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가?
독신주의라고 큰소리 치면서 어릴적 꿈은 현모양처라고 떠들고 다녔었고 그게 간지라고 믿던 어처구니 없던 시절. 어쩌면 불안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은 부모가 이혼한 결손가정이다. 처녓적부터 자기자신밖에 모르고 결혼도 싫었던 엄마는 그 세대에도 많이 안했을것 같은 정략결혼을 억지로 했고 결국 지저분하게 끝을 맺었다. 역시나 자신의 한을 자식에게 풀기위해 나를 매일같이 세뇌시키고 있었다.
여자는 능력있고 돈있으면 혼자 살아야만해.
평생 엄마에게 귀에 딱지않도록 들어온 얘기는, 결국 결혼생활은 여자의 피눈물과 희생뿐이라는 초부정적 결혼관과 남자에대한 불신뿐이었다.
예를들면 남자가 능력이 있으면 바람피우게 되있다, 남자가 다리가 길면 똥냄새가난다(나름 엄마의 은유적인 표현ㅋ), 남자가 잘생기면 꼴깝한다, 남자가 손이 예쁘면 여자고생시킨다.... 등. 한번은 어린 나이에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싶다며 엄마에게 그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에겐 어린나이임에도 목표가 뚜렷했고, 나이에 맞지않게 성실했으며 열정도 대단했지만, 보자마자 엄마는 1초도 망설이지않고
니말대로 성공하겠네, 그리고 확 꼬꾸라지겠네
라고하더라. 그 때 그 소년은 지금 꿈을 이뤘고 행복한 가정도 꾸렸고 심지어 아주 잘나간다. 뭐, 매번 이런식이었다.
자라면서 한번의 약혼실패와 아주 여러번의 연애실패가 있었고, 전부, 아, 단 한번만 빼고 매번 내가 관계를 지속하지 못했다. 은연중에 내 머릿속엔 엄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3번 내지는 최장 3개월을 만나면 관계가 깊건 얕건 내눈에 보이는 그들의 결점이 걸어다닐때마다 발에 채이는 돌부리에서 내 앞을 막아서는 바윗덩이로 변해갔다. 난 바윗덩이에 막히거나 압사당할듯이 숨이 막혀서 더이상 만날수가 없었고 도망다니거나 결별을 요구했다.
결국 많은 이들의 눈엔 내가 바람둥이 이거나 항상 애인이 없는 만년싱글 골드미스였다. 그렇게 서른여섯이 될때까지 이렇다할 장기연애도, 깊은관계도, 섹파도, 남편도, 애인도 없는 비참한 (남들 눈에만) 지경에 이르렀고, 그 나이에 혼자사는 대부분 직장인들처럼 건강과 생활은 피폐했다. 당연히 내눈에는 내 모습이 날씬하고 인기많고 스타일리쉬 하기까지한 당당한 커리어우먼이었고, 이대로 놀면서 영원히 늙지않고 우아하게 연애만하며 살아갈 것 같았다.
그 무렵 회사에서 팀은 다르고 층도 다르지만 성격은 더더욱 다른 까칠하고 직설적인 B형 후배와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처음엔 서로 너무 틀려서 싫어하다가 술자리에서 둘다 놀기를 목숨보다 좋아한다는걸 안 순간 번개처럼 눈이 맞았다고나 할까. 우린 한명이 야근을 하면 서로 기다리는 사이가 되었고 어김없이 회사앞 웨스턴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헤어졌다. 그렇게 이상한 우정이 싹트고는 매일 같이 퇴근하고 맥주를 마시고 심지어 주말마저 같이 어울리는 베프가 되었다.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외향적인 k는 맛집, 술집, 찻집도 많이 알았고 나는 결정장애가 있는 A형이라 그저 따라다니기만 해도 되서 마냥 좋았다. 나이트나 클럽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린 수, 목엔 나이트가서 부킹을하고 금,토에는 클럽에서 영계들하고 춤을췄다. 아마 생애 최고의 우정어린 k와의 연애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재밌는건 이때 k는 교재중인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별 관심 없었지만. 실제로 그를 본 적도 그닥 궁금해 한 적 조차 없다. 이 기간동안 회사에대한 기억마저 거의 없다.ㅋ 놀기 위해 회사를 다녔을 것이다. 밤만되면 눈이 반짝거렸고 낮엔 열심히 잤다. 회사에서. 이따가 해지고 열심히 놀기위해. 먹는것도 일하는것도 그 어떤것도 노는것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몸무게는 최저점을 찍고 있었다. 건강도 함께.
거기다가 최고로 신나게 놀던 시절답게 그까짓 머릿결은 개나줘버리고 오직 간지와 스타일을 위해 서너달에 한번씩 머리색을 바꾸며 살았다. 머리카락이 녹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매번 들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번은 파마를 하면서 완전히 복구불능의 상태에 빠진 머리카락들이 녹기 일보직전의 잡아댕기면 늘어나는 고무줄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고, 흐물흐물 얼굴에 달라붙어 무슨짓을해도 미역을 머리에 얹은 꼴이 되었다. 그 꼴로 클럽을 갈수는 없었고 너무 우울했다. 감으나 안감으나 전혀 알아볼수없는 노란 미역을 감추려고 코바늘뜨개로 엄마가 직접 떠준 나름 프렌치한 진홍색 베레를 쓰고다녔다. 장마철이라 거의 매일 비까지 내렸다. 3일밤을 잠도 안자면서 논 직후 어느날 온몸도 마음도 머리카락도 흐물흐물해져 이자카야에서 1.5리터 사케를 거의 둘이서 원샷으로 비워가고 있었다. 분위기도 서비스도 너무 좋아서 사케한통을 비우고 두번째통을 시키고나니 미역도 장마도 사라져버렸다. 우린 두번째 사케를 인테리어도 아기자기 이쁘고 웨이터들도 한입 베어물고싶은 복숭아처럼 뽀송뽀송하고 예뻤던 이자카야에 킵해놓고 본능처럼 또 나이트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