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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Mar 25. 2024

웃음을 빚진 자

채무가 늘었다

첫 병원 진료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근육통인 줄로만 알고 정형외과를 선택했는데 몇 시간 뒤 병원으로부터 예약 내용을 확인한다며 전화가 왔다. 조금은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은 아픈 증상을 꼼꼼하게 묻더니 정형외과가 아닌 신경외과가 맞을 것 같다고 하며 예약내용을 수정하겠다고 했다. 


신경외과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꼬박 30년의 일이다.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오랜 시간 병원신세를 지셨던 엄마는 종합병원에서 나와 외삼촌 댁과 가까운 광주 시내의 000 신경외과에 입원하셨다. 상가 건물에 세로로 길게 걸려있는 병원 간판은 첫인상부터 불편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신경'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다. 당시 엄마의 담당의사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나와 몇 번이고 눈이 마주쳤음에도 한 번도 웃어주지 않던 무뚝뚝한 얼굴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질겅질겅 껌을 씹고 있거나,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며 수다를 떨었지만 쉬운 눈인사 한 번 건네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신경외과에 대한 나의 기억은 오래도록 그랬다.


어떤 생김새인 줄도 모른 채 삼촌에게 속아 생전 처음 붕장어회를 맛본 곳도 신경외과(엄마의 병실)였고, 합의 좀 해달라고 몇 번이고 찾아오는 교통사고 가해자 아저씨를 본 것도 그곳이었다. 2024년, 다시 신경외과에 몇 개월째 드나들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들 눈을 피해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 대신 홀로 진료실 복도 의자에 앉아 있는 힘없는 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만큼 병원 내부 약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신경외과뿐 아니라 촬영실, 비수술실, 물리치료실 간호사들과 얼굴을 익히고 자연스럽게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는 건 어쩐지 반갑지만은 않다. 이렇게 불편한 내 마음과 달리 이곳 병원의 신경외과 간호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결 같이 웃는 얼굴이다. 뻣뻣한 허리와 목을 가누지 못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종일 대하면 지칠 만도 한데, 언제 봐도 밝은 표정이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많이 추우시죠!"

"어머나 혼자 오셨어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로봇처럼 어색한 걸음걸이, 뒤에서 이름을 불러도 바로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어눌한 움직임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를 맞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반갑던지. 고장 나서 굳어버린 몸은 한겨울 한파에 더욱 긴장해 움츠러드는데, 그때마다 그녀들의 인사는 꽁꽁 언 몸을 녹이는 노천탕 같았다. 


첫날 통증의 고통보다 경추 디스크 파열이라는 검사결과를 듣고 두려움으로 잔뜩 긴장한 나에게 신경외과 간호사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얼굴이 안쓰러웠을까. 누가 나 좀 위로해 달라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 애처로운 모습이었을까. 그녀는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는 나에게 말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잘 치료받으시면 분명 좋아지실 거예요."

"네... 에..."


목이 메었다. 잘못하면 사지가 마비될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의사와 달리 반달 같은 눈으로 웃으며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약하고 나약해진 사람은 작은 공격에서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아니 누군가에겐 공격으로 조차 여겨지지 않을 자극에도 힘없이 흔들리고 만다. 반대로, 작은 관심과 배려에도 그들은 몇 배로 감동하고 힘을 얻는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MRI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탈의실에서 팔과 고개를 제대로 쓰지 못해 남보다 몇 배는 시간이 걸려 애를 먹을 때, 예약을 했지만 앞 환자의 진료가 길어져 아픈 몸으로 하염없이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을 때, 주사받은 강한 약물 탓에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을 때, 물리치료실에서 침대 시트를 부여잡고 이를 악 물고 울지 않으려 참을 때. 그들은 괴로운 표정을 거둘 수 없는 나의 모든 못난 순간에 늘 함께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자상한 얼굴과 말로 말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 왔다 자부했는데 몸을 돌보는 일은 불성실했고 게을리했다. 그 결과로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을 부여잡고 울 일이 많아진 요즘. 나의 아픔을 이겨내며 다른 이의 아픔을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의 고통을 거둬낼 수는 없지만, 잠시라도 잊고 웃을 수 있게 하는 방법. 


갚을 빚도 헤아리기 어려운데 이젠 웃음까지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눈물이 날 때마다 웃으려 애쓴다. 갚을 수 있을 때, 내가 받은 만큼 웃음의 힘을 나누어야지. 집 곳곳에 놓인 거울 속, 엘리베이터 사방에 비치는 못생긴 얼굴을 보며 일부러 더 웃는다. '000 신경외과'의 의료진들처럼 무표정한 내 얼굴을 보고 누군가의 하루가 불편해진다면 큰 일이다. 

처진 입꼬리를 올리고 힘없는 눈과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중얼거린다.

씨이익!  


벌써 2년 전의 봄, 참 잘 웃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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