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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Apr 09. 2020

작사 '가사'를 비난해서 죄송합니다

이지니의 <닥치는 대로 경험했어요>

노랫말이 좋아, 작사 경험담



<가사를 비난해서 죄송합니다>




“취미가 뭔가?”

“음악 감상이요.”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이 질문에 영혼 없는 말투로 음악이란 녀석을 꺼낸다. 하지만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 따윈 없다. 정말로, 진실로 노래를 옆에 끼고 살았으니까. 살고 있으니까. 사춘기의 증표인 여드름이 맺힐 때인 듯하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모르는 멜로디와 노랫말을 제멋대로 붙여 흥얼거리기 시작한 게. 1분 후 다시 부르라고 하면 까먹는 뭐 그런 거다.



‘언젠가는 작사를 꼭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아마도 이때 자란 듯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음악. 자연스레 작사에도 관심이 갔던 모양이다. 그림보다는 글이 좋은 나라서? 노래 역시도 멜로디보다는 노랫말이 먼저 귀에 닿는다. 가사가 내 마음에 꽂혀야 비로소 ‘즐겨 듣는 노래’에 안착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가사를 평가질(?)한다.



“이게 노래 가사야? 이런 건 나도 쓰겠다.”



그렇다. 음악을 듣다가 쉽게 느끼거나, 어처구니없는 듯한 가사가 귓가에 닿을 때면, 내 식대로 비난을 들이붓는다. 특히 아이돌 노래일수록 비난의 화살은 더욱 거칠다.



"뭘 자꾸 으르렁대는 거야?"

(소싯적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이미 반성했어요. 얼마나 대단한 가사인지 잘 압니다, 이젠)



 화살의 커튼은 2016년 가을에 막을 내렸다. 작사를 제대로 배우게 되면서부터다. 나는 인천 지하철 노선 끝자락에 살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알겠지만, 분당선까지는 편도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얼마나 배우고 싶으면 그 먼 데까지 갔나 싶다. 하여튼, 나는 자기 계발에 관한 거라면 그곳이 어디든, 얼마의 수업료를 지불든 배워야 했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건 빚-_-) 내 열정을 좀 알아달란 얘기다. 후훗.



작사 학원에 등록하기 일주일 전, KBS1 <인간극장>에 어느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그는 친필로 쓴 수백 여장의 종이를 마치 집안의 보물처럼 여겼다.



“내 꿈은 작사가야. 생각날 때마다 노랫말을 적지. 그동안의 습작만 500곡이 넘을 거야.”



신선한 충격은 이내 동공을 흔들었다. 일흔이 훌쩍 넘은 어르신도 꿈을 향해 노력하는데, 꼭 한번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면서 말로만 뻐끔거린 내가 죄스러웠다. 이거야 말로 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었다. 정말 원한다면 이 어르신처럼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내가 누군가? 실행이 빠른 이지니 아닌가. 물론 포기도 빨라서 문제일 때가 많지만. -_- 작사 전문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바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전문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이날 처음 알았다.



"안녕하세요. 인터넷에서 보고 연락드려요. 작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요, 등록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 좀 해도 되나요?"



자고로 선조님이 그러셨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500만 원 사기 다단계 이후 의심이 많아진 터라 수강하기 전 몇 가지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Q and A를 통과한 후, 비로소 나는 매주 목요일이 되면 분당선에 꿈도 싣고, 몸도 실었다. 총 두 군데의 작사 학원을 다녔는데 처음 간 곳이 분당(주로 아이돌 노래 위주)이었고, 큐브 엔터테인먼트와 연계된 곳에서 두 번째 수업을 받았다. (조권을 비롯해, 그룹 '워너원'으로 활동한 대만인 라이관린, 장현승 등의 아티스트가 소속된 곳이다)



한 반에 수강 인원은 5명~10명 남짓. 거의 다 여성이다. 그리고 주마다 과제가 있다. 노랫말이 없는 멜로디에 가이드만 넣은(뜻이 없는 가사) 음악 파일을 준다. 그걸 가지고 내내 듣는 거다. 이별 곡인지, 사랑 노랜지, 우정 얘긴지, 부모님에 관한 이야긴지, 꿈을 향한 노랜지 그것부터 본인이 정해야 한다.



만약 이별 노래라면, 연애 기간이 어느 정도인 커플의 이별인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계절의 이별인지. 낮에 한 이별인지, 밤에 한 이별인지. 이별 직후인지, 직전인지, 일주일 후인지, 1년 후인지. 이별 장소가 학교인지 카페인지 거리인지. 그 순간 여자(혹은 남자)는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씨는 어땠는지. 세상 디테일하게 정해야 한다. 그리고 가이드를 들으며 음절을 파악해야 한다. 노래 한 곡에 들어갈 글자가 몇 개인지 체크하는 거다. 보통 O표시로 한다.



1절>

 

가이드 : 라 랄라 라랄라 라 랄라 라랄라

음절 정리 : O-OO OOO O-OO OOO

가사 입히기 :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첫 과제를 하는 순간 나는, 전•현직 작사가에 경외감을 표했다. 정말 뭐든지 해봐야 아는구나, 해봐야 깨닫는구나, 싶다. 그저 내 Feel이 닿는 대로 쓰는 게 아니더라. 만약 이 곡을 부를 가수가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 가수의 이미지와 어울려야 하고, 컴백하는 콘셉트와 적절해야 하며,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혹은 노랫말 속의 상황에 따라 말투도 정해야 한다. 또한 노래 부르기에 좀 더 편한 글자들이 있어서 되도록 그 글자를 배치하는 게 좋다.



반성한다. 이전의 나를 반성한다. 노래 가사가 너무 쉽다고, 이런 게 무슨 가사냐고, 이건 나도 쓸 수 있다고 으스대던 때를 깊이 반성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어렵다. 노래가 쉽게 들리고, 쉽게 불릴수록 그만큼의 두통을 견디고,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작업했을 터다. 마치 쉽고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수십 번의 글을 고치는 나처럼 말이다. 그러니 아이돌 노랫말은 당연하다. 유행은 빠르게 변한다. 1020 세대의 귀는 물론 마음까지 움직여야 한다. 그들의 시대에 올라타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 동안 고심하며 쓴 노랫말은 수강생 전원이 함께 듣고 평가한다. 총평은 현직 작사가인 강사님이 한다. 수업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와, 다들 뭐지?' 수강생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혼자 우쭐대던 우물 안 속의 내가 비춘다. 어깨가 축 늘어진다. 바로 현장에서 곡 하나를 맡아도 될 만한 실력들이다. 내 눈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듯해도 강사님은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버무린다. 그리고는 나 같은 아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현실 조언을 잊지 않는다.



"현장에 나가면 소리 없는 전쟁이에요. 작곡가는 한 작사가에게 곡을 주지 않아요. 작사가 김이나 씨나 그 외 몇몇을 제외하고는요. 작곡가는 여러 작사가에게 곡을 맡겨요. 기간을 정해 곡을 완료하면, 내 곡이 선정될 때까지 피 말리는 기다림을 해야 합니다. 작사가로 데뷔했다고 해서 알아서 곡을 주지 않아요."



'와, 산 넘어 산이구나'



이런 내게도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가루약>이라는 제목의 가사를 칭찬받았을 때다. 멜로디 자체가 애잔한 느낌이라 반드시 이별 곡이어야 했고, 이별 후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슬픔을, 목에 채 넘기지 못한 가루약에 빗대어 노랫말을 썼다.



“지니 씨, 이 노래는 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아! 수업을 듣는 6개월 동안 이 극찬 하나면 됐다. 더는 바랄 게 없다. 수업료가 비싸서 6개월도 힘겹게 버텼는데, 유종의 미(?)를 거둔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수업을 종료했다. 학원에서 정한 9개월은 다 채우지 못했지만, 이 칭찬 하나로 나는 만족한다. 작사의 'ㅈ'자도 몰랐던 내게 신세계를 보여준 값진 시간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김이나 작사가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회사에 다니면서 작사를 시작했고, 수입이 월급을 추월할 때쯤, 퇴사했다고 하던데. 그녀가 만든 노랫말을 보면, 이제는 이론과 실전을 배워서인지 정말로 달리 보인다. 그냥 “와!”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래서 무슨 일이든 직접 부딪혀야 해’



이렇게 또 하나의 경험으로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내 본업은 작가다. 그래서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매일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멀티 시대가 아닌가? 작사도 글과 연관됐으니 내 마음에 들어왔던 것. 기회가 닿는다면 제대로 작사해서 가수님이 불렀으면 좋겠다. 작곡을 할 줄 알면 작사에 좀 더 유리하다고 한다. 해서 6년 전엔 우쿨렐레 악기까지 사서 배우기도 했는데...



여하튼, 작사는 내게 귀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https://linktr.ee/jinny0201




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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