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시동을 걸어요

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by 이지니

2012년 겨울,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두고 중국어 강사를 시작하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당시 중·고등학교와 백화점 그리고 회사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는 H양을 만났어요.


“언니, 정말로 중국어 강사가 되고 싶어요? 내가 적극적으로 도울게요. 일단 지금 하고 있는 과외가 한 곳이 있는데, 다른 일과 겹치게 되어서 못 할 것 같거든요. 언니가 가르칠래요?”


가족이나 지인은 가르쳐봤지만, 생판 남은 처음이라 덜컥 겁부터 났어요. 게다가 가르치게 될 아이는 화교(華僑) 학교에 재학 중이래요. 그 얘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어가 아닌 대만의 주음 부호(主音符號)로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거든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주음 부호로 중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니… 솔직히 거절하고 싶었어요.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나조차 비 맞은 생쥐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죠. 내 마음의 소리를 읽은 H양은 “행여나 주음 부호 때문에 거절하지는 마요. 그건 가르치면서 배우면 되니까. 그걸로 포기하면 진짜 안 돼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가르치기로 했어요. 수업 준비는 오롯이 선생인 내 몫이었죠. 수업하기 전, 두세 시간 동안 교재를 만들고 주음 부호를 외웠어요. 생소한 모양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내가 모르면 아이에게 가르칠 수 없기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소화해야만 했어요. 첫날의 긴장감은 두 번째, 세 번째가 될수록 옅어졌어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처럼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면서도 미래의 두려움 때움에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지금이 바로 시작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사실 알고 보면 쉬운 원리예요. 모르면 배우면 돼요. 언제까지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지금 당장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잘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는 것이야말로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아이를 가르치며 깨달은 셈이니, 이 역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얼마 전, 어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지인 Y양을 만났어요. 나와 개그코드가 잘 맞아 만나기만 하면 눈가에 주름이 늘어나는 줄도 모른 채 웃기에 바쁘죠. 이 날도 한참을 웃다 지쳐 있을 때쯤 화제를 전환하며 물었어요.


“하는 일은 잘 돼?”

“응, 나야 늘 가르치는 일이니 크게 특별한 건 없지.”

“와, 진짜 대단해. 어떻게 성인을 가르칠 수 있지? 더 긴장되지 않아?”

“확실히 아이들보다 질문이 많긴 해, 하하.”

“네가 가르치는 재주가 있나 봐.”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한 소리해요.

“아니, 절대!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한 줄 알아? 돈을 벌어야 했거든. 가르치는 일에 1원어치의 흥미도 없었어. 지금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때는 할 줄 아는 게 영어뿐이라는 생각에 더는 방법이 없더라. 처음에는 떨리고 긴장돼서 공부를 좀 더 하고 가르칠까, 싶었어.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언제 공부해서 가르치겠어. 가르치면서 준비하는 게 낫지 싶더라고. 지금 하지 않으면 기회는 날아가 버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다음은 없더라, 내게 온 ‘지금’하는 게 맞더라고.”


그녀 말처럼 조금은 부족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발을 내디뎌야 해요. 더 배우고, 갈고닦는다고 해서 전보다 크게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지금 내게 온 기회도 양심이란 게 있어요.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애초에 날 찾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내 머릿속에 떠도는 일이나 생각, 눈앞에 지나는 기회가 단언컨대 이유 없이 오진 않았다는 거란 말이에요. 지금, 그 기회를 잡고 시작할 때예요.




수많은 기회 중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건, 효도가 아닐까 싶어요. 이것이야말로 시기를 늦춰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기회니까요.


“나중에 잘 되면 꼭 효도할게요.”


부끄럽지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어요. 부모님이야말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결단코 당신의 자녀를 기다려주지 못하는데 말이에요. 지난 4월, 정정하시던 외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리면서 또 한 번 느꼈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예고 없이 이별할 수 있구나.’


용돈을 두둑하게 드릴 수 없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물론 재정으로 기쁘게 해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효도는 아니니까요. 그저 말 한마디를 건네도 짜증을 섞지 말고, 내가 바쁘다고 해서 부모님의 작은 부탁을 거절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비록 나조차 나이 들어가지만 그분들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애처럼 애교 부리고, 아프지 않고 건강히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진짜 효도 아닐까요?


작년 봄, 언니가 결혼을 한 뒤로 나와 부모님과의 시간이 더 잦아졌어요. 몇 년 전만 해도 함께 외출하자는 말에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두 분만 다녀오시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웬만하면 함께 길을 나서요. 그리고는 두 분의 사진사가 되어 여러 포즈를 요청하며 추억을 만들어 드리죠. 가끔 동영상 촬영까지 해요. 먼 산을 바라보며 자작시(時)를 읊는 아빠, 칼국수를 기막히게 만드는 엄마, 별것도 아닌 일에 웃음이 터져 배꼽 잡고 웃는 모습 등을 담아요.


“에이, 왜 자꾸 찍어?”

“이제 그만 찍어도 돼, 우리 딸 힘들잖아.”


이 와중에도 자식 걱정이세요. 하지만 나는 알아요. 집에 와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즐거워하실 두 분의 모습을. “에이, 저건 누가 못 해, 저게 무슨 효도야.”라고 한다면 말만 하지 말고, 그대로 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든 부모님께 하는 일이든 미루지 말자고요.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일이 있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면 하지 마세요. 다만, 한 해 한 해 머릿속에 깊이 박힌 채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이라면 더 늦기 전에 꺼내요. 지금, 얼른 시동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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