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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현진 Sep 04. 2023

한 여름의 스트리트 파이터

꽤 자주 힘들고 절망스러웠지만 결국 버텨낸 지난 여름날의 기록

 


지난 8월의 어느 날. 실로 오랜만에 이성 상실 개빡쳐서 압구정동 한복판에서 미친*처럼 소리소리 지르며 싸움을 하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 넷. 이름과 얼굴 팔린 사람으로 반 평생 살아오면서 웬만큼 뚜껑 열리지 않으면 이렇게 막나가지 않는데 이번엔 진짜 대단한 강적을 만난 것.


일 관련 미팅이 있어 강남의 어느 건물 주차장으로 막 들어온 참이었다. 주소만 갖고 처음 찾아간 건물의 뒤편 옥외 주차장 앞. 양 옆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과 주차장들 사이에서 도무지 어디에 차를 대야할 지 판단이 서질 않아 비상등을 켠 채 미리 도착한 지인과 통화를 하며 주변을 살폈다.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주차장에 차가 거의 없기도 했고 내 차를 비켜 가려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 잠시 정차는 괜찮겠지 싶었지만 그 찰나의 순간, 언제 왔는지 내 바로 뒤에 붙은 차가 갑자기 미친듯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냥 약간 짜증스런 짧은 삐삐- 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원하게 빠앙- 무려 5초간 경적을 울리며 기세좋게 시동을 걸더니, 두 번째 빵빵빵-누르고 이내 무차별 공격. 갑자기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꽥꽥대기 시작한다. 뭐하고 꾸물거리냐 $@+_#!..


다짜고짜 기세좋게 상스러운 말을 쏟아내는 위협적인 모습에 퍼뜩 요즘 한창 사회문제가 되는 묻지마 범죄 뉴스들이 떠올랐다. 저정도 공격성이면 분노조절 환자 혹은 소시오패스일 지도 모르니 그냥 똥밟았다 피하자 결론 내리고 피하려던 차에 다시 고성과 함께 길고 날카롭게 짖어대는 또 한방의 빠앙-소리에 내 인내심은 퍽! 하고 터져버렸다.


먼저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왕년의 쌈닭 본능 발동해 운전석 창문부터 내리고 오랜만에 시원하게 목청을 내질렀다. 와. 아직도 세포가 기억하고 있는 찰진 욕을 내뱉으며 스스로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서로 공평하게 막말과 반말, 악다구니를 쓰며 한바탕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도대체 어디서 배운 똥매너냐, 양보를 할래도 비켜 줘야 하지 그렇게 똥구녕에 바짝 붙여놓고 어쩌라는 거냐 있는대로 마구 퍼부었다. 이쯤 되니 저쪽에서 가스총이나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진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고 똑같이 되받아 치는 나도 참 못났다 싶다가도 으으 저런 인간한테 지긴 싫어. 말로 안되겠다 이러다 곧 머리채 잡겠네 싶은 순간에 극적으로 지인 등장, 진땀나는 중재 끝에 겨우 육탄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속으로 아 말려줘서 다행이다..땡큐 언니.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씩씩거리며 주차하고 내리니 저쪽 차 쌈닭이 세상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손을 잡고 내리는거다. 맙소사. 이 개싸움을 저 어린애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언빌리버블. 저정도 멘탈이면 나따위는 애초에 이길 수 없었겠다 싶어 괜히 에너지 낭비한 게 살짝 후회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 분이 안풀린 그쪽 운전자는 제 갈길 안가고 그 자리에서 목을 180도 꺾어 돌려가며 끝까지 나를 잡아먹을 듯 표독스럽게 노려보면서 온갖 저주의 말을 날린다. 한 손에는 핑크색 책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지 딸내미 손을 잡고서 말이다.


와 저거 안되겠네. 잠시 꺾인 전투력이 이내 화르륵 불붙어 나 역시 ‘어쩌라고?’ 라는 대사를 입모양으로 내뱉으며 어깨 으쓱 헐리우드 제스쳐로 끝까지 응수하다 결국  어휴 좀 고만 해라 좀, 언니에게 등짝 스매싱 당하며 겨우 자리를 떴다.


미팅장소에 도착하니 이 소란을 이미 재밌게 관전한 또 다른 지인이 대수롭지 않게 내게 말한다. "저 인간 건물주인데 원래 저러기로(?) 유명해.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해."



아. 주님 위에 건물주라니. 그랬던 건가! 이제서야 좀 이해가 된다. 그 몸에 밴 당당한 무매너와 갑질. 강남 한 복판 잘 나가는 건물 주인 정도는 되어야 저정도 포스가 나오지. 태어나서 눈치나 상식 따위는 안중에 둬 본 적 조차 없었을 것만 같은 행동거지를 시전 중인 그 기준에서는 내가 어지간히도 짜증이 나고 걸리적거렸을 것이다.


저건 뭔데 내 영역에서 얼쩡대냐. 아 치워버리고 싶다..뭐 이런 생각도 들테고. 갑자기 오래 전 재밌게 봤던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저거 치워!!" 그리고선 물건처럼 질질 끌려 나가던 주인공.


도대체 저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저런 안하무인 갑질 인생은 삶의 어떤 역사와 서사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 안하무인이 되나? 저런 인간들은 인연 맺는 모든 사람을 저런 태도로 하대하는 건가. 설마. 주변에 뭐라는 사람도 없나 아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 잘라버렸을지도.‘




질문의 화살은 이내 스스로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짜증나고 어이없는 꼴을 당했기로서니 어쩌자고 순식간에 왕년의 쌈닭으로 회귀하고 마는가. 이제 두어달 남짓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요가 선생이라면서, 명상도 찔끔찔끔 하는데..너무나 꼭지 도는 순간에는 앞뒤 물불 안 가리고 그냥 폭주하게 되는 나 자신이 싫었다. '화가 많아서 요가를 합니다' 는 자기고백을 대놓고 할 정도로 삶의 태도를 바꾸고자 무던히도 노력해 왔는데 또 이렇게 무너지는 걸 보며 나란 인간 이 생에는 화를 다스리는게 불가능한 거 아닐까 좌절감이 밀려왔다.


사실 저런 갑질러들 말고도 요즘 나를 화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이 정말 많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좋은 소식이라고는 들리지 않는 정치, 국제, 사회뉴스-쓰고 보니 거의 다-를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명색이 방송쟁이가 집에 티비도 없고 아침마다 아이 등원 준비하며 듣는 김현정의 뉴스쇼 외에는 따로 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찾아보지 않는다. 정치인이 나오는 인터뷰나 토론은 진영을 막론하고 보고 있으면 고구마 백개는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져서 이내 꺼버리고 만다.  


무능하고 부도덕하며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 묻지마 범죄, 일상이 되어버린 온갖 기막히고 엽기적인 사건사고, 급속화 되는 환경파괴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저 내 정신은 도무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더불어 지난 8월 한 달의 가히 살인적이었던 여름 날씨는 체력과 인내심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나란 인간을 곧 터져버리기 직전의 노이로제 상태로 몰아갔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매일 요가와 명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절망감은 이겨내기 힘들었다. 내가 잘해도, 내가 참아도, 내가 피해도 언제 어디서 이유 없는 무차별 공격이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향할까 전전긍긍하며 걱정이 늘어갔다.


웬만하면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 시비에 걸릴 일도 안 만들고 원망 살 일, 적을 만들 만한 행동이나 언행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 또 조심했다. 튀지 않도록, 모나지 않도록, 그래서 누군가의 타켓이 되지 않도록 투명인간 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그 모든 억지 노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이던 중 우연히 맞닥뜨린 갑질러라는 트리거로 인해 너무 크게 터져버렸다.


평소 가장 혐오하는 모습의 인간군상으로 돌변해 악다구니를 쓰고 싸우며 좋지 않은 기운만 뿜어댔고 결과적으로 세상과 타인에 대한 더 큰 두려움과 불신의 벽만 더 높이 쌓게 되었다.



폭우가 내린 뒤 만난 무지개. 일몰 즈음의 하늘에 뜬 무지개는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최근 평소 존경하는 최재천 교수님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묻지마 범죄'를 주제로 올리신 영상을 아주 공감하며 보았다. 나는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의미의 '평범' 한 삶을 통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는데 영상 속 최교수님 왈, 어느 시대건 사람들은 항상 이전보다 지금 더 살기 힘들어 졌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서부극에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들 처럼 품속 총을 꺼내 빵빵 쏘며 적들과 결투를 벌였던 인간들이나 수 백년 전 퍽하면 칼 빼들고 맘에 안드는 상대를 베었던 사무라이들만 봐도 요즘 시대의 묻지마 범죄 가해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서민들의 생활은 수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매한가지고 그저 최근 수 십 여년 간은 문명사회라는 이름 하에 남들이 뻔히 보는 상황에서의 노골적인 폭력이 줄어들고 인류 역사상 가장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 왔지만 이제 낡은 이데올로기의 안전장치가 유효기간을 다하고 균열 슬금슬금 생기는 중이라는 거다.


또 이렇게 혼란해진 세상에서 불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차마 내 윤리적 기준에 벗어나는 짓을 할 바엔 멸종을 택하며 스러져 가는 무리가 있는 반면  힘든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을 해치는 행위를 비롯 무슨 짓이든 해서 상황 반전, 극복하려는 개체가 있고 이는 유전적 성격차이라는 것. 더불어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끔찍한 묻지마 범죄자는 후자쪽 부류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상황이 아무리 나빠져도 절대로 남을 헤치거나 사회 질서를 전복하는 류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 불만 가득한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세 종이 되기 위한 본능대로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일부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생태학자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씀 하시며 우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나 일상의 질서를 위협받을 정도로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이 영상을 비롯,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들 속 각계각층의 훌륭한 전문가와 어른들의 말이 중증 노이로제 수준으로 난도질 당했던 내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갈곳을 모르고 커져만 가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안도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하고 관심은 꾸준히 갖되 내 노력으로 당장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과한 스트레스는 받지 말자'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와중에 불타는 8월도 가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선선해진 9월이 되니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것만 같은 근거없는 낙관도 생긴다.


다시 그 여름 오후의 갑질 건물주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이번에는 교양있게, 지혜롭게 처신하리라..는 약속은 감히 못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요가 명상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온갖 걱정과 스스로의 한계, 바닥을 알아차리는 일, 실낱같은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망하고 노력을 이어가는 것. 그것 말고는 달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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