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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l 27. 2023

1절까지만 했어야 했는데...

말인지 방귀인지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1절까지만 했어야 했는데...







지난 7월 5일부터 인천 부평 갈산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12차시 수업이고 주 2회 진행이라 어제가 벌써 9차시다.



6차시 때인가? 강의실에 들어서자 강사 책상에 테이크아웃 커피가 놓여 있었다. Ai 인공지능, 챗 GPT 시대에 이게 웬 우렁각시인가. 사랑의 범인은 바로! 수업마다 가장 먼저 오시는 Y 학우님이었다. 학우님의 마음에 감사해서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라며 최신형 폴더폰처럼 90도로 인사했다. 그날부터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커피가 놓였다. 9차시인 어제도 또! 어김없길래 Y 학우님 자리로 날아갔다.




"아이코, 이번에도 제 커피까지 사 오셨네요. 감사히 잘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매번 제 커피는 안 사 오셔도 돼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다음부터는 학우님 것만 들고 오셔요!"라며 친절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씀 아니... 부탁드렸다.




"에이, 부담 갖지 마세요! 제 커피 사면서 겸사겸사 하나 더 들고 오는 건데요, 뭘~"





흠. 거짓말... 겸사겸사 하나 더 들고 오기엔 날씨가 뜨겁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겨드랑이가 끈적이고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무 크기처럼 빅 사이즈 테이크아웃 커피를 두 잔이나 들고 오시는 게 어디 쉽냔 말이다. 역시... 웃을 때 눈웃음이 매력인, 누가 들어도 편안한 어투를 소유한 Y 학우님의 말씀답다.





여기까진 좋았다. 아주 훈훈해. 문제는 그다음이다.





"매번 제 커피까지 사주시면, 남은 10, 11, 12차시도 사 오실 거 아녜요~~~"





아차. 입이 방정이라더니, 진짜 방정 떨었네... 미쳤다. "학우님! 종강할 때까지 제 커피를 부탁드려요!"와 뭐가 다르냔 말이다... '말인지 방귀인지 알 수 없는 말'이 하필 내가 뱉은 말과 찰떡이구나. 물론 내 진심은 '앞으로 제 커피는 사 오지 마셔요.'였다. 하지만 듣는 이는 반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저렇게 말하면 안 됐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남은 회차도 사 오실 거잖아요,라고 발언한 '내 입'이 기막히다. 감사하다고 잘 마시겠다고 까지만 했어야 했다. 딱 1절까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의 Y 학우님은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내 거지 같은 말을 웃음으로 덮으셨다. 농으로 한 말이니 부디 반대편 귀로 바로 흘려버리셨기를. ​







오늘도 감사히 잘 마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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