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내게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 한 통이 날아와요. 비영리단체 ‘따뜻한 하루’에서 보내는 글이요. 그 속엔 감동을 넘어 삶의 지혜와 교훈까지 담겨 있어요.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일을 열었어요.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제목. 그 안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어요.
‘그녀는 빈민가에서 10대 흑인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해 14살에 임신해 조산아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낳은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게 됩니다.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마약 중독자로 10대를 보내며 고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곁길로 가기 쉬운 암울하고도 불운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재는 타임지가 뽑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 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바로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자신이 쓴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자서전에서 네 가지 사명을 말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가난과 아픔 속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것을 인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도, 지금의 부유함도 인생의 사명으로 여긴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여정 가운데는 수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사명으로 삼을 수도, 좌절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참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 눈을 고정했어요. 먹먹한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죠. 만약 내가 그녀였다면?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두드렸어요. 어느 인생도 덜 힘들고 더 힘든 건 없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싶더라고요. 불운도 이렇게 불운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리했고요. 나도 모르게 모니터 안에 있는 그녀의 사연 앞에 자동으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힘든 시간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신은 그 사람이 딱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허락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가슴이 찢길 듯 아프지만 결국 이겨냈고, 앞으로도 이겨낼 거예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몹쓸 병에 걸린 사연은 앞에서 언급했어요. 부모님한테는 시간이 지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일 테지만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가뜩이나 엄살이 심한 내가 그날을 기억한다면 뒷감당은 불 보듯 뻔할 테니 다행(?)이에요. 어릴 때 이사를 하도 자주 다닌 탓에 공부에 집중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는 내 성적표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양, 가 집 딸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 이사는 핑계겠죠…) 공부도 못 했고, 그렇다고 말썽을 피워 튀는 아이도 아니었어요. 끈기가 부족해 작심삼일(作心三日)과 지구력은 남의 나라 말이었고요. 대중 매체 혹은 귀동냥으로 어느 누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거나 들으면 미친 듯이 부러웠지만, 딱! 그때뿐이었어요.
이런 제게도 잘하는 게 하나 있어요. 그것은 실행력.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움직여요. 필요한 도구를 산다거나, 학원에 등록하는 등의 행위 말이죠. 하지만 재미를 느끼는 건 길어야 6개월,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발을 빼요. 서른다섯 개가 넘는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2년 이상을 버티지 못했어요. 자의든 타의든 2년이 최대였죠. 회사를 나올 때마다 마음 안에 이런 소리가 들렸어요.
‘그럼 그렇지,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이래 갖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시간만 허비한 게 벌써 몇 년이니?’
나 역시 연약한 인간인지라 이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어요. 애써 모른 척하며 다시 일어섰죠. 서른 번이 넘는 넘어짐에도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악마의 속삭임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할 수 있어!’라는 천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이쯤에서 언니 이야기를 또 안 할 수 없네요.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유전자 중 손재주는 고스란히 언니한테 갔어요.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를 기막히게 잘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요리 솜씨도 보통이 아녜요. 타고난 재능이 있기에 전문으로 배우면 좋았을 텐데, 가정 형편상 꿈에 그리던 미대 진학과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접어야 했죠. 그러나 옷을 향한 사랑은 접을 수 없었는지 약 5년 동안 동대문(시장)에서 옷에 파묻혀 살았어요.
남들 잘 때 일하고, 일할 때 자야만 했던 언니. 밤낮이 바뀐 생활을 무려 5년이 넘는 시간을 했으니 아무리 옷이 좋다고 해도 지치지 않을 수 없겠죠. 주 6일을 동대문으로 출. 퇴근하려면 몸이 천근만근이었을 테니까요. 결국 언니는 그곳을 정리해요. 알 만한 사람은 알 테지만 쉬는 것도 그때뿐, 너무 길면 그것만큼 곤욕스러운 건 또 없더라고요. 언니는 스트레스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몸무게,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감당해야 했어요. 내 코가 석 자지만, 언니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거예요.
어느 날,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내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서 짧은 글과 함께 올리라고 권유했어요. 내 조언은 늘 한 귀로 듣고 흘리더니 웬일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블로그에 올리더군요. 자연스레 혈색도 되찾았고요. 처량하고, 불쌍하고, 초라하게만 보였는데 삶의 활력을 되찾은 것 같아 어찌나 기쁘던지. 한술 더 떠 언니의 그림을 보고 작업 의뢰까지 받는 영광을 얻었어요. 그렇게 1년의 시간을 갖고 다시 동대문으로 갔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지금의 왕자님을 만났답니다.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난 내 숍을 운영하면서,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고 싶어"라고 하더니 말처럼 바라던 삶을 살고 있어요. 형부와 같이 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최근에는 사무실도 생겼어요.
언니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한탄하며 낙심하지 않고, 얼른 일어나 더 나은 곳을 바라보려 애썼어요. 인생은 한편으론 참 단순해요. 결국 선한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오니까요. 비록 언니가 생각한 방향은 아니지만 목적지는 맞게 온 것도 신기해요.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지만, 꿈에 그리던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에요. 언니를 볼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음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마지막 후렴구에 닿을 때까지 절대로 중단하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