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한테는 '100일의 기적'이 필요 없었습니다. 조리원에서 퇴소 후 집에 온 순간부터 생후 130일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분유도 잘 먹고, 매일 수유량이나 분유텀이 기막히게 정확하고, 응가도 잘했거든요. 무엇보다 잠을 정말 잘 잤습니다. 밤이 되기가 무섭게 다음 날 아침까지 서너 시간마다 깨서 우는 첫째 때와는 달리, 한 번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조금의 미동도 신음도 없이 통.잠.을 자던 둘째...
그런 둘째가 열흘 전부터 감기로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인지 새벽에 그렇게 깨서 웁니다. 겪은 분들은 아시죠? 아이가 울면 엄마는 그날 잠 다 잔 거... 130일의 자유가 끝나고, 진짜 '헬 육아'로 접어든 느낌이라 우울했습니다. 38살의 첫째 육아도 힘들었지만, 불혹 육아는 정말 만만치 않네요. 거기에 첫째까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그야말로 체력 고갈입니다. 더 이상 가져다 쓸 힘도 없고요.
어제는 너무 힘이 들어서 울고 싶더라고요. 급기야 남편은 고열로 해열제를 복용했고, 나는 두통으로 눈알이 빠질 듯해 약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순간, 이렇게 내 몸을 박살내면서까지 둘을 낳았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우 버티던 몸의 나사마저 다 빠진 듯했으니까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오늘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쉬는 날이라 함께 돌보고 있어요. 좀 전에 빨래 정리하면서 잠깐 티브이를 켰습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이 나왔어요. 화면 속 36살 여성은 바르르 입을 떨며 자신의 고민을 얘기합니다.
"8년 만에 생긴 아기인데, 임신 26주 차에 유산했어요..."
8년 만에 얻은 아기... 세상 모든 아기가 귀하지만, 8년을 기다려 만났대요.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의 심정지로 중기 유산을 했다고 합니다. 나도 첫째를 임신하기 전, '우주(태명)'를 먼저 보낸 적이 있습니다. 초기 유산으로요. 유산 판정을 들은 날, 차디찬 수술대에 올라 소파술(자궁의 속막을 긁어내는 수술. 자궁 속막의 병을 치료하거나 유산했을 때 자궁 속의 내용물을 긁어내기 위함)을 했습니다. 옆 방에서는 자연 분만으로 아기를 낳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그저 수술대에 누워 홀로 울음을 삼켜야 했지요. 아무리 초기 유산이 흔하다고 해도 당사자에게는 쉽게 잊히지 않는 아픔이잖아요. 애 둘을 낳은 지금도, 아주 가끔 우주가 생각나는데... 고민 여성의 아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툭하면 울고 떼쓰는 생후 30개월의 첫째,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재끼는 생후 4개월의 둘째 때문에 멘탈이 다 쓰고 버린 휴지처럼 너덜너덜해진 요즘, 고민 여성의 이야기가 나를 초심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래요, 초기 유산 후에 임신이 더욱 간절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습니다. 입덧과 무기력, 호르몬의 영향으로 예민해져 몸은 힘들지만, 곧 만날 아기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늘 설렘으로 보낸 임신 40주. 그 감사함을 참 빨리도 잊어버리네요.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을 알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죠? 힘들다는 이 시간도 어느 날 뒤돌면 기억의 손에 닿지도 않을 만큼 멀리 가 버릴 테지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영유아 육아 기간, 오직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시간... 이 시기의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