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행복의 4대 보험
내 돈 주고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이번 달은 도대체 세금을 얼마나 뗀 거야?”
연말 정산을 몇 달 앞둔 월급날, 평소에는 잘 열어보지 않는 회사 월급 시스템을 열고 한 숨을 내뱉었다. 평소에는 핸드폰 문자에 찍힌 월급 액수만 보는데, 가끔 세금 떼기 전에는 얼마이고, 세금 떼고 나서는 얼마인지 월급 명세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치민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월급에서 제일 먼저 4대 보험 금액이 빠져나간다. 물론 회사에서 50% 지원해 주긴 하지만, 피 땀 흘려 번 돈을 떼이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4대 보험은 ‘사회보험’으로 국민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의 방식으로 대처하여 국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한다.
이러한 보험 금액을 포함해 각종 세금을 제외하고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들은 실수령액을 보고 나처럼 한 숨을 쉬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매달 건강보험 꼬박꼬박 내고 있지만 일 년에 병원을 많아야 한 번 가는 나 같은 경우 매우 억울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일부러 아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근로자라면 4대 보험에 가입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보장을 받는 것이 기본 시스템이다. 지금 당장 혜택이 없어 투덜대는 경우가 많지만, 든든한 보험인 건 사실이다.
모든 근로자에게 4대 보험이 있듯이 모든 워킹맘에게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4대 보험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의무적인 보험이 생긴다면 어떤 것이 뽑히게 될까? 가상의 보험이지만, 언젠가는 대한민국에서 의무적으로 가입을 권하고 지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워킹맘의 4대 보험을 상상하여 이야기해본다.
워킹맘 행복을 위한 4대 보험
워킹맘의 4대 보험은 워킹맘에게 발생하는 심리적 위험을 자급자족의 방식으로 대처함으로써 정신 건강과 행복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 누구도 지원해 주지 않고 100% 나의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 얼마를 내서라도 가입하겠다고 부탁해도 보장해 주지 않아 무릎 꿇고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워킹맘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다음 4가지 영역이 충족되어야 한다.
1. 믿을 만한 아이 케어 시스템 (Reliable child care system)
워킹맘으로 회사에 복귀하기 전 가장 큰 고민은 무엇보다 아이를 누구한테 맡기는가 이다. 출근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피가 말린다. 나만 바라보며 젖 달라고 보채는 이 작은 아이를 누구한테 맡기고 출근해야 한단 말인가?
아이를 누구에게 어떻게 맡기는지는 근무 환경(일하는 시간)과 각자의 개인 여건, 육아에 대한 가족의 기본 원칙 등에 따라 결정된다. 비교적 근무 시간이 적거나 프리랜서 직업의 워킹맘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시부모님께서 가까이 사시면서 두 아이를 돌봐주시는 case로 축복받은 그룹에 속한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주중에는 서울 시부모님 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아이를 데리고 와 돌보았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아예 두 아이를 다 봐주시기 위해 근처로 이사 오시게 되었다. 10년간 안정적인 이 시스템은 나의 18년 장기근속 일등공신이다. 아이를 케어하는 시스템에 대하여 주변에 많은 Case와 고민을 보아왔다.
“종일반 유치원에 아이 맡기고 퇴근 후 데리러 가면 우리 애가 항상 혼자 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렇게 애를 방치해도 되는 건지, 내가 엄마가 맞는 걸까요?”
“출퇴근 때만, 딱 4시간 등 하원 도우미 분을 구하는데 너무 어렵네요. Full time을 해야 돈이 되는데 짧은 시간은 돈이 안되니 다들 안 하시려고 하네요.”
“아이 돌봐주시는 이모님께서 남편이 수술한다고 일주일 못 나온다고 하네요. 저나 와이프 중에 연차를 내야 하는데, 지금 한참 바쁠 때라, 어찌해야 할지 너무 고민되네요.”
“새로 오신 이모님께서 그러시는데, 이전에 일하시던 이모님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셨다고 넌지시 이야기 주시 더라고요. 와이프 충격받아서 주말 내내 누워 있어요.”
“요즘 시어머님이 계속 아프셔 걱정이에요. 애들 보느라 아프신 건 아닌지, 시누이한테 눈치도 보이네요”
물론 주변에 좋은 이모님, 등 하원 도우미 분도 많이 보았다. 남이라고 해서 못 맡길 이유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시어머님이나 친정엄마에게 맡기는 것보다 심적으로 편할 수 있다. 엄마가 일하고 있는 시간 동안 아이가 건강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 그것만큼 워킹맘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믿을 만한 아이 케어 시스템은 워킹맘 행복의 가장 큰 보험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일부 걱정처럼 꼬박꼬박 돈은 내는데 늙어서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 아이케어 시스템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워킹맘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내 아이만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다면 말이다.
2. 칼퇴근 (Leave work on time)
굳이 부연 설명을 안 해도 되는 두말 하면 잔소리인 보험이다. 매일이면 좋지만 일주일에 2~3번 정도만 보장되어도 워킹맘 생활의 질이 급상승할 수 있는 보험이다. 이 보험이 보장되지 않았을 때 나의 워킹맘 일생일대 위기가 찾아왔었다. 둘째가 돌이 지났을 때, 회사 업무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다. 밤 11시, 12시 퇴근은 기본이었고 늦을 때는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날이 지속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과의 계속되는 싸움, 시부모님과의 갈등, 아침 출근 때마다 빽빽 우는 첫째로 모든 게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던 시절이다. 지금은 웃으며 글을 쓰지만 그때는 매일 밤 혼자 울었다. 그때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칼퇴근을 했었다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옥의 불구덩이를 맛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서의 업무, 물론 중요하다.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이 꼭 일을 잘하는 사람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해 수많은 책에서 다뤄왔다. 근무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만 일해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성과를 떠나 똑같이 근무하고 똑같이 칼퇴근을 하여도, 워킹맘이라서 더 눈치 보이는 것은 나의 열등감 때문일까? 나의 괜한 기분 탓일까?
‘사장님 5시에 퇴근하겠습니다’라는 책을 통해 워킹맘이 꿈꾸는 이상적인 회사를 잠시 만나 볼 수 있다. 저자인 이와사키 유미코 씨는 10년 연속 매출이 오르고 있는 화장품 회사의 CEO이다. 직원수가 50명 정도의 작은 기업이지만 연 매출은 750억(2015년 기준)이라고 꽤 성공한 CEO라 말할 수 있겠다. 그녀의 회사가 보장하는 내용에 대해 책 일부 내용을 발췌해 보겠다.
‘5시에 퇴근, 자녀가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6시간 단축근무 가능, 자녀가 아플 경우 300엔에 무제한 전문 돌보미 이용 가능, 매년 5일간의 안식 휴가 지급, 월 2회 업무시간 내에 요가, 필라테스 수업 지원’ 바로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고 싶어 진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랜 시간 일하지 않아도 여성이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이와 같은 수준의 회사가 생기면 바로 입사 원서를 내겠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CEO가 되지 않는 한 그런 날이 올까 싶다.
3. 건강한 몸, 체력 (Healthy body)
워킹맘의 행복, 정신 건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체력이 되어야 한다. 저질 체력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에 놀랐다. 특히 아들(또는 아들 같은 딸)을 키우는 워킹맘에게는 필수 보험이다.
건강한 몸은 워킹맘이 일을 그만두는 그 날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종신보험과 같다. 나는 어릴 적 천식을 앓으면서 수많은 항생제에 단련되며,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감기 한번 걸린 적 없을 정도로 체력이 좋다. 입사 동기와 한 달 간의 합숙 연수 후, 마지막 날 받은 롤링 페이퍼에 ‘체력 정말 좋다. 체력 짱!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80%를 차지했었다. 이런 체력 왕이었던 나도 40대를 넘기니 체력의 방전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 워킹맘의 체력은 4대가 되기 전에 꼭 보장받아야 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유지가 필요하다.
출산과 육아로 체력이 방전되고 복직 후 버거운 일로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면 빨리 녹용이 들어간 비싼 보약을 지어먹어 보자. 운동은 하면 좋으나 나도 안 하고 있으니 권하기는 민망하다. 최근에는 집에서 *홈트(홈트레이닝)하며 체력을 키우고 몸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이 재우고 틈틈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체력을 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참을성 (Patience)
마지막 4번째 보험 선정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쟁쟁한 후보가 몇 개 있었는데 왜 마지막으로 참을성이 선택됐을까?
워킹맘 4대 보험 중 첫 번째인 믿을 만한 아이케어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이모님께서 행여나 언짢으실까 눈치 보고 할 말이 목구멍에 걸려도 이야기 못하고 참아야 한다.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오신다 아침에 연락받아도 '아이고 그러시냐, 괜찮다~' 하고 전화를 끊고 나면 심호흡을 한다. 10살이 된 초등학교 3학년 손주한테 반찬을 집어 입어 넣어 주시는 어머니를 볼 때 참을성 보험을 꺼낸다. 맘속으로만 외쳐 본다. '어머님 애 버릇 나빠져요. 3학년인데 자기가 혼자 먹게 그냥 내버려 두세요'
두 번째 보험인 칼퇴근을 하기 위해서도 참을성이 필요하다. 배가 고파도 참고 점심시간에 장표를 만든다. 퇴근이 가까운 시간에 팀장이 불러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절대 말대꾸하지 말고 참고 들어야 한다. 말 꺼내면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다. 중요한 회식에 나만 빠져 뒤통수가 따갑지만 참고 조용히 가방을 챙긴다. 이런 일들 말고도 칼퇴근을 위해서 참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워킹맘 칼퇴근을 위해 참아야 할 100가지 리스트' 책으로도 낼 수 있겠다.
워킹맘 4대 보험 세 번째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참을성이 필요하다. 운동할 시간이 없어 집에서 훌라후프라도 할라 치면 애들이 더 신나 서로 한다고 덤빈다. 이미 운동이 아닌 놀이가 되어 버리고, 체력은 더 바닥을 치지만 즐거운 아이들 웃음을 보며 참는다. 마음 모질게 먹고 하루 30분 시간을 내어 진짜 운동을 하려면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도 꼭 하고 말겠다는 의지와 참을성을 가지고 버터야 한다.
이렇듯 참을성은 나머지 3개의 보험이 잘 굴러가도록 도와주는 바퀴 역할을 하는 보험이다. 또한 일과 육아 사이에서 스트레스받아 회사를 확 때려치울까 고민할 때,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시대가 변해 치과보험, 임플란트 보험이 새로 생겨 나듯이 '참을성' 보험이 필요가 없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