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사적인 초대를 닮은 공간 | SoprArno Suites
그 호텔의 리셉션은 누군가의 사적인 서재를 닮아있었고, 로비는 어떤 소설 속의 응접실 풍경 같았다. 아침을 먹는 공간은,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이지만 근사한 동네 카페를 닮았다.
2016년에 다녀온 늦은 여름 휴가지의 기록이다.
현관 벨에 붙은 작은 라벨을 보고 겨우 주소를 발견했다. 건물 입구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독특한 중정 공간이 나왔다. 머리 위로는 하늘이 보이고 건물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중정에 늘어뜨려진 알전구 들을 보니 조용한 축제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천창으로는 햇빛이 쏟아졌고 계단실은 우아하게 빛났다. 꼬불꼬불한 난간을 따라서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내 도착한 호텔의 리셉션 층에는 호텔의 대문 같지 않게, 아담한 크기의 문 하나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열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안에는 사무적인 호텔의 리셉션 데스크 대신에, 영화에 등장할 법한 집사 같은 아저씨가 서재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과장되지 않은 친절과 다정함으로 반겨주었다.
객실이 있던 층에 들어섰을 때는 어떤 집의 거실에 들어온 것 같다고 느꼈다. 중앙에는 커다란 라운지가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장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읽을만한 괜찮은 책들이 놓여있었다. 여기서 모노클에서 출판한 Monocle Guide to- 시리즈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는 기뻤었다. 거실 같은 그 공간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의 객실로 이어지는 문들이 나있었다. 한쪽 모서리에 하나,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복도를 끼고 하나, 이런 식이 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전실 복도가 나왔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침실이, 앞쪽으로는 욕실이 보였다.
이 호텔의 방은 중세의 침실을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 ‘비밀의 화원’을 좋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는데, 마치 그 커다란 저택에 있는 방 하나에 숨어 들어간 기분이다. 커다란 방 한가운데 붉은색 헤드가 달린 침대가 놓여있고, 벽면에는 초상화 그림이 가득하다. 나무로 된 바닥에는 세월감이 느껴진다. 높은 천정에는 프레스코화 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듯하고, 창문에 커튼이 묵직하게 드리워져있다. 방 안은 클래식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침실 안에 스탠딩 형식의 클래식한 욕조가 놓여있었던 장면이 낭만적이었다(실제 사용할 수도 있다). 천정에 조명이 없고 방 아래에 있는 조명들로만 방을 밝히기 때문에 방은 낮에도 약간 어둑하다. 방을 한 바퀴 돌면서 플로어 스탠드와 테이블 램프를 하나하나 밝히는 그 과정이, 손잡이가 달려있는 촛대를 들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불을 밝히던 어떤 과거의 시공간으로 들어온 것 같다.
이 날은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이탈리아에 온 휴가 기간 동안 대부분을 에어비엔비에서 묵었는데, 대신에 각 도시에서의 마지막 하루씩은 약간의 사치를 부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정말 묵고 싶었던 단 한 곳을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아이러니하게도 후기가 거의 없었던 이 호텔을 골랐다. 이 호텔은 피렌체에 사는 어떤 expat의 블로그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예약을 하긴 했지만 직접 와보기 전까지는 의심했었다. 이 공간이 실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 흉내만 낸 건지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직업적인 호기심도 발동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나게 된 방은 중세의 침실을 옮겨놓은 것 같았고, 진짜인 공간이었다.
저녁에는 피렌체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을 예매해두었었다. 저녁 음악회에 가기로 되어있는 그 기분만으로도, 그 곳 사람들의 일상 저녁으로 나도 함께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몇시간 전부터 들떠있었다. 이날의 음악회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아티스트(Stefano bollani라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이 지역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클래식 공연이었다. 대형 자본이 들어간 화려한 콘서트라기보다는, 도시의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 같은 소박함이 있었다. 중세의 침실을 옮겨놓은 것 같은 방에서 음악회에 갈 채비를 하고 있자니, 다른 시공간에 온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가지고 온 옷 가운데 가장 격식 있는 옷을 고르고, 음악회와 어울리는 모습으로 몸단장을 하는 시간동안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Entering Sanders is like stepping into a theatre. The scenography, the carefully curated interior of the hotel and the generous hospitality of our staff members will exceed expectations, and the guests will always take center stage.”
– Hotel Sanders (Alexander Kølpin)
어쩌다 ‘아 지금 영화 같아!’ 하고 느끼는 삶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호텔은 그런 시공간이 되기에 훌륭한 소재이다. 사람들이 호텔이라는 공간에 기대하는 비일상의 판타지 같은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위의 문장은 내가 묵었던 호텔은 아니지만, 예전에 읽었던 어떤 호텔(Sanders)의 브랜드 에센스에 대한 인터뷰이다. 내가 평소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짚어주어 반가웠었다. 호텔에서의 경험을 마치 연극을 만드는 것과(Scenography) 같다고 보는 것이다. 각 잡힌 리셉션이 아닌 아늑한 서재 같은 공간을 택한 이유도, 딱딱하게 서있는 대신에 책상에 앉아 일을 보다가 다정하게 고개를 들어서 지배인이 손님을 맞이하게끔 하는 편을 택했던 롤플레잉 같은 것들도 모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호텔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이 공간이 집과 호텔의 그 중간의 경계에 있어서 ‘누군가의 집으로의 사적인 초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감동을 받거나 다름을 느끼는 지점은, 낯섦과 익숙함,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위에서 오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런 지점이 아닐까 한다.
내가 호텔에서 보았던 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