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나는 아닐거야.
추석 연휴기간 동안 책을 한 권 읽었다. 제목은 ‘괴물 부모의 탄생’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추락, 교사직업 기피, 일부 교사 자살을 주제로 한 책이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잇따라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보며 놀라고 분노하고 애도했다. 나 역시 유치원생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 분노, 걱정, 그리고 통렬한 반성으로 책을 읽으며 몬스터 페어런츠는 머리에 뿔 난 극소수 악마들만 되는 건 아니란 생각을 한다.
잊지 않고 언제고 다시 꺼내보기 위해 책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을 옮겨정리해 본다.
괴물 부모가 출현한 이유
괴물부모, 몬스터 페어런츠 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 일본에서 2000년대 후반에 생겨났다. 애초에 일본 사례라고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우리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일 정도로 우리 교육현실과 닮아있다.
괴물 부모 출현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사회적 배경이 얽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학교 폭력 만연화 이후 생겨난 불신과 무기력한 학교
-학부모의 고학력화
-사회의 학벌화
-교육의 서비스화
-저출생으로 인한 자녀의 희소성
과 연관이 깊다. 특히 저출생 부분은 마흔에 낳은 금쪽이 어린이를 키우는 중이다 보니 아주 공감이 가고 뜨끔하기까지 하다. 이성적으로는 안그러려고 해도 자꾸 과보호하고 별거 아닌 일에 애처로워하게 되는 마음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책 초반에 나온 진상부모 단골멘트 리스트도 재밌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한 번쯤 해보시길. 나는 아니겠지 자신하다가 의외의 결과에 깜짝 놀라는 부모들 많으실 듯. 리스트 중 일부, 나를 뜨끔하게 만든 부분만 옮겨 보았다.
-개인 연락처(카톡)를 안 알려 주는 선생님은 애정이 없다.
-애 안 낳고 안 키워 본 사람은 부모 심정을 모른다
-젊은 여교사는 애들이 만만하게 봐서 휘어잡지 못한다
-우리 애는 순해서 다른 애들한테 치일까 봐 걱정이다
-때린 건 잘못이지만 맞는 것보다는 낫다
-애 아빠가 화나서 뛰어온다는 걸 말렸어요
-선생님이 착하셔서 안 무서워서 그런가 봐요
-우리 애가 순해서 친구들 영향을 많이 받아요
고백하자면 꿈에라도 한 번쯤 생각 해봤거나, 집에서 남편이랑 두 꼰대가 앉아 한 번이라도 입밖에 꺼내본 류의 멘트들이다. 당연히 선생님께 대놓고 해 본 적은 없지만.(다행히 그 정도 분별은 있음 ㅎㅎ) 써놓고 보니 변명이 참 구차하다.
괴물 부모 자녀들의 세 갈래 길
괴물 부모 자녀들 대부분은 유치원과 초등까지는 부모에게 순종 하다가 사춘기부터 갈등 폭발,
-억압과 통제 속에 이룬 가짜 성공과 성취 속에서 불안정한 ‘의존 인생’을 살거나
-부모가 주는 경제적 혜택은 누리지만, 반항적이고 일탈한 상태로 불안정하게 ‘일탈 인생’을 살거나
-괴물 부모로부터 탈출, 새로운 어른들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탈출 인생’
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나마 세 번째가 낫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탈출 인생을 택한 아이들은 인생에서 괴물 부모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유년시절 및 인생 꽤 큰 부분을 함께 삭제하게 되면서 상당한 우울감과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에 나도 덩달아 슬퍼졌다. 괴물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아이들 인생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새긴다.
괴물 부모가 되는 이유
-아이 제외 부모 자신의 욕망, 자신의 기쁨을 자극하는 원천이 부재한 경우
-부모의 병적 자기애와 ‘하면 된다’류의 유아적 전능감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경우
-내 안의 과도한 불안과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식을 과잉보호, 간섭하는 경우
-부모자녀(특히 독박육아를 한 엄마)간 일체화 및 공생
-극심한 경쟁사회 속 탈락과 배제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
이 부분에서 내 오랜 고민의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부모 자신의 삶을 찾아라” 는 책 속 문장이 바로 그것. 부모이기 이전에 나로서 오롯이 독립적으로 행복하게 존재해야 괴물 부모가 될 위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며 때때로 밀려드는 허무함과 불안함에 한없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결국 이런 내 기분은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영향을 준다. 엄마가 웃으면 아이도 웃고 내가 울면 아이도 운다. 엄마 멘탈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 지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내 삶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겠다.
‘괴물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와 거의 일치된 삶을 희생적으로 살고 있었다’
동네 커피숍 한 구석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옆자리에는 요즘 한창 진행중인 초등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우리 동네에서는 이른바 ’7세 고시‘라고 불린다-를 준비중인 귀여운 어린이와 젊은 엄마가 앉아있다. 추석 연휴의 이른 아침이지만 얼마 안 남은 초등학교 영어학원 레테를 위해 과외학원 시간을 기다리며 공부에 여념 없는 모습.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숍 안은 이렇게 어린 아이+젊은 엄마 조합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나 역시 4돌이 아직 안 된 아이를 영유에 보내며 온갖 숙제와 얼마 전 시작된 주간 단어 테스트를 준비 시키느라 매일이 바쁘다.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나는 자주 우울해 하고 종종 제어하기 힘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커리어가 너무 중요해 결혼도 출산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 뒤늦게 해치울 만큼 스스로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살았지만 지난 몇 년을 떠올리면 아이의 그림자로 오롯이 세월을 보내느라 예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 낳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둘째 얘기가 나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단호하게 NO를 외친다. 이걸 또 하라고? 못하겠고 할 수 있어도 안 할란다.
그동안 알지만 피하고 싶었던 고민거리들, 생각 거리들을 책을 통해 마주한다. 내 삶의 가장 큰 화두는 결국 스스로의 행복, 독립이라는 것을 재확인 했다. 또 지금까지 미루고 미뤘지만 아이가 아닌 내가 먼저 아이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내 아이가 온전히 건강하게 클 거란 것, 남편과도 중간에 아이를 방패막으로 세우지 않고도 둘이 잘 지낼 수 있을 때 ‘함께’인 우리의 미래도 존재한다는 것.
더 많은 부모들이 함께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