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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un 23. 2020

당신의 입은 선한 영향력을 담고 있나요?



"당신의 口头语(구두어)는 무엇입니까?"




口头语 란? 명사로써 입버릇, 말버릇, 어투를 뜻한다. [참고 : 네이버 중국어 사전]



누구나 자주 사용하는 말 혹은 어투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누가 방청객 VIP 출신 아니랄까 봐 "진짜?" "대박" "정말?" 등과 같은 감탄사를 자주 내뿜죠. 내 이야기를 하려고 이 주제를 들고 온 건 아닙니다. 남편 때문이에요. 1년간 친구로 지내다가 1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지 1년이 된 우리. 친구일 때는 오히려 그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연인이 된 순간부터 그는 허물을 벗기 시작했고, 등 뒤에 숨겨 놓은 날개를 내게 보였죠. 그 말인즉, 천사처럼 착한 사람, 나보다 더 긍정인 겁니다. '연애할 땐 누구나 가면을 쓰지'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이런... 미안하게도 그는 결혼하니 한 겹, 아니 열 겹은 더 쌓아 올린 울트라 긍정맨으로 업그레이드가 됐습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심각한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별일 아니야"

"고생했어"

"수고 많았어"


살다 살다 이런 인간(좋은 뜻)은 처음입니다. 심지어 얼마나 멘탈이 강한지, 웬만한 망치로는 깨지지도 않습니다. 어지간히 힘든 일에는 끄떡도 안 한다는 말이죠. 결혼 전, 새벽 1시에 퇴근하고 4시간 후인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하는 궂은일 앞에서도 그는 원망이나 한탄을 하는 대신, '이 시간을 이겨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직업 특성상 원치 않는 '궂은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잦음에도, 행여 내게 안 좋은 영향이 흐를까 봐 내색 한번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밥을 먹다가 옷에 음식물이 떨어졌어요. 방금 꺼내 입은 옷인데 순간 짜증이 난 나는 "악! 미치겠다. 방금 꺼낸 옷인데..."라며 '욱'이 샘솟았죠. 옆에서 지켜보던 그가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띠며,


"괜찮아, 별일 아니야. 다시 세탁하면 되는 거야."

"푸하하하"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흘렀습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진지하게 나를 위로하는 그를 보니 귀엽더라고요. 하하.









"내 입을 점검합니다"




(밑바닥이 꺼질 듯한 소리로)

"하, 답답하다..."

"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아, 짜증 나..."


유난히 부정의 색이 짙은 이가 있습니다. 몸의 대부분이 긍정으로 감싸져 있다지만, 그 앞에서는 나 역시도 똥 싼 강아지처럼 깨갱이에요. 기분이 풀리도록 좋은 말을 해줘도 도통 먹히질 않으니 말이죠. 아니, 되려 그의 블랙홀로 나까지 빠질 기세입니다. 그래, 어떻게 사람이 1년 365일 웃을 수 있겠어요. 어떻게 매일 좋은 생각만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우울도 한두 번이죠. 시도 때도 없이 뿜어내는 것은 상대를 '감정 휴지통'이라 여기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기분 그대로를 원 없이 내버릴 수는 없죠.


더는 안 되겠다 싶으면 자연스레 자리를 피합니다. 그가 미워서, 싫어서가 아닙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남편처럼 멘탈이 강하지 못해, 자칫하면 내가 먼저 긍정을 배신할 게 뻔하거든요. 아무리 편한 사이라 해도 아니, 편한 사이일수록 상대를 더욱 존중해야 한다 여깁니다. 어렵게 대하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인 '선'을 지키자는 얘기지요. '감정의 선'이야말로 지킬수록 아름다운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선한 영향력은 비단 공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작가라서, 내가 선생님이라서 독자나 제자들에게만 흘려보내라는 게 아니죠. 친한 사이일수록, 관계가 가까울수록 영향력의 파급 효과는 큽니다. 그러니 되도록 상대에게 기분 좋은 말, 기운을 북돋는 말을 해주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물론 나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참 고마워요. 꽝꽝 언 눈덩이가 햇빛을 받자마자 사르르 녹는 것처럼, 옆에서 착한 말, 예쁜 말만 해주니 내 마음도 그리되더라고요.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얼굴을 찡그릴 수 있을까요.


최전선에서 나의 선한 영향력이 되어주는 그가 참 고맙습니다. 꿈과 희망을 전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해놓고, 현실은 정반대로 산 적이 많았습니다. 수십 개의 가면을 바꿔가며 다중 인격을 선보이곤 했지요. 이 글을 쓰며 다시금 반성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는 '인공의 향'이 아닌, 자리에 없어도 잔잔하게 흩날리는 향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나는 내 입을 점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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