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이 온다던데
12시 땡치면 들을 노래를 고르고 또 골랐다. 새해에 가장 처음 들은 노래대로 한 해가 흘러간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무슨 그런 미신을 다 믿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지만, 2018년엔 '손담비의 Queen'을 듣고 최소 3년은 놀고먹을 돈을 모아 퇴사를 이루었고 2019년엔 가요대축제를 보다가 보신각 종이 끝남과 동시에 틀어진 '방탄소년단의 고민보다 Go'를 듣고서는 정말 탕진잼을 했으며 2020년엔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듣고서 백수의 신분으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닌 것을 보면, 나는 그게 온전히 미신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올해 2021년은 나의 앞자리가 바뀌는 해였다. 2에서 무려 3으로. 더 이상 빠른 92라서 아직 서른이 안됐다고 우기는 일이 통하지 않을 거였다. 그랬기에 나는 더욱 '새해 첫 곡'을 고르는데 신중했다. 이 노래가 나의 한 해를, 서른을, 30대를 좌우할지도 몰랐으니까.
스물한두 살 무렵, 친한 친구들과 동네 카페에서 삼십 대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무려 일주일에 3일씩이나 만나면서 친구 A는 27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좋아하니까 4명 정도 낳아서 대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친구 B는 사업을 하거나 가게를 차리거나 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꿈꾸던 서른과 실제 서른이 된 내 모습은 분명 달랐다. 남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했다거나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하다거나 하다 못해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좀 더 특별하길 바랐다. 하지만 서른이 된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새해 인사로 뽀뽀를 하며 어리광을 부렸고, 그다음엔 재빨리 고심해서 고른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에어팟 두 쪽을 양쪽 귀에 꽂았으며, 친구들에게 이모티콘을 잔뜩 써가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카톡을 보냈다. 빽빽이 짜 놓은 새해 계획은 자고 일어나면 느슨해질 것이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다짐은 초콜릿과 함께 까먹을 것이다. 가끔씩 일이 잘 안 풀리면 앞으로 뭐 해 먹고 사냐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어떤 날은 나 자신이 못 견디게 밉고 실망스럽다가 또 다른 어떤 날은 못 견디게 기특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게 내가 아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다.
최승자 시인의 시 삼십 세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정말 강렬한 문장이다. 그렇지만 27살보단 28살에, 28살보단 29살에 조금 더 살고 싶었던 나는 30이란 숫자에 작은 바람을 불어넣어본다. 20대보다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내가 되는 일을 조금 덜 두려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