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지금 기억나는 것은 산정을 향해 빙빙 돌아 올라가는 길이 나 있던 히말라야 같은 산이다. 그 길은 나선형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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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의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났다. 작년부터 시작해서, 비록 직장 생활동안의 공백기를 거치게 되었지만 결국은 끝을 보게 되었다. 아티스트 웨이는 끝나지 않고 적어도 90일 동안은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다. 아티스트 웨이 매거진의 글이 100개가 된다면 더 이상 브런치에 소식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의 아티스트 웨이는 계속될 것이다. 아티스트의 길은 나선형이다. 했던 걸 또 하고, 후회하고, 다시 선택하고, 그리고 좌절하다가 또 회복할 것이다.
길은 결코 곧게 뻗어 있지 않다. 성장이란 왔던 길을 겹쳐 밟으며 재평가하고 재편성하는 나선형의 과정이다.
아티스트의 길은 정신적 여정이며,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순례의 길이다. 여느 장거리 여행처럼 아티스트의 길 또한 위험의 연속이다.
항상 영혼의 귀를 쫑긋 세우고 안내자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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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를 시작하게 될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는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몇 년이 걸리든 이 책을 끝까지 완수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하더라도, 창조성의 유턴이 왔을 때는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다음 주까지는 넘겼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때 포기하게 되면 정말 이 책을 다시는 펼쳐보기 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창조적 자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할 때 기분이 좋았는지에 대해서 항상 떠올리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주변의 방해자들도 많고 개인 공간이 없는 사람들은 더더욱 짜증이 솟구칠 테고 왜 항상 내가 집중하거나 비로소 진공과 창조의 상태에 다다랐을 때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전화가 울리고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창조의 여정은 아주 시끄러운 콘서트장에서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이 어렵고 험난하고 지루하고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같이 있어줬던 나 자신이 그때부터 떠오르기 시작한다. 꿈속에 나타나는 악당들이나 못돼 처먹은 과거의 사람들을 비장하게 물리쳐준다. 그리고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이런저런 꿈을 심어준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릴 때 자주 하던 놀이나 취미를 다시 꺼내서 해보고 아침에 아무렇게나 글을 적었을 뿐인데 그 존재는 점점 더 명확해진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그런 존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아무렇게나 꿈을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방해꾼이 아무리 많아도, 실컷 놀아볼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나는 누구든지 아티스트 웨이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의 길이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속죄의 마음가짐으로 산을 오르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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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복도에는 후지산과 커다란 파도가 그려진 우키요에 그림으로 된 커튼이 달려있다. 서울로 떠나던 친구가 자취방을 정리하고 선물로 준 커튼인데, 무척 마음에 든다. 드뷔시도 이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을 했다고 한다. 영감으로 가득 찬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