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의 은신처 | Barbican foodhall
여행지에서 미술관에 가면 그에 딸린 카페는 꼭 들르는 편이다. 점심을 먹거나 커피라도 마신다. 왠지 낯선 도시에서 레스토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기까지는 약간의 머뭇거림과 결심을 필요로 하지만, 미술관의 카페들은 그 심리적인 문턱이 낮은 편이다. 대부분은 약간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어도, 근사한 분위기와 미술관이 주는 풍요로움을 생각한다면 한 끼에 지불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다.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보통 양질의 커피를 마실수가 있었다.
MOMA 6층에 있는 테라스 카페 같이 그 자체로 화려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명소가 되는 공간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 카페들은 ‘우아하고 다정함의 경계’에 있는 곳들이다. 우아하게 멋을 낸 부자 할머니도,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에게도 커피 한 잔만 시켜도 미술관이 주는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다정하게 내어주는 곳들이다.
런던에서는 이상하게 항상 배가 고팠다. 대학교 방학 때 런던의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생활비를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항상 배불리 먹지 않았(못했)다. 회사 점심시간을 기다리면서, 팬트리에 비치된 각설탕을 아무도 안 볼 때 입에 한 조각씩 넣고 천천히 녹여먹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아주 가끔씩만 내게 허락하던, 스테이크 고깃덩어리가 들어간 골목집의 따뜻한 샌드위치를 먹을까, 아니면 평소와 같이 사무실 아래 Pret에(런던의 샌드위치 체인) 가서 콜드 샌드위치 한 개를 사 먹을 것인가. 그러면 배가 안찰 것 같은데 브라우니를 딱 한 개만 사 먹어도 되려나, 하고.
처음엔 일을 나가지 않는 주말이면 관광하듯 여기저기 도시의 명소들을 찾아서 돌아다녔지만, 마음과 뱃속의 허기감 때문에 런던이라는 도시의 풍요로움과 화려함도 왠지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 같아 위축되고 말았다. 그때 인턴 생활에서 느끼는 나의 한계치로 인한 좌절감과 능력이 출중한 직원들을 보며 느낀 괴리감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시내에 나가면 워터스톤즈 같은 서점에 자주 가곤 했었다(막상 가면 온통 원서로 된 그 책들이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면서도). 다른 곳에 가면 낯선 도시를 방황하는 느낌인데, 그곳에 가면 왠지 편안함을 느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찾아갔던 곳이 바비칸(Barbican)의 1층 카페였다. 바비칸은 도시의 한 블록을 주거와 상업시설과 문화시설로 복합적으로 개발한 프로젝트인데, 건축적으로는 brutal 한 양식을 취하고 있어서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좀 거칠게 보일 수 있다. 잘 계획된 대규모 단지 안에 주거동을 둘러싸고, 미술관, 도서관, 콘서트홀과 F&B 시설이 있는 건물이 있고, 그 1층에 수로를 면하는 곳에 Barbican Foodhall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플랫화이트 한잔과 브라우니 한 조각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 카페는 바비칸 안의 고급 주거에 사는 사람들이 내려와서 물가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바비칸에서 전시를 보고 나오던 가족이 들러서 점심을 먹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커피 한잔만 시켜도 바비칸이 가진 여유로움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었다. 그 우아하고도 다정한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껴서 자주 갔다. 2011년 여름, 바비칸의 카페는 낯선 도시에서의 나의 은신처였고 아지트였다. 허기진 나에게도 풍요의 시간을 내어준 고마운 곳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작년 가을에 갔던 휴가지에서도 그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한 공간을 만났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국립 미술관에 위치한 Kafeteriasmk이다.
(미술관의 카페들-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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