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집가의 거실을 닮아있다면 | Denmark
어떤 수집가의 거실을 떠올리게 했던 미술관이 있다. 진기하고 신기한 사물과 수집품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컬렉터의 방들이 오래전 미술관의 기원이었다고 하니, 그곳이 어떤 수집가의 거실이었을 시절의 안락한 방에 다녀오고 싶어 진다.
다른 시대에 쓰여진 문장들을 읽다가 만났던 공간들이 함께 떠오른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 속 헤밍웨이의 문장으로 다녀온 거트루드 스타인의 거실, 그림이 아주 많이 걸려있었다고 묘사되었던 그런 공간들. 클래식한 가구들이 놓여진 어떤 응접실을 상상해 본 뒤에, 금색 테가 둘러진 그림들이 사방의 벽에 빼곡히 걸려있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장의 힘을 빌어서 상상 속 그 방에 다녀오는 것이다.
——
미술관 속 황금기의 방 안은 어둑했다. 발 밑에는 금빛 러그가 깔려있었다. 신발 아래에 닿는 폭신한 실들의 결들이 그대로 느껴졌다. 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결들이 이리저리 눕혀져서 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모습이 마치 붓으로 터치를 하고 지나간 자리 같았다.
검정의 나무벽들은 방을 만들고 복도를 만들었다. 방을 빠져나오니 거실을 닮은 공간이 나왔다. 그 중앙에는 금빛 mohair 패브릭으로 된 커다란 라운지 소파가 놓여있다. 다리가 붕 뜰 정도로 깊이가 깊었던 그 소파에는 사람들이 기대어 여유롭게 널브러져 있었다.
‘황금기’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던 이 전시실은, ‘미술관이 누군가의 거실 속 모습이라면’ 하고 생각했던 이전의 상상을 꺼내어보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커다란 소파가 놓인 방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모두 아는 것만 같았다.
좋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엄청 거창한 것들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익숙한 환경에 낯선 것이 살짝 끼어있거나, 혹은 반대로 낯선 환경 속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만나게 되었던, 그 살짝 비틀어지는 지점들이었다. 미술관이라는 곳은 그림이 걸려진 벽을 따라서 줄지어 걸어 다니던 장소였다. 그런데 근사한 카펫이 깔리고 커다란 소파가 한가운데 놓이는 것만으로도, 부드럽고 활기찬 다른 시공간이 만들어졌다. 미술관이 거실이 되는 순간이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의 어떤 응접실을 닮아있는.
‘Danish Golden age’의 전시에서 황금빛 카펫을 밟도록 기획을 한건 누구의 생각일까, 금빛 소파가 놓인 거실에 앉아서 그림을 보는 그 자체가 풍요로운 기분을 가져다주는 곳, 그 전시 안에서 관람객들이 느끼는 감정 그 자체가 황금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 미술관에는 의자가 많았다. 미술관을 다녀와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곳곳에 놓인 의자들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의자 맛집으로 미술관을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중정인데, 웹에서 검색하면 한 곳을 찍은 사진들이 잔뜩 나온다.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을 유리 지붕으로 덮어서 만들어진 근사한 중정이 이곳의 메인 포토스폿이다. 그런데 나는 중정보다도 각 전시실마다 놓여있었던 의자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림이 놓인 거의 모든 공간에 의자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실의 그림풍 혹은 주제에 어울리는 형태로.
의자 곁에는 책과 오디오가 함께 놓여있다.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그림들의 화가에 대한 아트북들을 의자 위에 툭툭 얹어두었다. 그 책들은 관람이 끝나고 뮤지엄의 기프트샵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곳곳의 오디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아주 오래된 그림들이 있는 방이었는데, 이후의 시대에 작가들이 그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서 집필하게된 문학작품을 나긋한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작품과 작가 설명을 읊어주는 것 외에도 그림을 감상하는 조금 다른 접근방식들을 계속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려는 디테일과 터치포인트들을 여기저기서 느꼈다. 관람객이 미술의 과정 일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코너의 기획들을 보면서도, 미술관이 계속해서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다정한 인상을 받았다.
——
어느 컬렉터의 거실을 닮은 황금기의 방
SMK – Statens Museum for Kunst, Denmark
———
미술관 속 의자들의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