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soup, I am a broken fork now.
8월의 중순. 낮에는 날씨가 덥다가도, 아침저녁만 되면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추위를 좋아하는 나는, 이때가 오면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설렘을 느낌과 동시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여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도 (아마 너무 더워서 아닌가 싶다) 가을, 겨울이 다가오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주제를 끄집어내 고민하기 시작한다. 고민의 주제는 항상 우울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습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날이 시작되면 왜 우울한지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만 여름동안 비가 너무 많이와서거나, 태풍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서거나 혹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일 수도 있다. 이 고민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갉아먹는 때도 찾아오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행복하고 기쁜 사람은 그만큼 고민을 통해 답을 찾아내기 때문에 다시 찾아온 행복과 기쁨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이번 고민을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멘탈이 강하면서도 약하다. 그러니까, 나는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지만 이 상처를 금방 잊는다. 누군가는 정말 좋은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너무 잘 잊는'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도저히 괜찮아지지가 않는다. 내가 풀어야 하는 문제가 내 손안에 있을 때, 내가 잘 풀어내면 금방 잘 지나갈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그 상황에 다다르면 지레 겁부터 먹는다. 이전에 마치 한 번도 해결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걸 다 넘기고 없어지고 싶을 정도로. 이 와중에 진짜 웃긴 건 겁이란 겁은 다 먹었다가도 그 상황이 지나가면 겁먹은 그때는 생각나지 않고 나에게는 항상 '좋았던 일,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는 거다. (진짜 좋은 것 중 하나는 난 뒤끝이 없다. 싸워도 풀면 바로 이 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성격이 진짜 좋은 건 줄 알았다. "그래 지금 이렇게 힘들어해도 결국엔 해내고 다 잊을 거잖아!" 하며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모든 상황에 마주했다. 이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려면 내가 어떤 걸 잘하는지, 내가 이 상황을 잘 견디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생각을 먼저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이전에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잘 해결했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일단은 해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결과도 너무 뒤죽박죽이었다. (아 이게 잘못된 거였구나, 오늘의 고민 해결) 그리고 그만큼 멘탈이 흘렁흘렁 흔들릴 때도 있고, 바사삭 깨질 때도, 그리고 어떨 때는 흔들림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깨진 유리는 완벽하게 붙여지지 않는 것처럼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 다시 멘탈을 한 조각 한 조각 붙이는 시간을 가질 때마다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조금은 버겁다. (하이고.. 이제는 physically 나이를 먹어 더 약해진 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쩌겠어! K-직장인, K-사회인이니까 버티고 이겨내야지!
이 전에는 어-른이 되면 고민도 없고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 일을 골라서 멋있게 해내고 힘든 일이 있어도 용기 있게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주위를 보면 내 나이 언저리인 사람들은 다 어른이던데...) 어느새 나도 내가 어릴 때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에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나는 고민도 많고 내 가치관이 완전하게 정립되지도 않았고 일을 멋있게 해내지도 않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으레 겁을 먹고, 해내고 나서도 멘탈 회복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도 이 많은 것 중에서 겁을 먹다가도 '해내긴'하니까(결과는 좋다고 이야기 안 했다.) 1/4 어-른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아님) 그래도 완전한 어-른이 아니니까 내가 가진 수프가 아직 맛있다고 생각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