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설렘의 감정만을 안고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세나북스 대표님을 만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 근처 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개찰구 앞에 섰을 때까지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개찰구에 대면, 분명 '찍-' 하고 인식이 돼야 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표 사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현금 결제만 가능하단다. 나는 신용카드 하나 없이, 모든 결제를 삼성 페이로 해왔기에 아무런 대비책이 없었다. 순간 '당황스러움'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10시 38분 열차를 타야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데, 남은 시간이 겨우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질 즈음, 한 어르신이 내게 다가왔다. "내가 1만 원 줄 테니, 이체해 줄래요?" 설마...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 알고 보니 지하철 안내 도우미로 계시던 할아버지였다. 개찰구에서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신 거다.
이런 순간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 따뜻한 인연이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드린 후, 1만 원을 이체해 드렸다. 그러곤 빠르게 일일 승차권을 구매했다. 어르신의 센스와 지혜 덕분에 겨우 시간에 맞춰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약속 장소는 5호선 '영등포 시장역' 근처였다. 지하철에서 네이버 지도를 켜니 2번 출구 근처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걷는 길이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역에서 겨우 3분 거리라는데, 점점 더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길치'다. 아무리 길치라지만, 3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조차 길을 잃다니! 이런 내 모습을 옆에서 누가 봤다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며 웃었겠지. (나라도 웃었겠다. -_-)
결국, 이미 도착한 출판사 대표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는 오히려 시간을 더 지체할 것만 같았다. 이미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지난 후였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우산도 없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대표님과 2번 출구에서 보기로 했는데, 출구로 가는 길마저도 시민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2번 출구로 마중을 나온 대표님을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마트에서 엄마를 잃고 다시 찾은 아이처럼 대표님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세상에! 2번 출구 앞에 있는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니 바로 목적지로 가는 출구가... 허탈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작가님, 고생했네... 여기가 알면 쉬운데 처음 오면 많이 헷갈려요."라는 대표님의 위로에도 그저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 정도로 역에서 가까웠다... ㅎㅎ...)
대표님과 함께한 2시간은 초고속으로 흘렀다. 릴스 촬영, 서로의 여름휴가 이야기, 차기작 이야기 등을 나누고 나서 나는 다시 집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에 탄 지 10분이 지났을까.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메시지 한 통이 왔다. '또또'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조금 일찍 하원시키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 1시간이나 더 걸리는데, 왜 하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지...'라며 애꿎은 우리 아가 또또를 원망했다. 모든 일이 꼬이기만 한 오늘이라 좀 더 예민한 탓이었으리라. 다행히 남편이 급한 업무를 마치고 하원하러 가겠다고 해주었다.
오늘 하루는 마치 지니의 '운수 좋은 날'처럼 꼬이고 꼬였지만, 그 속에서도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루가 복잡하게 흘러가도, 우연히 만난 인연과 예상치 못한 도움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반성하고 배우고 깨닫는다. 꼬인 하루가 결국은 나를 성장시키는 날임을 깨달은 오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