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출간한 책이 있어요. 이 책의 출판 계약 기간이 5년인 줄 알았거든요? 엊그제 책장을 정리하다가 출판 계약서를 넣은 파일을 꺼내어 보니, 세상에... 계약 기간이 3년이더라고요. 일단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미 3년이 지났거든요. 계약이 만료되면 타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내고 싶었습니다. 왜냐고요? 지금껏 이 책에 대한 인세 보고를 몇 년 전부터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요. 마지막 인세를 받은 이후로도 판매가 이뤄진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내가 고생해서 쓴 책이지만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으니, 책 홍보에도 자연스레 힘이 빠지더라고요. '이 책을 내가 홍보해서 뭐해? 어차피 인세도 못 받을 걸 누구 좋으라고...'라는 생각에 내가 낳은 자식 같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계약이 종료되길 기다렸고요.
그. 런. 데...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 보니,
계약기간 만료 1개월 전까지 "갑"과 "을"간에 별도 서면이나 이메일에 의한 의사표시가 없으면 총판 계약을 동일한 조건으로 자동 재계약된 것으로 한다.
이 서류를 만료 1개월이 이미 지난 시점에 봤으니까, 자동 3년으로 재계약이 됐단 말이죠? 맞죠? 아... 뭐 이런 조항이 다 있나요... 출판사에서 재계약 동의 여부를 묻지 않는 한, 만료 시점을 기억하는 저자가 어디에 있죠?
그래요,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어요. 고생하며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좋아서 날뛰며 계약서에 사인한 건 난데요, 뭘... 아, 이래서 겪어보고,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는 건가요. 계약 당시, 나는 왜 이 조항을 상세히 읽지 않았을까요. 쩝.
나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출판사와 연락을 안 한 지가 1년 반이 넘었습니다. (할많하않) 연락이 끊긴 후 인세 보고까지 못 받는 상황이라 내 책이 그간 몇 권이나 팔렸는지 알 수가 없네요. 뭐 그것까진 상관없어요. 내가 인세 때문에 책을 쓴 건 아니니까요. 응당 받아야 하는 돈이지만요.
출판 계약을 앞둔 여러분! 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기쁨도 좋지만, 냉정하게 계약서를 살펴야 해요. 지나고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네요... 그런데 말이죠. 출판 계약서에서 '갑'이 저자고 '을'이 출판사인데, 저자에게 갑질 하라고 '갑'의 자리를 내준 건 아니지만 자동 재계약이 누굴 위한 조항이죠? 물론, 매년 투명한 인세 보고를 받는 상황에서 자동으로 재계약이 됐다면 되려 좋아했겠지요. 이 글을 쓸 일도 없고요. (그래도 나는 이 조항을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을래요)
커피 한 잔 사 마실 여윳돈도 없던 시절, 오롯이 선택과 집중만을 택해 집필한 책이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하여, 새로운 곳에서 제대로 사랑을 줄까 했는데, 3년이 지나 확인한 저 조항이 발목을 잡은 듯해 기분이 영 별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