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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Nov 22. 2021

아침의 소리

지난밤 으슬으슬한 날씨에 꺼내 입었던 카디건이 소파에 뒹굴고 있다. 


어제와 달리 따스한 기운에 거실 창문을 활짝 연다. 머리도 질끈 틀어 올리고, 반소매 차림으로 집 안을 활보한다. 으아아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시계를 올려다본다. 9시가 훌쩍 넘은 줄 알았는데, 시계는 아직 7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짹짹짹' '빼애빼애' 집 아래 가로수에서는 둥지를 튼 지 오래된 새들이 요란하게 떼창을 한다. 언제나 같은 노래인 듯, 또 매일 다른 듯한 소리로. 나무에서 조금 더 멀리 눈을 옮긴다. 알록달록한 머핀과 컵케이크를 파는 빵집은 노란색의 따뜻한 조명을 켜고 벌써 손님을 맞고 있다. 바로 옆 작은 선술집은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아 피곤한 듯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おはよう」

“안녕!”


씩씩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은색 교복의 무리가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 지난 저녁, 학원을 마치고 헤어졌던 친구가 저렇게도 반갑고 좋은 때가 있었던가! 요란하게 몸을 부딪히며 기쁨을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니 회사에 다닐 때 동료들에게 건넨 나의 아침인사는 참 재미없고 너무 점잔을 떠는 기분이다.

 

귀여운 아이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교복, 가방까지 온통 검은색 차림 속에서 책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하얀 물체가 시선을 강탈하고 있지 않은가! 이 아침의 신스틸러이다. 자세히 보니, 저 멀리 핀란드에서 날아온 상상의 동물 무민이다. 오래전부터 느꼈던 것인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인 게 분명하다. 문구용품은 물론이고 옷, 가방, 신발은 물론 자잘한 주방용품과 대형 가전에도 배 불룩한 이 녀석이 그려져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의 가방에 매달려 함께 학교에 가는 트론 친구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우르르 몰려가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외에도 거리는 부산한 걸음의 사람들로 요란하다.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지나가는 엄마, 교복 치마 차림에도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는 여학생 둘, 전차 시각이 다됐는지 서둘러 뛰어가는 사람들. 아직 초록색 불로 바뀌지 않았는데 잽싸게 좌우를 살피는 아저씨. 한쪽 어깨에 메고 있는 묵직한 가방이 흔들리지 않게 손으로 단단히 붙들고 뒤뚱뒤뚱 걸음을 재촉한다.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향한다. 드르륵, 베란다 반대편의 복도 방향으로 달린 작은 창문을 연다. 동시에 집안을 채우는 소리의 결이 달라진다. 꽉 닫혀있던 창 하나를 두고 차단되었던 역 주변의 소리가 하나둘 부엌을 지나 거실까지 달려온다.


역 앞 광장에는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줄지어 들어온다. 솥에 넣고 쪄 낸 후 고슬고슬 해 아래 말린 쑥의 색을 닮은 버스들은 오늘도 차분하게 자리를 잡는다. 각자 멈춰야 할 스탠드에 멈추자 '취이이' 버스 문이 열린다. 우리나라의 버스와 사뭇 다른 이곳의 버스. 뒷문으로 탄 승객들은 내릴 때에는 운전사 옆에 설치된 단말기가 있는 버스의 앞쪽의 문으로 내린다. 물론, 오르고 내리는 문의 위치도 오른쪽에 설치된 우리나라와 달리 모두 왼쪽이다. '삑, 삑, 삑'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하나둘씩 버스를 떠나는 사람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운전사 아저씨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사람들은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걸어간다. 비 설거지를 하는 개미떼처럼 주위에 시선을 주지 않고 넋이 나간 듯 '우르르'. 역 건물은 버스 정류장과 바로 이어져 있다. 이 동네의 오가는 전차는 땅 속이 아닌 땅 위로 달린다. 그래서 누구나 개찰구가 있는 역사의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제 아무리 힘이 세고 돈이 많아도 전차를 타려면 지정된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버스 외에도 가족을 배웅하는 자동차들이 연달아 도착한다. 개미떼는 규모가 더욱 커지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을 향해 움직인다. 저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한 줄로 늘어선다. 바로 옆의 넓은 계단은 오가는 이들이 없이 텅 비어있다. '우우 우웅' 에스컬레이터 왼쪽으로 검은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다. 다리부터 모습을 감추더니, 손끝, 허리, 어깨에 이어 마침내는 머리까지 건물 기둥 뒤로 빨려 들어간다.

 

「いってらっしゃい」

"잘 다녀오세요."


각자의 배움터와 일터로 떠나는 이들을 배웅한 뒤, 전기 포트에 물을 붓는다. '삐익' 전원을 누르고 얼마 전에 새로 산 커피를 꺼낸다. '후우읍' 진한 커피 향이 코를 타고 들어와 온 감각을 깨운다. 아차차! 유산균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꿀꺽 마신다. 짜릿한 시큼함에 눈썹이 제멋대로 요동을 친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 손에 휴대폰을 쥔다. 간밤에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하고 목적에 따라 가입되어 있는 몇 개의 단톡방의 메시지도 확인한다. 누구는 미라클 모닝을 실천한 지 10일째라며 소감을 공유했고, 누구는 밀가루 음식을 끊었다며 아몬드 몇 알과 요거트가 놓인 조촐한 아침상을 찍어 보냈다. "제가 요즘 게으름 병이 걸렸나 봐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력하고 슬픈 생각만 들어요. 함께 기도해주세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기도를 부탁한 이도 있다.


“자 어디 한 번 볼까.”

지금부터는 작은 휴대폰 속 이야기에 집중해 본다. 

퍽 오랜만에 누리는 여유로운 아침이 그저 감사한 오늘.


백발의 나이에도 꼿꼿한 걸음을 볼 때마다 나의 굽은 등을 반성한다.
카페인 없이는 집중하기도 어려워진 짠한 나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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