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작 버튼 한 마디 “아니 이 아줌마야!”
초겨울 추위가 매서운 어느 주말 밤. 오래 전 잡힌 회식을 가야 하는데 남편은 일 때문에 바빠 아직 퇴근 전이었다. 결국 다섯 살 어린이를 데리고 회식 출동 결정 ㅠ
회식 장소는 집에서 애매하게 가까운 거리라 자차 대신 즐겨 이용하는 **택시를 불렀다. 가격은 기존 택시에 비해 많이 비싸지만 워낙 깨끗하고 조용한데다 기사님들이 매너도 좋고 불필요한 말을 섞을 필요가 없어 외출 때마다 늘 이용하는 업체이다.
주말 밤에 웬일로 할인쿠폰까지 적용되어 금방 도착했다는 문자가 뜬다. 매사에 느릿느릿 청개구리 어린이 닥달해가며 헐레벌떡 주차장에 내려 가보니 이미 도착 했으니 탑승하라는 메시지가 뜬지 오래인 택시를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둘러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내 번호가 고스란히 상대에게 노출되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전화하는 걸 꺼리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전화를 받은 기사님은 우리 동 현관 앞이 아닌 한참 떨어진 정문 쪽 어느 동 앞에 추차해 계신단다. 즉시 약한 짜증이 올라왔다. 이 추운 밤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정문까지 나가 택시 잡기 싫어서 굳이 돈 더주고 콜택시를 불렀는데 이게 뭐람.
차 찾다 전화하고 저 멀리 주차해 놓은 곳까지 걸어가느라 족히 10분은 허비한 탓에 안그래도 감기 걸려 골골거리는 아이는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콜록거리기 시작한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짜증난 티내지 말자 다짐하며 탑승. 의례 예의상 주고받는 ‘미안합니다’ 한마디 쯤은 당연히 기대 했는데 아무 말이 없다. 대신 ‘내가 목적지에 왔더니 아무도 없어서 한바퀴 돌다가 그렇게 된 거’라는 안물안궁 변명을 늘어 놓는다.
딱히 상대하기 싫은 상황에서는 리액션을 잘 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역시 나는 첫 마디 듣고 ‘아 됐다’ 싶어 그냥 잠자코 뒷좌석에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 가까운 곳이라 10분 남짓 만에 목적지 근처에 도착.
처음 오는 곳이라 정확하게 회식 장소 주소와 이름을 찍었건만 기사님은 어둑한 뒷골목 빌라 한 가운데 차를 세운다. 아무리 봐도 근처에 편의점 하나 없는 으슥한 골목.
“목적지에 다 왔습니다”
“기사님 여기가 아니에요. 제가 식당 이름과 주소를 정확히 입력했습니다.”
”아니 네비가 여기라는데..“
“기사님 저도 처음 가는 곳이라 여기서 내리면 목적지를 못찾을 거 같아요”
“아니 네비가 여기라는데 222”
어쩌라는 건가. 계속 같은 소리에 짜증이 났다. 눈치로 보니 목적지 근처니까 그냥 내려서 찾아가라..는 느낌. 이렇게 춥고 어두운 밤에, 인적 드문 주택가 한 가운데서, 감기 걸린 다섯살 꼬맹이랑 길바닥 한 복판에 내려서 어딜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내 이런 꼴 당하기 싫어 일부러 웃돈 내고 서비스 좋기로 유명한 콜택시 부른 건데 뭐하는 건가 싶어 짜증이 확 치밀어 올라 결국 날카로로운 말들이 입밖으로 쏟아진다.
“기사님. 이 밤에 이렇게 어두운 골목 한 가운데서 지금 어떻게 내려요. 목적지에 정확히 안내를 해 주셔야죠”
”아니 내가 언제 내리라고 했어? 아니 네비가 여길 안내해 주는데 어쩌라는 거야?“
애써 참아 온 분노가 툭- 하고 둑 무너지듯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목소리가 갑자기 3 옥타브는 높아진다.
“아니 첨에 픽업 장소도 제대로 안 지키시더니 이게 뭐하시는 거예요?”
“뭐야? 이 아줌마야. 말 그따구로 할거야? 내가 언제 내리라고 했어 어 내가 언제 내라라고 했냐고오오…”
이 아줌마야 이 아줌마야 이 아줌마야..ㅠㅠㅠ
기사님의 한 마디에 내 발작버튼 스위치 on. 분노 게이지 급 상승해 드릉드릉 /급발진 하려는 순간 품에 안긴 어린이가 나를 말린다. “엄마 왜 그래? 왜 소리를 질러?“ ㅋㅋㅋ
에휴 애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인가. 그만하자. 겨우 이성의 끈을 잡고 불 꺼진 빌라촌 한 가운데 아이와 쫒기듯 내리니 기사님은 문을 연 채 차를 출발 시키지 않고 한참을 서서 분노인지 위협인지 모를 씩씩거림과 혼잣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는 분이 풀렸는지 차를 출발 시킨다.
저녁 회식에 대한 기대, 흥겨움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 방금 일어난 일로 인한 화와 아이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더해 부들부들 부정적인 감정이 내 안에서 요동을 쳤다.
지금 당장 택시회사 cs센터에 연락해 컴플레인을 할까. 평점 0 때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후기로 써 올릴까. 맘에 안드는 기사 거르기 기능이 있는지 찾아 봐야지. 우선 회식 가서 동료들한테 저 인간 욕좀 하고 저 회사 절대 이용하지 말라고 소문 내야겠다 등등 별 생각을 다 하며 아직도 콜록대는 아이 손을 꼭 잡고 차가운 밤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주변을 뺑뱅 돌다 겨우 찾은 목적지는 떡하니 삼거리 대로변 모두에게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열받.. 동료들에게 지각해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배고파 하는 아이에게 서둘러 파스타를 먹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치즈가 들어간 포실포실한 빵 하나를 시켜 나눠 먹으며 반가운 얼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서히 내 안에 가득 팽창한 분노가 가라 앉는다.
식당에 들어오던 때만 해도 사람들 만나기만 해봐라. 이 불쾌한 경험을 당장 공유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들으면 기분 나빠지는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올리면 뭐해. 좋은 기분과 에너지만 망치겠지. 그냥 어느 밤의 작(고 불쾌한)은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어서 잊어버리자 마음 먹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들 하는가? 뭘 지긋이 담아두는 그릇이 못되는 나는 이런 경우 앞뒤 재지 않고 즉각 파르르 반응하는 스타일이었다.
사안에 따라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문제를 공론화 시키기도 하고 내가 당한 부당한 일을 적극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며 최선을 다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 한다. 더불어 타인이 나와 같은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오지랖 떠는 인물, 그게 바로 나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현장에서 아마 앞뒤 안보고 끝까지 잘잘못 조목조목 따지며 내 분을 풀었을 거다. 요즘 세상이 별거 아닌 일로 극단까지 치닫아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공포사회다 보니 당사자와 끝까지 대거리를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꼭 택시회사에 전화해서 컴플레인을 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보기 부끄러워서 였지만 요 몇 년간 요가 명상을 하며 노오력 해서 애써 유지중인 평정심, 내 안의 잔잔한 호수에 그런 분노의 에너지를 오래 담고 있기가 싫었다.
요만큼의 이해나 양보 없이 각자의 입장만을 내세운 채 악다구니 쓰며 원색적인 저주의 말들을 주고받고 나면 과연 그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 그 누구도 아니란 걸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당장에는 기분 더럽고 억울한 마음이 턱밑까지 치받더라도 거기서 스탑, 몇 번의 긴 심호흡으로 툭툭 털고 아 오늘 별로네. 됐다 됐어 하면 끝. 방금 전까지 터질 듯했던 긴장과 부정적인 에너지는 어느새 공중분해 되어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끔찍한 사건사고 뉴스의 주인공들을 보자. 딱 이 지점에서 모두들 못참고 바닥의 바닥, 최악의 악까지 가게 되어 너무나 많은 범죄와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의 불만과 몰이해, 갈 곳 모르는 증오가 뭉치고 뭉쳐 커다란 폭탄이 되어 타인에게로 전달되고 또 전달되다 이내 펑 하고 터져 공멸하는 안타까운 과정의 반복, 그 사슬을 나부터 끊고싶었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통해 우습게도 내 발작버튼은 ‘아줌마‘ 라는 단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아니 이 아줌마가!” 는 내게 “이 여편네가!”와 동의어다. 여자니까, 주부니까, 약자니까 무턱대고 깔아보며 무시하는 말투. 존중은 커녕 철저히 상대를 짓누르는 모멸감을 불러 일으키는 말투.
아직도 생각하면 스물스물 열이 올라 오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날 밤 내 대처가 스스로 뿌듯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태도로 끝까지 가지 않았던 것, 내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 동료들에게까지 끌고 가지 않고 스스로 처리했던 것.
비슷한 상황이 또 닥친다면 어떻게 될 지 확언은 못하지만 적어도 한 번은 더 노력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맨날 꾸벅꾸벅 졸아도 명상 하길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