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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Oct 06. 2015

자유로운 시절 일기 02

기분따라 부킹따라

보통 사람들은 언제 나이트 갈까?


회식하는 , 오랫만 친구들과 뭉치는 , 일파티하는 , 그리고  땡기는 . 

 K 나는 킹을 하러 나이트에 다녔다. K 열심히 면접을 , 나는 열심히 명함 주어모았다.   둘다 짝을 이룰 수컷을 찾아녔을 것이. K 장기연애로 인한 부작용으로, 그리고 나는 반쪽 없는 공허함 채우 위해. 서로 번갈아가며 폭탄제거도 해주고 계산서를 던져주고 도망가기도하며 나름 일상 되어가고 었다. 어쩌면 대박상품 도매시장 들어는데 모르고 까봐 걱정때문에 매일 시장 가는 소매상인처럼, 그때 우린 강박적으로  충실하 위해 결혼이라는 관습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우린 9시까지 나이트에 골인을해야 무료입장이 된다는걸 알면서도 그놈의 한잔을 포기하지 못하고 회사앞 단골바에서 취할때까지 맥주를 마셨고 꼬박꼬박 웨이터에게 10분만~ 20분만을 외치며 지각을했다. 부킹갔다가 양주에 걸신들린 술취하러 온 여자들이 되지않기 위해서. 우리 둘다 주머니사정 때문에 양주를 못마시거나 나이트를 못가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둘다 사회에서 직장경력 10년을 바라보는 중간관리자급에 연봉도 하고 싶은건 대충 하고 살 수 있을만큼 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매번 기가막힌건 맨정신에 나이트를 가면 술못먹어 환장한 년들처럼 양주에 덤비고 필름 끊기고 나오거나 오바이트하는 추태에 심지어 택시에서 핸드폰을 놓고 나오더라는 것이지.. 돈 주고 나이트 입장하는 날이면 그날은 여지없이 여탕이거나 여기저기 원자 폭탄을 동반한 자잘한 지뢰밭까지 깔린다는 것이고.

역시 최고의 날은 우리끼리 한잔하고 9시 턱걸이나 지각으로 들어가는 날이라는 패턴이 생겼다. 징크스라고나 할까.

K는 주로 아주 우아하고 매너가 온몸에 밴, 럭셔리한 차림의 돈냄새 풀풀 나는 놈. 혹은 같은 업계에서 좀 유명세 타는 놈들한테 아주 그냥 넋이 나가버렸고, 절대 인물은 안보더라.ㅋ

나는 쌍꺼풀 없는 덩치좋고 몸매까지 좋아서 딱 봐도 바람둥이일것 같은 놈. 아니면 똑똑하다 못해 재수없는데 스타일까지 좋은 놈한테 끌렸다. 그러니 딱 봐도 K는 배려심 있고 매너 있고 여자를 잘 다루는 유부남이나 애인있는 남자들과 우아하게 온갖 공주 대접을 받으며 몰래 데이트를 했고, 난 덩치좋은 놈들하고 스포츠를 즐기러 다니거나 또는 그저 놀기위한 극과 극의 데이트를 했다. 아니, 즐겼다.

희안하게도 짝이 있는 K는 마치 짝찾는 소녀마냥 주의 깊게 그 사람의 백그라운드를 조사하며 겉과 속을 다 궁금해하며 줄다리기와 신경전을 열심히도 했다. 오히려 짝이 없는 나는 뭐하는 놈인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궁금하지 않고, 잘 노는 놈인지가 중요했고, 오늘이 마지막 날처럼 열정적으로 뜨겁게 놀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세번이면 끝장날 놈인데 뭐하러 구구절절 그놈의 뒷배경을 알아야할 것이며, 뭐하러 겉과 속을 알아야 할 것인가. 두 세번에 단물쓴물 쪽 빨아먹고 버려야하니 서둘러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가끔 괜찮은 놈들도 걸렸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처럼 헌신하거나 미래를 약속하며 집에 가서 부모님과 만나자는 놈들. 약간 더 심하면 거의 스토킹하는 놈까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혹 하거나 사귈 마음은 안생기더라. 내가 제일 약했던 부분은 남자가 '법대생'일때였다. 그러면서 어깨가 넓고 가슴근육, 소위 갑바가 발달한 남자한테는 사정없이 무너졌다. 

자라면서 항상 IQ가 150 넘는 동생과 비교를 당하며 상대적으로 내머리가 좋지 않다는것에 컴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시대에 머리좋고 공부 잘하면 무조건 가는 법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래도 힘 좋고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머리 나쁜 녀석들도 멋있어 보였다. 이상하게 아빠같은 남자에 대한 동경은 나에겐 전혀 없었다.  

그러다보니 한국 남자는 눈에 잘 차지 않았다. 한국 남자들은 공부를 아주 잘하면 운동을 못하거나 운동을 아주 잘하고 몸이 발달되어 있으면 머리가 비었더라. 둘 다 고루 잘 갖춘 남자가 그때까지 솔로인 경우는 거의 없더라. ㅎㅎㅎ 그래서 단 한번도 내 미래의 남편이 한국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바란 적도 없다. 내 미래의 딸은 꼭 브루넷에 초록눈이거나 파란 눈이어야 했다. 키가 작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해도 되고 몸매가 나쁠거라는 걱정도 안해도 될 것이다. 

아빠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면 자연스레 한국인과 만나는 것도 끝날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적당히 눈에 뛰고 맘에 드는 놈들하고 적당히 놀다가 헤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딱 여기까지가 한국에 잠시 들어온다고 해놓고 어영부영 취직까지 해서 2년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곧 되돌아 갈 것이라서 더 열심히 놀아야 했고, 더 열심히 부킹을 해야만 했다. 

재밌는 사실은 지금 남편이 법대생이고 유도를 한 미스터 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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