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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Jan 12. 2022

여전히 어른은 어렵습니다.

1월의 두 번째 월요일 '성인'이 되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 나도 이제 성인인데. 그렇게 유치한 건 싫어.


열차 시각이 조금 남아 역에 있는 상점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꽁꽁 싸맨 날씨였지만, 맨다리를 드러내고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내 눈에는 많아봐야 갓 고등학생이 된 소녀로 보였다)와 엄마의 대화를 엿듯게 되었다.

아이의 엄마는 레이스 장식에 강아지 자수가 놓인 카디건을 들어 딸에게 대었다. 민트 컬러의 카디건은 하얀 얼굴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아이는 질색팔색 하며 두 손으로 카디건을 밀어냈다.

"이런 거 안 입어. 어린애 같잖아."

대신 마네킹 발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구두로 시선을 옮겼다. 10센티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하이힐이었다. 누구든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공격할  보이는 뾰족한 구두코, 군더더기 없이 가늘게  뻗은 , 반짝이는 스팽글이 구두 뒤꿈치 부분에 장식된 검정 밸벳 소재의 제법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엄마! 이거 어때? 너~무 예쁘지 않아? 나한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아이는 이미 구두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높은 거 신으면 어떻게 위험하지 않을까?"

"엄! 마! 나도 이제 어른이잖아. 1월 11일이면 어른이라구!"




일본의 성인의 날은 우리나라와 달리 1월이다. 1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성인의 날(成人の日)> 공휴일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올해는 1월 11일, 왠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비장한 주먹을 쥐게 되는 숫자 1이 세 개나 있는 날이다. 덩굴장미 향기가 그윽한 5월 봄날의 성년의 날의 분위기에 익숙한 나에게 1월의 성인식은 몇 번을 보아도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땋거나 틀어서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곳곳에 꽂은 헤어 장식. 울긋불긋 화려한 기모노에 색조화장을 화장을 한 소녀들의 무리를 요 며칠 길에서 자주 마주쳤다.


대부분의 행사를 취소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제법 많은 지자체에서 '성인식' 행사를 개최했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 확산이 급증하고 있는 시기인 터라 다수의 군중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터. 관공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 방역'에 애쓰며 긴장한 분위기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감염된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아이를 성인식에 보내도 될지 모르겠어요."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기자와 인터뷰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상기된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성인식에 입고 갈 기모노와 메이크업, 양복과 넥타이는 무슨 색이 좋을지,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상의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받는 행사. 어른이 되는 게 저렇게도 좋을까?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주지 않고 '이제 어른이 되었다'라고 '쾅쾅쾅' 선언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 억울했다. 난 아직 나의 소녀시절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되었는데, 자위에서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성인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이라는 타이틀로 누군가 다음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그걸 읽고 '풉'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각종 선거에 참여할  있고, 마음껏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있고, 엄마 아빠 허락 없이 금융거래도   있고, 밤새도록 게임도 실컷   있다. 이제 나는 눈칫밥으로부터 자유다."


이것들이 그렇게 좋은 건가. 나의 소녀시절을 기회비용으로 쓰기에는 너무도 하찮고 의미 없는 혜택이었다. 아니, 나는 혜택이라고 인정할  없었다. 전혀 매력을 느낄  없었다.


주위의 어른들의 한숨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일까. 어른들의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걸음이 곧 나를 덮칠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이모부에게서 장미꽃 한 다발과 예쁜 립스틱, 형부에게선 달콤한 향수 한 병과 맛있는 식사를 선물 받았다. 나보다 스무 살 많은 이모부는 작은 카드에 멋진 글씨로 어른이 된 나의 미래를 축복해주셨다. 늘 유머가 넘치는 형부는 "처제, 이제 진짜 어른이네! 이제부터 우리 같이 늙어 가는 거야."라고 농담을 하며 축하해주셨다.


그런 축하를 받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 5년만  있다가. 아니 3, 그것도 아니라면  1년만 ..."


마음으로 밀어내고 밀어냈지만,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성년의 날' 축하 카드를 써주시던 이모부의 나이가 된 지금, 이모부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어른이 되기 싫은 마음에 선물을 받고도 마음껏 좋아하지 못하는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키지 않은 뚱한 얼굴로 성인이  이래, 과연 그동안 나는 진짜 어른으로 살아왔던가? 두려워하던 어른의 무게를  견뎌왔는지, 앞으로도  이고 지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본다. 무엇이든 척척 해내고, 열심히 도전하고 이뤄가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급해 금세 '따라쟁이' 모드에 돌입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도전했던 것들은 제대로 끝을 보지 못한 것이 많았고, 뜨다 풀기를 반복하는 고불고불한 뜨개실처럼  시작의 언저리에만 자주 머물러 있었다.


올해부터는 이렇게 엉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조바심 내지 않고, 내가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기로 다짐했다.


준비하지 않고 되어버린 성인으로서의 세월을 어찌어찌 살아왔듯  살아가게 되겠지. 앞으로 다시 20  지나  시절을 돌아볼 , 존경받는 어른은 되지 못할지언정 부끄러운 어른은 아니라고 스스로 토닥여   있기를 바란다.


“얘들은 가! 얘들은 가!” 아직 오지 말라고 밀어내 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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