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전세로 살다가 집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이사 간 새 집에서 집들이를 하는 날이었답니다. 내 동생이 집을 산 것 마냥,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딸아이와 딱 두 식구라서 큰 상이 없어, 커다란 돗자리 2개를 펴 놓고 거실에 모였습니다. MT 온 것 같다고 사람들이 더 좋아합니다.
음식 차린 게 장난 아니죠? 상에 차려져 있었다면 상다리가 부러졌을 수준입니다. 이 많은 음식을 혼자 직접 했답니다. 대단해요. '전라도 여자'라고 어깨를 으쓱하는 그녀, 우리 파트 사람들은 모두 엄지 척!
문어숙회 두부김치 직접 삶은 보쌈 감자전 단호박 샐러드 엄마표 물김치와 멸치 주꾸미 삼겹살 볶음(나중에 밥도 비벼 먹음)
모두들 배가 터진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먹고,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갈 시간이 다가올 무렵, 집에 안 쓰는 물건이 있다며 하나 둘 꺼내 오기 시작합니다.
베란다에서 꺼내 온선풍기 2대는 이제 막 결혼한 후배에게 낙찰. 딸아이가 어릴 때 쓰던 자전거는 4살 아들이 있는 다른 후배에게 돌아갑니다. 남은 음식도 후배들한테 다 싸 줍니다. 전주에 사시는 엄마가 직접 공수해 주신 '물김치'는 그렇게 동이 나 버렸어요.
A 책임님께서 "TV는 계속 쓸 거지?" 하시는 바람에 모두가 배꼽을 잡고 한참 웃었습니다. 웃다가 울어보기도 오랜만이었네요.
공짜로 얻어만 먹을 수는 없죠.거실에 시계가 멈춰 있는 걸 발견한 후배는 건전지를 찾아다 교체해서 시계도 맞춰 주었답니다. 팀장님은 현관 문이 너무 빡빡하게 닫힌다고 일자 드라이버를 받아 들고 문 쪼임도 해주셨고요. 다음에는 직접 해보라고 방법까지 알려 주시더군요.(역시 팀장님,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심)
금요일 저녁, 그녀의 새 집에서 치른 집들이, 활짝 웃는 그녀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깨달았어요. 누군가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준 게 아니었구나. 우리는 그저 곁에 있었을 뿐, '그녀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게 웃은 날이구나' 누구보다 남을 생각하고, 후배들을 잘 챙기고 자기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하는 그녀를 보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진 날이었습니다.
직장동료의 집들이를 가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아마 흔치 않은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나의 회사 생활 마지막 집들이는 아닐지 생각도 해봅니다. 언젠가는 이들과 헤어지는 날이 오겠지요. 하나하나 소중한 인연이라 헤어지는 날 눈물 한 바가지 쏟을 수도 있겠네요.
함께 일하는 시간이 오래되어 지금이 편하고 좋긴 한데, 한편으로 이 생활에 너무 안주하고 있나 고민도 됩니다. 세스 고딘이 '이카루스 이야기'에 나온 안락 지대에 머물고만 있는 것 같아서요.
작년 이 책을 읽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18년 회사를 다닌 이 시점에서 나의 안전지대는 이미 저쪽으로 이동했는데 나는 안락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이카루스 이야기'를 읽고 직접 만들어 본 PPT
안전지대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데 안락지대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며, 안락지대에 머무르지 말고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라고 세스 고딘은 이야기합니다.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생활 습관
(이카루스 이야기 by 세스 고딘)
혼자 조용히 앉아있기
특별한 이유 없이 새로운 것 배우기
사람들에게 솔직한 대답 요구, 듣기 좋은 칭찬 외면
다른 아티스트에게 먼저 격려
변화를 위해 다른 일을 가르치기
자신이 만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기
직장 동료 집들이에서 시작했는데 아티스트 이야기까지 와 버렸네요. 부족한 필력으로 브런치에 계속 글을 쓰는 것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나의 작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만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오늘도 과감하게 발행 버튼을 눌러봅니다.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