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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Jan 03. 2021

매일 책상에 앉는 방법

방 안의 사소한 공간감 실험  l  집의 장면들-1


  방을 가지고서 이상한 짓을 자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방은 언제부턴가 나의 공간감 실험실이다. 직업으로 하는 일을 생각하면 왠지 개인 공간에도 정성을 들일 듯 싶지만, 오히려 집에 돌아오면 공간을 완벽하게 세팅하는 일에 반기를 드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생업에 대한 소심한 반항 같은 것일까... 그 대신에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보면서 동선과 생활 반경을 조금씩 바꿔보고, 낯선 배치를 실험해보는 것은 좋아한다.


  최근의 미션 중 하나는 내가 매일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일하는 동안 잃어버린 나를 회복해보려는 그런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생각해 본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책상을 창가 옆에 두기. 이건 방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위치에 책상을 두는 전략이다. 하지만 창가 공간은 한정되어있고, 이미 침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가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처음 갖게 된 독립 공간에 침대가 창가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침대 = 창가’가 기본값이 되어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지가 되었다.


  두 번째는 매일 앉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의자를 사는 것이다. 눈여겨보아 둔 아름다운 의자들이 몇 개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산다고 생각하니 내가 갖게 될 기쁨에도 가격이 매겨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의자보다는 번듯하고 커다란 책상을 먼저 갖고 싶은 마음에, 의자는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게 되었다.


세 번째는 근사한 테이블 스탠드를 사기. 그 스탠드를 켜보려고 책상 앞에 앉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책상에 괜찮은 작업용 스탠드가 있고, 굳이 조명을 산다면 차라리 무드등의 기능에 가까운 테이블 램프를 사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이것도 제외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지. 침대에 책상을 붙여버리는 것이다. 집에 오면 침대 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 반경으로 책상을 옮겨다 놓으면 어쨌든 쉬고는 있지만 책상 앞에는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했다. 책상 앞에 앉아보려는 의지의 거리가 몇 발자국에서 한 팔 너비의 거리로 줄어든 셈이다. 그래서 드르륵드르륵하고, 어느 주말 저녁에 책상을 옮겼다.



  나에게 책상에 앉는 일은 무언가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침대에 앉는 것은 책상에 앉는 것과 침대에 눕는 것 그 어딘가의 중간이다. 책상 앞에서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뒤로 누워버려서 바로 게으름의 모드로 들어갈 수가 있다. 뭔가 엉성한 논리이지만 내 라이프스타일에는 꽤나 잘 맞았다. 게으름과 의지의 중간 지대에 걸쳐있다는 이유로 책상 앞에 앉게끔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쉬워진 것이다. 등을 받쳐줄 것이 없는 것 빼고는 나와 잘 맞아서 삼 개월째 같은 레이아웃을 유지 중이다.


  요즘의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주말 아침에 침대에 전기장판을 틀어놓고서 이불을 두른 뒤, 창문은 살짝 열어서 겨울 공기를 방 안으로 들인 채 책상 앞에 앉는 것이다. 그러면 엉덩이는 따뜻하고 머리는 차갑고 상쾌한 상태가 되면서 몸의 감각들이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아침은 방 안에 볕이 가장 예쁘게 비스듬한 빛줄기의 형태로 들어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방 안의 배치를 이렇게 바꿀 즈음에는 그 시기에 나왔던 매거진 B의 ‘더 홈 The home’을 읽던 중이었다. 책상을 옮기게 된 것도 거기서 나오는 ‘Private sanctuary’ 대목에 꽂혀서였다. 책에서는 집을 대하는 태도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어였다. ‘사적인 은신처 혹은 자기를 표현하는 공간으로서의 집’ 정도의 의미다. 사실 책에 나오는 은신처들은 집주인의 취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근사한 가구와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공간들이었다. 그저 침대 옆에 책상을 옮겨다 둔 사소한 이유로 같은 의미를 갖다 붙여도 될까 싶었지만, 책에서 아래 부분을 읽고 나니 왠지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 집주인이 자기 집구석구석에 대해 얼마나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걸 되게 중시해요.

요즘 트렌드가 어떻다던지 하는 건 자기 언어가 아니죠. 여기에 왜 이 가구를 뒀고, 왜 이런 샤워기와 조명을 달았는지 충분한 자신만의 고민이 묻어나는 스토리가 있느냐, 그런 스토리가 있는 집이 제일 좋은 집이라 생각해요. (...) 자신만의 논리가 있다면 감각적이거나 세련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내 것이냐 아니냐가 훨씬 중요한 거죠. ”

- The Home, 11p



집을 대하는 다섯가지 태도, The Home


책에서 가장 좋았던 집의 장면, 코펜하겐의 어떤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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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Private sanctuary.
침대 옆 창가에 만든 작은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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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의 책상 위치, 비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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