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P 양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한 3~4개월 만? 물론 그리 긴 공백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를 생각해 보면 그간의 공백은 꽤 길게 느껴졌다. 이전에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그녀는 사라졌고,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연락을 못 했어. 미안해.” 그녀는 연신 미안함을 표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정말 미안해할 필요가 있을까?
결혼 전이었다면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바쁜 척하는 건 아닌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건 아닌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내 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는 고된 일상 속에서 '연락'은 어느덧 사치가 되었다.
어떤 날들은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처럼 느껴졌다. 친구에게 "잘 지내?"라고 묻는 것조차 때로는 버겁게 다가왔다. 나 역시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다른 이들에게 연락을 기대하기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게 되었다.
P 양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그녀에게도 삶의 무게가, 마음의 부담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니 그간의 공백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니, 그녀가 내게 다시 연락해 준 자체가 오히려 고마웠다. 중요한 건 연락의 빈도가 아니다. 우리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타이밍이었을 뿐이다.
사람 관계도 그러하다. 인연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억지로 이으려 하기보다는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지는 것. 그렇지 않다면, 굳이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 인연은 어쩌면 거기까지다. 멈추는 것이 서로에게 낫다.
오랜만에 그녀의 연락을 받고, 나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우리의 인연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니,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녀가 고단한 마음과 몸으로 내게 다가온 것처럼, 나도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지난주부터 둘째가 아파서 가정 보육 중이고, 늘어난 강의 제안으로 준비할 게 산더미지만, 겨우겨우 시간을 내어 낼모레 그녀를 만날 것이다
인연은 시간이 지나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 중요한 건, 인연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가 얼마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 도중에 끊어졌다가 다시 인연이 이어질 때 얼마나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