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을 조이는 셀프 감금

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by 이지니

“지니야, 너 방학 동안 특별히 할 일 없으면 나와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하지 않을래? 일주일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비용도 꽤 짭짤해.”

“대박! 그렇게 좋은 아르바이트라면 당장 가야지!”


2004년 1월, 중학교 동창인 P양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어요. 내게 전화를 건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친하게 지낸 사이죠. 몇 년 만에 갑자기 연락한 것도 아니기에 그녀를 의심할 여지는 없었어요. 스키장에서 일주일 동안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잠까지 설치며 기다렸어요. 드디어 대망의 날! 그녀는 일 때문에 석촌역 부근에 있다며 나를 그쪽으로 오라 했죠.


“짠!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정말 기대된다. 하하”

“사실은… 내가 시작한 일이 있는데… 너도 알았으면 좋겠어…”

아, 여자의 직감은 왜 이리도 정확하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의 목적지가 스키장이 아님을 감지했어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분노가 쓰나미처럼 밀려왔어요. 드라마 촬영 현장이었다면 그녀의 얼굴에 오렌지 주스를 붓거나 뺨이라도 때렸을 거예요. 이곳에 오기 전,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는데 취소했거든요. 어떻게든 용돈 벌이는 해야 했는데 모든 계획이 무너진 거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을 채우고 가자.’


울며 겨자 먹기로 강연장으로 안내됐고, 그곳에 나와 같은 이들을 만났어요. 소위 속임을 당한 자들이죠. 의자에 앉자마자 친구가 말한 사업 설명회가 시작됐고, 강단 앞에 선 한 남자는 한여름에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침을 뿜어내며 강연을 했어요.


“이 일을 하게 되면 돈을 버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남들처럼 일하다가는 빚만 갚다 세월만 허비하게 될 거예요.”


목에서 피가 터져라 말하는 남자는 칠판 위에 피라미드 모양을 그리고 단계별 수입 창출을 설명했어요. 뭔가 의심쩍었지만 돈을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생각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어요…


7일 동안 이어진 설명회가 끝나자 본격적인 합숙이 시작됐어요. 일을 시작하려면 500만 원의 초기 자본금이 필요하다며 내게 대출을 부추겼고, 결국 강남에 있는 제2 금융권에서 겁도 없이 대출받았네요. 이미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건물을 볼 때마다 당시의 상황과 마음이 전해져요. 마치 잔인한 장면이 난무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내 몸을 깊숙이 찌른답니다.




한 달이 넘는 합숙 생활은 처절하고 비참했어요. 이미 큰돈을 빚졌기에 어떻게든 아껴야 했고요. 다단계 구조상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데려오지 않으면 단 1원도 손에 쥘 수 없었답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 출근을 하고 10시간이 지난 후에야 숙소로 돌아왔어요. 매일 하는 일은 다음 손님(?)을 모셔오기 위한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숙소는 사무실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죠. 다 쓰러져 가는 주택 건물의 옥탑 방도 서러운데 잦은 보일러 고장으로 온수가 잘 나오지 않았어요. 한겨울에 패딩 점퍼를 입고 잠든 적도 여러 번이니 말 다했죠? 15평 남짓한 공간에 10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으니 친구나 가족에게 걸려오는 전화조차도 마음대로 받을 수 없었고요.


합숙하는 동안은 외부로 나갈 수조차 없기에 늘 실버나 골드(높은 지위에 해당하는 자를 부르는 명칭)의 감시 안에서 살아야 했어요. 말 그대로 철창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죠. 잠들기 전, 한 명씩 골드 앞으로 가 지인을 어떻게 데려올지에 대한 대본을 검사받습니다.

“지니 씨, 아주 좋은 아이디어예요. 이대로라면 성공하겠는데요?”

분명 칭찬인데 마음은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이렇게 유인해도 친구들이 거절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뿐이었어요. 하루는 가장 높은 지위인 다이아몬드 L 씨가 “지니 양, 곧 개학하겠네? 당연히 가지 않겠지?”라며 내게 휴학을 권했어요. 이곳에 왔을 때 다른 라인의 동갑내기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번 사업 성공(?)을 위해 휴학을 선택했다며 내게도 부추긴 거예요. 하지만 휴학만큼은 정말 싫었어요. 가뜩이나 남들보다 2년 늦게 진학했기에 졸업은 제때에 하고 싶었거든요. 휴학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하자 그 날로부터 L 씨는 눈앞에 있는 가시처럼 날 다하기 시작했어요. 비좁은 공간에서 잠자리는 물론 모든 게 불편했기에 가뜩이나 예민한 나는 잠을 깊이 잘 수 없었어요. 그날 새벽 1시에도 단 한 번의 문자 알림 소리에 눈이 떠졌죠. 문자를 확인한 나는 가위에 눌린 듯 온몸이 정지됐어요.


“야! OO, 제발 잘 좀 하자!”


차마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욕설이 담겨 있었거든요. 스팸 문자가 온 줄 알고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지만 분명 L 씨였어요.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문자는 몇 차례나 계속됐어요. 문자를 확인할 때마다 그가 화면 밖으로 나와 내 목을 조이는 것만 같았어요. 세 평도 안 되는 방에 여럿이 있으니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사치였어요.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옆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뜨거운 눈물을 삼켰어요. 어떠한 공포영화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웠어요. 제일 끔찍한 건, 탈출하고 싶어도 이미 진 빚으로 나갈 수 없는 현실…




다음 날 오후, 늘 그렇듯 석촌 시장 안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서 떡볶이 한 접시를 주문했어요. 사업 설명회 때 들었던 사탕발린 말과는 달리 현실은 초라하고 가엾었어요. 무엇보다 1원 한 푼의 수입도 기대할 수 없기에 식비라도 줄이지 않으면 파산될 위기는 불 보듯 뻔했죠. “자, 여기 떡볶이 1인분이요.” 점점 추워지는 날씨 탓에 손가락에 감각마저 무뎌졌지만 휘어질 대로 휘어진 큼직한 포크로 떡볶이를 찍어 들었어요. 그리고는 빠르게 입 속으로 밀어 넣었어요.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아이고, 학생! 천천히 먹어, 그러다가 채 할라.”


‘아,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결정한 내게 화가 났어요. 눈에서 밀어내는 액체와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떡볶이는 본연의 맛을 잃은 지 오래고요…


그렇게 몇 주가 더해지고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곳을 빠져나왔어요. 친언니 덕분에 대출금을 갚을 수 있었고요.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제처럼 또렷해요. 왜 그런 데를 갔느냐고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요.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 한 거죠. 내 인생에서 가위로 도려내고 싶지만 어찌 잃은 것만 있겠어요.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아도,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본 셈이에요.


세상에 공짜는 없고,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에요. 그런 일 있으면 남몰래하려고 하지, 공개를 하겠어요? 난 이제 그런 유혹은 절대 안 넘어가요. 그날의 셀프 감금만 떠올리면 목이 조여 오는 것 같으니까요.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되어 있다’라는 말처럼 어쩌면 내 앞에 계획된 일인지도 모르죠. 눈앞에 있는 허들을 넘어야만 결승선을 밟을 수 있는 육상 선수처럼 내가 넘어야 할 ‘인생의 허들’인지도요. 반드시 지나야 했기에 내 판단을 흐리게 하고 생각과 마음까지 가둬버린 건 아닐까요? 가끔씩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그때의 미각(味覺)이 떠올라요. ‘이 정도 갖고 뭘 그래?’라는 위로와 함께…

이전 05화철없는 삶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