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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sa Zsa Zsu Mar 17. 2024

나의 삶에 대해 나는 오만하련다

스스로의 살고 싶은 사는 나. 그 시작.

나는 무언가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지혜로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자신만을 믿고, 내 경험과 내 지식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한다.

16년을 가지고 있던 내 큰 고민을 우연히 알게된 베프가 나중에 한 잔 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솔직히. 처음 그 일 알게되었을 땐 많이 서운하더라. 왜 그런 얘기를 안 하냐? 나 너랑 젤 친한 친구잖아. 나는 내 고민 너한테 얘기하는데, 그러고보니 넌 한 번도 안 하는 것 같아. 왜 그래?"


남들은 내가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잘 웃고 하니 오픈마인드에 조언하기 좋은 대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실은 다른 건 몰라도 내 삶과 에 대해서 만큼은 무척이나 완고하다. 조언을 하려는 사람에게 급 알러지반응을 보일때도 있고,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어쩌면 기본적으로 "훈수 두지 마. 니가 뭘 알아? 저리 꺼져. 건드리지 마." 이런 태도가 아닌가 싶을때도 있다. 심지어 남들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 인문학 교양서나 성공한 사람들의 처세서 같은 건 읽지 않는다. "자기가 뭘 안다고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설교한담?" 삐딱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런 책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여자는 선생님이 최고다"라고 계속 얘기하셨기 때문에 내 의사와 무관하게 자연스레 교직을 이수했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나갔던 교생 실습 기간 동안 나는 선생이 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게 되었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사춘기, 그 중요한 시기에 그들의 인생에 나침반이 되어야 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내겐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인생, 내 공부, 내 일, 내가 데려가야 할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남부럽지 않은데, 사람의 감정이나 그로 인한 결정과 판단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내 책임의 영역에서 벗어나려 한다.


남들이 나에게 진심으로 조언을 구할 땐 정말 최선을 다해 내 의견을 얘기해주지만, 그때조차 그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할 뿐이라는 걸 거듭 강조한다. 너의 입장은 또 다르니 다른 결정을 해야하는게 아닐까 라고 반문하고, 지금 결국 결정은 네가 하는 것이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누가 대신 져 줄 수 없다는 걸 얘기한다. T발 C는 아니다. 난 극 F다.



어렸을 때 부터 그랬냐 하면, 그렇진 않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넌 그런 애였던 것 같아.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을 주지 않으면 뭔가를 되게 잘 하려고 노력해서 어떻게든 그걸로 사람들이 칭찬하게 만들고 싶어하더라구. 할머니 할아버지가 장손만 편애하고 엄마도 말썽피우는 동생만 챙기니까 니가 언제부턴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좋은 고등학교를 가더라구. 엄마 아빠가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걸 보면서 기뻐하고... 그런 네 모습을 보고 되려 짠했었다"


사실 난 원래 매우 의존적인 녀석이었다. 무슨 결정을 할라치면 늘 엄마와 선생님,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봤고, 혹여나 할지도 모르는 실수에 대해 잠 못 이루며 공포감마저 느끼는 타입이었다. 조언을 구할 땐 꼭 이 사람 저 사람 오만 사람 다 찾아 나중엔 여기저기서 받은 조언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조차 많았을 정도로 갈팡질팡하고 유약한 녀석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처럼 바뀌게 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학기 초 어느 날, 주번이라 혼자 교실에 남아 칠판을 닦고 교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 반 왕따였던 ㅇㅇ이가 뒷 문을 스르륵 열고 나타났다. 왕따라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못살게 굴고 그런 대상은 아니었고, 애가 좀 무서운 구석이 있어서 친구들이 피하는 정도였다. 왜 무서웠냐 하면,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시험지를 박박 찢으며 깔깔대고 웃거나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가는 기이한 행동들을 했었기 때문이었고, 그 아이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었다. 국민학교땐 엄청 활발하고 공부도 잘 하는 전교 회장이었다더라. 뭔가 이유가 있어 갑자기 미쳤는데 정신병이라더라....


그런 친구가 혼자 있는 교실에 스윽-하니 나타난 것 만으로도 공포심을 느꼈었는데 그 아이가 망설이며 내게 말을 걸 때까지 나는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랑 떡볶이 먹으러 가지 않을래?"

당시 버스정류장 근처에 그 당시 유명하던, DJ가 음악을 틀어주던 떡볶이 집에서 방과 후 수다떨며 시간을 보내는게 친구들끼리의 루틴이었는데, 그 친구와는 단 한번도 함께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의아한 기분이었지만 싫다고 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그러고마 하고 말았고, 그 친구가 못기다리고 집에 가길 바라며 느릿느릿 주번 일을 마무리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운동장으로 나오니 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 두 정거장 거리의 떡볶이집으로 나란히 향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무서운 소문 속의 아이었는데, 막상 얘기를 나누고 보니 의외로 작은 목소리지만 조근조근 말을 잘 했고, 이내 별 다른 것 없는 숫기 없는 친구같은 생각이 들어 여느 친구 사이처럼 연예인 얘기, 선생님 얘기,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얘기 등을 하며 떡볶이도 먹고 학용품을 사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질 때 까지 돌아다니던 우리는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고, 나는 내심 생각하고 있던 얘기들을 슬쩍 꺼내놓았다.


"너 왜 수업시간에 가끔 이상한 행동 하는거야?"

"...."

"너랑 친해지고 싶은 애들도 너가 그런 모습 보이면 무서운 거 같아서 다가가기 힘들잖아."

"힘들어."

"뭐가?"

"국민학교 땐 공부 잘했었는데, 중학교 오니까 너무 어려워"

"...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나도 국민학교 때 비해 잘 못하는데..."

"나한텐 중요해."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난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부를 지금 좀 생각만큼 못해도 중고등학교 다 합치면 아직 5년정도나 남았는데 괜찮아질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네가 꼴등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때 좋은 의도였지만, 그 친구가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 정확하게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보다는 학생으로서 해야하는 본분에 대해 얘기하는데 집중했고, 대하기 어려운 친구랑 친해져서 그렇게 좋은 말들을 해주는 내 자신의 모습이 나이스하다는 생각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고만 있다가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좀 무섭거든. 성적이 떨어지면 많이 혼나기도 하고, 나도 기분이 많이 우울해지고 그래. 지난번 시험에서 4등 떨어졌다고 밥도 못먹고 저녁내내 집에도 못 들어갔어.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지난번 시험 성적을 얘기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

"...또 떨어졌어?"

"응..."

나는 들어가서 엄마랑 진지하게 얘길 해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공부 말고 하고 싶은일을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그 애가 많이 무서워하고 있을 감정 자체 보다는, 정답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얘기들을 끝으로 우리는 어두워질 무렵 헤어졌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늘 반 친구들이 다 무서워하는 그 친구랑 시간을 보냈고,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얘길 무용담처럼 엄마에게 늘어놓기 바빴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

교실에 그 아이는 없었다.

담임선생님 대신 교감선생님이 아침 조회시간에 들어오셨고, 간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해주셨다.

ㅇㅇ이는 하교 후 새벽녘에 자살을 했고, 당시 임신중이던 담임선생님은 충격으로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지셔서 남은 기간 함께 하지 못하게 되셨다 했다. 웅성웅성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눈 앞이 하얘졌다. 지난 저녁의 일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나... 때문인가...?
내가 무슨 말들을 했었더라...?
내가 한 말들이 상처가 되었나?

무서워졌다.

말이라는게 그렇게 무서운건가 소름이 끼쳤다.

지금 생각하면 어줍잖은 내 말 몇 마디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지만, 어린 나는 그 일로 크게 충격을 받아 한 달 넘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부모님, 선생님은 물론 친구들에게 조차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자책감에 시달렸다. 길었던 자책의 시간은 그렇게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렸고, 졸업 후 우연히 사진첩에 남은 소풍 날 단체사진 속에서 하얗고 예쁘장한 그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진을 가루가 될 정도로 박박 찢어버리고는 서서히 그 일을 기억 속에서 지워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남이 내 그것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던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어느덧 사람들의 감정이나 표정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구석에서 웅크리고 혼자 있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고 함께 하려 하고, 그 날 저녁처럼 어색하고 숨 막히는 시간들은 참지 못하고 삶의 무거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익살스럽게 분위기를 이끌려고 하는 실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관계'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되어버렸고, 아직까지도 가끔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밤 잠을 설치기도 한다.


저 사람의 진짜 생각은 무엇일까.
저 사람은 나의 이런 말과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
내가 저 사람의 그 생각에 동의하지 못해도 티 내지 말아야지.
저 사람이 나 때문에 상처받는게 싫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나?
나에게 저 사람은 어떤 의미인거지.
저 사람은 내가 받을 상처에 대해 생각하긴 하는걸까.
우리의 관계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사이에서 나는 늘 산더미같이 고민한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의 가장 큰 부분이 되어버린 '사람'과 '감정', 그리고 '관계', 그것이 흘러가는 길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라는 결론을 잊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나 자신과 타인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괴로운 표정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고, 내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이 열 두 번씩은 들곤 하는데, 그걸 꾹 누르고 하고 싶은 말을 참는데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긴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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