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은 믿거나 말거나 할 전설 같은 일들이 있었으니 구전동화처럼 작자 미상으로 남기 전에
그리고 내 기억의 불빛이 소멸되기 전에
에피소드를풀어본다.
잘 안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큼'내가 신입사원 때는 말이야.'는 선배가 하지 말아야 할 말 'Top 3' 안에 항상 들어왔다는 것을. 나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꼰대'라는 단어는 18년 전엔 없었다. 퉁쳐서 모두 '선배들'이었고 나도 그들에겐 '요즘 것들'이라 불리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옛날이야기를 꺼내다니 어쩌라는 거야' 나보고 꼰대라고 말하면 할 수 없다. 나를 회사에 아직까지 붙어있게 해 준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었던 일들이었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웃음 지으며 꺼내보는 추억이 되었다. 그걸로 면 충분하다.
1. 담배 문화
예전에 누군가 진짜로 재떨이에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팀장님 책상 뒤쪽 골방 회의실, 신입사원 나부랭이는 감히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곳이었다.
누리끼리한 색을 머금은 시멘트 벽
유난히 뿌옇게 보이던 형광등
커다란 테이블을 에워싼 시커먼 의자들
바퀴 달린 최신식 칠판과 항상 잘 써지지 않던 보드마커
기억을 쥐어짜 생각해 낸 그 방의 풍경은 꿉꿉한 냄새가 나는 복학생 자취방을 닮았다.제품에 불량이 터지면 모든 팀의 팀장들이 소환되어 밤샘 회의를 하고 작전을 세우던 야전소였다. 누군가 라이터를 켜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떼로 줄담배를 폈다. 맞다, 그 방은 내가 팀 배치받은 첫날 대성통곡했던 곳이기도 하구나.
내가 그 방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다는 건 회의 내용을 빠릿빠릿하게 정리해서 일개미들한테 전파하는 위치가 됐음을 의미했다. 이른바 짬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나의 첫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였다. 노란 수선화 한 다발과 꽃병을 사 와 아무도 없는 새벽에 출근해 골방에 설치를 했다. 연애할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꽃다발인 양 눈이 똥그래진 팀장님에게 "꽃 보면서 기분 전환하시라고 갖다 놨어요~" 쿨하고 태연하게 웃음으로 화답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이 꽃 앞에서 어떻게 담배 연기를 내뿜을쏘냐.
월급 받아 돈 쓸 시간이 없던 때였다. 몇 달간 꽃을 사는 것으로 돈질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고 현저히 줄어든 흡연율은 '1+1' 득템 아이템이었다. 지금도 나는 꽃을 살 때면 너무나 행복하다.
언제가 마지막 담배 연기를 끝으로 골방의 재떨이와는 안녕을 고했다. 하지만 6층 복도 끝 너구리 굴은 남아있었다.
먼지 낀 환풍기가 돌아가고 빼꼼히 열린 철문 너머 하늘을 보며 담배연기를 뿜을 수 있는 자연친화적 흡연실. 골방에서 회의를 마치면 우르르 너구리 굴로 가는 선배들은 도대체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궁금했었다. 왼손에 자판기 믹스커피 오른손에 담배를 든 그들을 따라 너구리 굴을 드나들었다. 회의 때 미쳐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 며칠 뒤 있을 보고 준비 이야기, 가끔은 주말에 아이들과 놀러 간 이야기 그게 전부였다.
나에겐 '회사에 담배방은 왜 만들어 놓은 거야' 혼자서 불평하던 시절이 있었다. 팀에서 유일한 여사원으로 버티다 보니 나만 쏙 빼고 작당모의가 일어나지는 않는지, 그들만의 라인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상상을 하던 때였다. 그들도 나와 같은 직장인이고 평범한 아빠, 그리고 한 번은 마주칠법한 동네 아저씨라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열여덟 해가 지난 지금, 출퇴근 길에 작은 미니 버스 같은 흡연부스에 갇혀 담배를 피우는 그들을 보곤 한다.담배를 피우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도 건넬 파트너도 없이 잠이 덜 깬 얼굴로 서둘러 담배를 태우고 나오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수선화 꽃이 놓인 낭만적인 담배방,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출처: Pixabay
2. 일보 문화
신입시절, 매일매일 발행되는 일보를 복사해서 6층에 있는 팀장들 책상에 모두 올려두고 퇴근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왜 복사를 하지? 그냥 여러 장 출력하면 될 텐데' 생각하겠지만 그게 안 되는 시절이었다.
1인 1PC 보급이 막 시작되어 선배들이 개인 PC를 처음 갖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전까지는 팀 공용 컴퓨터 2대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일을 했을지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시절이다.
개인 PC는 지급됐지만 일보는 옛날 방식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보를 쓰는 첫 주자는 깨끗한 A4 지를 준비한다. 최외각에 테두리를 그리고 가운데 선을 내려 좌, 우 2개의 공간을 확보한다. 왼쪽이 1파트 오른쪽이 2파트. 자~ 이제부터 일보 작성 시작. 그 날 하루 자신이 진행한 업무 내용을 요약하여 수기로 적어 나간다. 주의할 점은 뒷사람이 일보를 쓸 자리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일반화학 실험 리포트 쓰듯 한 땀 한 땀 손으로 일보가 채워져 나갔다.
수기로 작성된 일보를 복사해서 돌릴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카피된 일보 내용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을 때이다.
'아이씨, 누가 또 연필로 작성했어'
부랴부랴 원본을 찾아 복사본과 비교하며 흐릿한 글자 위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덧칠을 한다. 이때 볼펜 똥이 많이 나오는 볼펜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입사할 때 파트리더였던 팀장님은 신입사원이 오면 항상 얘기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었다.
"자네들은 일을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대단해. 나는 입사하고 2년 동안 복사밖에 안 했어."
신입들은 얼굴을 보면 '정말 그랬으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분명 나도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다 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손으로 보고서를 쓰고 일일이 복사해서 배포하던 시절. 복사기가 고장 나면 큰일 나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나는 2년 동안 복사를 하지 않았다. 개인 PC로 각자 일보를 적어서 작성해보자고 제안을 했고 성공적으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복사 업무에서 해방되었다. 덕분에 글씨 쓸 일이 없어져 중지 손가락 툭 튀어나온 굳은살은 점차 무뎌지게 되었다.
꼰대들 이야기가 허무맹랑해서 코웃음이 나올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MSG가 쳐지기도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 확률은 꽤 높다. 지금은 믿기 어려운 일이 그때는 있었으니까.
3. 야근 문화
"박 대리, 삶은 계란 하나 먹을래요?"
새벽 2시경, 너구리 굴에 가서 새벽하늘 보며 심호흡하고 돌아오는 길에 A팀장님 특유의 중저음이 들려왔다. 야근을 많이 하는 A팀장님은 밤을 꼴딱 새운 그 날 아침에 잠깐 사라졌다 화이트 셔츠 차림으로 어김없이 나타나는 강철체력이었다. 오죽하면 쌍둥이도 아닌 '세 쌍둥이'일 지 모른다는 웃지 못할 괴담이 돌기도 한 분이었다.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시절, 새벽 1시 30분까지 야근을 하면 사발면과 삶은 계란을 먹을 수 있었다. 3교대 야간 근무조 식사 시간에 항상 사발면과 삶은 계란이 나왔고 셀프로 가져갈 수 있어 원하는 만큼 업어 오곤 했다.누군가의 책상에 올려진 사발면은 밤샘 야근을 했다는 표식이 되었다.
지금은 주 5일 52시간을 넘지 못하는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옛날에는 어디 그랬나. (물론 지금도 어느 현장에서는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곳이 있겠지만)
새벽 사발면을 먹던 그때는 주 6일 근무로 토요일에도 출근하던 시절이다.1시 30분까지 야근을 하면 누군가 대표로 식당에 가서 사발면과 삶은 계란을 공수해 왔다. 그리고 사이좋게 골방(그 담뱃방)에 모여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야식을 먹었다. 6층에 사발면 냄새가 진동하는 날은 뭔가 대형 불량이 터진 날이다. 분석하러 라인에 들어간 후배 사발면도 잊지 않고 자리에 올려 둔다.
복도를 마주 보며 우리 파트와 쌍벽을 이루며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파트가 있었다. 그 파트의 파트리더 별명도 아직 기억난다. '만개' 사고를 쳤다 하면 대상 불량품이 10000개 정도 나온다고 해서 공장장님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야근 근무와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같은 라인을 따라 수맥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농담도 건네며 그렇게 힘든 밤을 버티며 일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계속되는 야근에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사발면보다 함께한 선배, 동료, 후배들 덕분이었다. 군대를 가본 적 없는 여사원이지만 끈적한 전우애를 느꼈던 그 시절로 가끔 돌아가 보고 싶다.
직장을 오래 다니다 보면 내가 꼰대가 돼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말 하나하나 조심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속 터지는 후배를 볼 때면 불쑥 본성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위의 내용을 공감하며 읽으신 분들은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 중에서 나는 특히 '꼰대'와 관련된 글은 빠짐없이 읽으려 하고 있다.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 궁금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제발 세수 좀 하라고 닦달하는 나에게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해~"
오래된(?) 선배가 하는 말은 그의 경험이 함축되어 나오는 잔소리가 아닐까. 대신 딸한테도 후배한테도 잔소리는 1절만 해자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