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삶이 좋아요

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by 이지니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 알아요? 예전에 모 광고에 나온 노래인데요. 가사만 들어도 다 알 거예요.


“아빠, 힘내세요. 지니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지니가 있어요.”

“으이그, 너 때문에 더 힘들다!”

“난 아빠가 일흔을 지나 여든이 되어서도 이 노랠 부를 거예요.”

“허허, 저것은 언제쯤 철이 들까?”


말은 다 큰 딸이 징그럽다고 하지만 나는 봤어요. 하늘에 닿은 아빠 입꼬리를. 정확히 셈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1년에 다섯 번 정도는 이 노랠 불러요. 아빠가 유독 힘들어 보이는 날엔 무조건 부르죠. 맞아요, 나 3학년 5반이에요. (올해 서른다섯 짤) 아무렴 어때요.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애기인 걸요.




나는 여전히 꿈을 안고 살아요. 도저히 남을 생각할 배려 따윈 없죠. 아무리 철이 들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돼요. 뭐 하나 특출하게 잘하는 것 없지만,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많았어요. 가수, 선생님, 아나운서, 방송작가, 변호사, 번역가, 성우, 라디오 DJ… 초등학교 3, 4학년인가? 하루는 아나운서 놀이가 하고 싶어 언니에게 ‘뉴스 놀이’를 청했어요. 뉴스 대본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고요. 두루마리 화장지에 숟가락을 꽂아 마이크로 삼았다죠.


“네, 다음 소식입니다. 인천시 남구 구월동에 사는 이 모 씨네 집에 불이 났다고 하는데요. 이 불로 잠자고 있던 이 씨와 그의 아내가 크게 다쳤습니다. 지금 현장에 나가 있는 OO기자,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내용은 비극이지만 우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어요. 왼쪽 팔을 구부린 채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그럴싸한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한 기억이 나요. 한 번은 정상회담까지 개최한 적도 있어요. 나는 중국인, 언니는 일본인, 언니 친구는 미국인으로 둔갑해 서로 되지도 않는 말들의 내열로 UN에서 열린 회의보다 더욱 진지했죠. 아마 이 장면을 본 혹자는 ‘쟤네, 정말 제정신이야?’라며 걱정 한 다발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 외에도 훗날 되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재깍 언니를 소환해 놀이를 즐겼어요. 이 자리를 빌려 자나 깨나 내 요구에 응해준 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그래, 어릴 때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요. 지금도 꿈과 소명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 하면 잘할 수 있는 일, 잘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해요.


2005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7년 4월 세상에 책을 내놓기 전까지 내가 겪은 일은 정확히 서른다섯 개예요. 변명하자면, 처음에는 좋아하는 줄 알고 도전했다가 막상 해보니 내 생각과는 달리 재미없거나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무슨 일이든 짧고 굵게 했던 나였죠. 이상하게도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어요. 주저앉기도 했지만, 오래가진 않았어요. 비록 당시에는 몰라도 결국 내게 도움이 될 거라 믿었죠.


스스로를 '입방정'의 대가라 시인하는 개그맨 김영철이 JTBC <말하는 대로>에 나왔어요. 그의 버스킹을 보니 '선한 또라이'의 모습이 나와 닮았어요. 생각한 그것을 입으로 내뱉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에요. 입방정 인생을 사는 그처럼 나도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일단 뱉어요. 단, 긍정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만요. 그래야 실제로 이뤄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혹여나 나를 시기하거나 부정이 득실거리는 곳에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내 기운까지 뺏겨버리기 일쑤예요. 생각하고, 상상하고, 메모하는 것 또한 중요해요.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명확해지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생기고, 우선순위가 생기면 그만큼 바라던 곳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언니는 참 단순해요. 나이가 들어도 동심을 잃지 마세요. 정말 좋거든요.”


나와 절친한 H양의 말이에요. 이상하게 그녀 앞에서는 부끄러움이고 뭐고 없어요. 답답한 가면을 벗은 것처럼 시원하게 나를 보이죠. 꿈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생물학 나이가 든다고 해도 마음의 철은 들지 않을 거예요. 현실 앞에 철들지 않아야 후회 없는 도전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혹여나 현실이라는 벽 앞에 무릎 꿇려할 때, 더는 한 발도 나아갈 힘이 없을지라도 말이에요.


루저(Loser)의 삶을 살아온 나는요, 이제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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