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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Dec 20. 2020

커피바와 관객들

무대가 되는 공간들-1  |  Chye seng huat 외


  이곳의 커피바는 극장 같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관객이 되는 기분이 된다. 중앙의 커피바는 무대, 직원들은 모두 배우다. 각자의 역할을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이다. ㅁ자로 둘러싸인 커피바의 뒤쪽에 앉으면, 중앙의 커피바를 중심으로 4-6명의 배우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인다. 나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무대 뒤에서 지켜보는 관객이 된 기분이다.


  직원들은 그 시선을 의식하는 듯이 능숙한 손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고, 얼음 스쿱을 퍼올리는 소리에는 리듬감이 느껴진다. 한쪽에서는 전자저울 위에 호리병처럼 생긴 유리병을 올려놓고서 한 방울 한 방울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린다. 다른 한쪽에서는 과장된 몸짓으로 라임즙을 짜고 있다.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내게 라임즙 몇 방울이 튀어 오르고 뒤이어 시큼한 냄새 입자가 공기를 타고 콧속으로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바 자리는 모두가 앉고 싶어 하는, 이곳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커피바는 싱가폴의 어떤 평범한 골목 안에 있었다. 샵 하우스가 즐비해있는 한적한 길가에, 낡은 호커센터와 진한 향내를 내뿜으며 원색의 깃발들을 펄럭이는 사원 근처에 있었다. 커다란 철문 안으로 들어서면 중정 안은 항상 로컬과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Chye seng huat hardware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오래된 샵 하우스를 개조한 이곳은 예전에 하드웨어 가게였다. 그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오래된 나무 현판을 가게 앞에 걸고 있다. 하지만 현판이 걸린 가게 입구는 진짜가 아니다. 가게의 진짜 문은 철문을 들어와 마당을 지나서 오른편에 있다.


  집에 원두가 떨어질 즈음이 되면 이곳에 항상 들렀다. 그냥 가기엔 아쉬워 커피바에 앉아서 고소한 플랫화이트 한잔을 비우고, 유리 쇼케이스 안의 페이스트리를 탐하다가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가곤 했다. 그러다 항상 경쟁이 치열하던 바의 뒷좌석에 어느 날 운 좋게 앉게 되었는데, 바로 손 뻗으면 닿을 그 거리에서 음료를 만드는 정확하고 리드미컬한 손의 움직임에 빠져들었다. 신속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주문을 받는 포스 앞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반대쪽 바에서 저울 위로 느리고 섬세하게 드립 커피를 내리는 모습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중앙의 커피바가 마치 무대 같다고 생각했다.


  커피바의 안쪽은 오랫동안 손님의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BOH(Back of House)의 영역이곤 했다. 정돈되어 보이기 어려운 공간이라서 대개 벽을 등지고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커피바의 가장 역동적이고 근사한 장면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노라니 왠지 대단한 비밀을 알게 된 것도 같고, 그들의 극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Chye seng huat hardware, Singapore)


중앙의 커피바를 둘러싼 장면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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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하드웨어 가게 안의 커피바가 ㅁ자의 무대라면, 이곳은 일직선의 무대이다. 커피바는 커다란 창문을 등지고 안을 향해있고, 유리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전경이 그 무대의 백드랍이 된다. 클래식한 나무 손잡이를 따라 계단을 공간을 오르면 어쩐지 오래된 극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은 공간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 같다. 아주 오래전 런던의 리버티백화점에 갔을 때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고 싶게 만들었던, 어떤 무도회장이 연상되는 클래식한 계단과 목재손잡이가 주는 근사한 감동 같은 것이 떠올랐다.


  역동적인 퍼포먼스의 공간이었던 싱가폴의 커피바와 달리, 이곳은 정적이고 고요한 무대이다. 낯설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대신에 익숙하고 편안하고도 고요한 공간을 찾아가고 싶은 날이면 이곳에 갔다. 날이 흐렸고 실내에는 은은하게 빛이 들었다. 안이 나지막이 밝아질 정도로만 빛이 든 실내는 마치 관객석 같았고, 바깥의 정원의 전경을 앞에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커피를 내리는 이의 실루엣은 무대같이 더 극적으로 보였다. 마치 어두운 관객석에서 밝은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앤트러사이트, 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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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커피바가 무대가 되는 곳

Chye seng huat Hardware,

150 Tyrwhitt Rd, 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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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의 커피바의 씬

앤트러사이트 서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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