힌 사진으로 추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 사람들과 어디서도 찾을 수 있고/없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고, 한참 산책에 빠져있었다. 뒷산도 오르고, 산책길도 걷고, 간 김에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혼자도 가고, 가족들이랑도 가고. 그때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다고 걸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모르게 집과의 마음의 거리감을 걷기로 채워보려고 했던 듯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지금의 내가 끼워 맞추는 것일까 정말 느낀 것일까 - 또 알 수 없다.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날도 좋다. 그날은 평안했다는 이야기니까. 몇 년이 지나도 그날이 기억나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 사진이나 한 장 찍어두자. 특별하진 않아도 미래의 오늘을 사는 나에게 과거의 나에 대한 힌트를 남겨두는 것도 좋은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