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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n 03. 2020

엄마랑 라디오에 출연하다

이지니의 <닥치는 대로 경험했어요>

+ 방송 일자 : 5일 금요일 오후 4-6시 사이
+ SBS 파워 FM/러브 FM, 붐의 <붐붐파워>
+ 주파수 : 107.7 or 103.5 MHz



저녁 식사로 불고기덮밥을 먹고 소파를 침대 삼아 두 다리를 쭉 펴고 누워 <미운 우리 새끼> 재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미스터 트롯>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 장민호 님과 영탁 님의 영상을 보며 낄낄대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오잉? 이 밤에 누구지?'


저장된 번호라면 응당 이름이 떠야 하는데, 휴대폰 화면에는 낯선 숫자만 동동 떠있을 뿐이었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나라서, 전화가 끊길 때까지의 20-30초를 묵묵히 기다렸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궁금했다. 070이나 15××으로 시작하면 광고일 확률이 높지만, 일반 휴대폰 번호였기에 상대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메시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30초도 채 되지 않는 그 순간, 마치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왔다.


"sbs 라디오 붐붐파워팀이에요.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한데 혹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허허허허헣거거거거거거걱!!!!

지상파 라디오 방송국에서 내게 러브콜을??? 왜???


널브러진 내 몸은 어느새 해병대를 방불케 하는 곧은 몸 날림으로 일어나 앉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방송'을 사랑한다. 만약 하늘의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 허지웅 님이나 임경선 님이 그랬듯, 나도 라디오 고정 출연을 시작으로 방송하는 글쟁이를 바란다. (엄마가 꿈은 크게 가지라 했다) 비록 일회성, 그것도 잠깐의 전화 연결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방송인 붐 씨가 DJ로 하는 프로그램이니 마다할 이유는 1도 없었다.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작가님을 만날 준비하는 10초의 시간이 소싯적 소개팅을 앞둔 때보다 더욱 긴장됐다. 사연은 이랬다. 내가 예전에 쓴 글이 당시 방송에는 소개되진 않았지만, 가지고(?) 계셨단다. 킵하신 거다. ㅎㅎ 그러다 출연자 섭외를 앞두고 본래 출연하기로 한 청취자가 개인 사정으로 할 수 없게 되자 내게로 기회가 넘어온 것이다. 난 이것을 '기회'라 여겼다!



통화 연결이 되면 붐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도 푼단다. 과거 sbs 막내작가 시절에 붐 씨와 함께 방송한 적이 있는데, 십수 년 만에 이렇게 재회(?)하다니... 그는 물론 나를 기억 못 할 테지만, 내 마음은 잘 자란 제자를 만나는 기분이다. (그의 잘됨이 괜스레 내가 더 뿌듯해서)


전화 연결은 당장 내일 오후 2시라며, 다급한 요청에 응해준 내게 작가님은 연신 감사하다, 죄송하다고 말한다. 이런 기회가 안 오고, 안 줘서 문제지... 나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 되려 이 기회가 얼마나 기쁘고 떨리고 설레던지...



나와 십 여 분을 사전 인터뷰한 작가님은 "하하하, 너무 재밌으세요!!"라는 말만 수없이 뱉으셨다. 자칫 푼수 떼기로 보일까 걱정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기분 좋다.



내가 소개한 지인 한 명과 함께 퀴즈를 푼다는데, 상대는 엄마로 정했다. 엄마는 지금 이 사실을 모른다. 내일 아침에 알려야지. 많이 놀라시겠지만 엄마도 누구보다 방송을 좋아하시니 거절은 안 하실 거다.


아아아, 떨린다. 감사하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이 기회를 나는 놓치지 않을 거다. 오늘의 이 점 하나가, 훗날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





==== 금일 녹음 방송 후

저도 놀랐습니다. 라디오 (전화) 출연을요.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DJ 붐 님의 <붐붐파워> 방송에 말이죠. 작가로서 출연한 건 아니지만, 워낙 방송을 좋아하니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은 아니지요.

예전에 제가 쓴 글을 읽고 연락 주신 작가님, 어설픈 토크를 역시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포장해주신 붐 님께 감사드려요. 늘 그렇듯이 끝나면 꼭 아쉬워요.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마음에 말이죠. 방송은 (라디오도 마찬가지) 늘 긴장을 데려오네요.

본방송은 이번 주 금요일 오후 4시-6시 사이에 나갑니다. 엄마와 동반 출연이라 더 즐거웠어요. 시간 되시면 들어보셔요.

T.M.I : 4년 차 무명작가의 설움을 달래며 책 소개를 했어야 했는데... 내가 사는 동네 얘기만 했네요. 이런이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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