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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Oct 10. 2015

자유로운 시절 일기 03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나는 누구편?


아주 어릴적 여느 딸들과 마찬가지로 난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랐다. 아빠가 직업상 한국에 있는 날들이 얼마 되지 않아서 더 애틋했다. 그리고 당연히 아빠같은 남편을 꿈꿨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는 커녕 남녀의 차이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나이에 난 세상을 알아버렸다. 가정폭력은 뉴스에만 나오는 기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날 이뻐해주던 아빠는 온데간데 없고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빠에겐 술냄새가, 엄마에겐 여기저기 멍이 생겼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날, 그 날 전후로 기억나는 별다른 사건 없이 난 자고있었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집이 무너지는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비명과 고함소리에 잠이 깼다. 눈치 빠르고 날렵했던 난 생각할 것도 없이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향해 뛰었고, 아빠가 붙잡으려는 순간, 말 그대로 쥐새끼처럼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 뛰어나갔다. 캄캄했지만, 신발도 안신었지만, 순식간에 이모네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 복도 끝 제일 안쪽방이었던 나와 내동생의 침실에서 복도를 따라 현관을 향해 뛰어나가면서 얼핏 본 안방의 광경속엔 분명히 빨간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30여년이 렀지만 그날만큼 생생한 기억은   나던  머리속이 하얘졌던 날 말고는 없더라. 어렸지만  초동 상황파악이 완전 됐었다 여전 신기하다. 마와 동생 구해야 한다고 냉정하게 이모부에게 도움 다고 하더라.  후의 기억은  난다. 그날 이후로 완전  ,  라졌다. 마는 버스로  다섯정거장 이상 떨어진 원에 입원했, 아빤 대놓 집으로 어떤 니를 데려왔다. 그런데  부분 진짜  기억인지, 아니면 집에 오신 손님이었는데 아빠에 대한 노로 조작된 아이의 거짓말인지가 여전 확실하지 않다. 여튼 나는 엄마에게 그런 일이 있었더라고 거짓말을 한건지 진실을 말한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 후로 두 분 사이는 더 험악해졌고, 결국 우린 몇달을 엄마와 아빠에게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에 대한 대답을 강요당했다.

엄청난 부잣집에서 머슴을 거느리며 살았던 전형적인 공주인 엄마는 피해의식이 더 커졌고, 엄마 역시 분노와 자존심으로 우리에게 거짓말과 억지 기억을 심어주기 시작했고, 우린 결국 엄마랑 살래라고 말하도록 엄마에게 아침부터 아빠 퇴근전까지 들들볶였다.

평생을 엄마에게 아빠욕을 들으면서 얼마나 우리 아빠란 사람이 파렴치하고 사기꾼에 더러운바람둥이라는 사람인지를 깨달으면서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날이 많았고, 10여년을 엄마와 살았다. 덕분에 동생은 결혼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고, 남녀관계에 대한 결벽증까지 생겼다. 반면 그렇지 않았던 나는 툭 하면 아빠 닮은 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동생의 혐오스러운 눈빛까지 느낀 적이 있다.

실지로 아빠와 나는 외모도 닮았고, 성격도 닮았고 식성까지 닮았다. 그래서 엄마는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아빠와 함께 산 약 16년동안 아빤 거의 집에 없거나 한국에 없었고, 그 후 10여년 동안은 아빠와 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빠의 영향을 받은건지 신기해 했고, 난 묘한 미움을 받았다.

아주아주 재미있는 건, 엄마에겐 한명 더 미운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이라면 꺼뻑 죽는다는 외할머니셨다. 엄마는 평생 아빠와 외할머니에 대한 험담을 하는걸 낙으로 여기신 듯 하다. 엄마의 엄마이신 외할머니가 그렇게 아들을 좋아했다며, 남아선호 사상은 없어져야 한다며 페미니스트적인 소리를 입에 달고 사신 엄마가 제일 많이 한 말이 있다.

저년한테는 없는 돈에 몇백만원이나 들여서 해외를 보냈는데 건진게 없고, 불쌍한 우리 아들은 엄마가 돈이 없어서 몇백만원밖에 못쓰고 해외에 더 못보내서 교육을 제대로 못시킨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는 소리였다. 결국 평생 우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아빠에 대한 욕을 해놓고는 그렇게 20여년을 보내고 나니 입에 달고 산 그 나쁜놈이 했던 짓들을 엄마가 자신이 하고 있더라.

그리고 난 아빠를 다시 만났고, 수많은 아빠에 대한 기억들이 엄마로 인해 조작된 부분이 많다는걸 알게 되는데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빠와 수도 없이 삐걱거리고 다투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했다. 아빠와 내가 다시 서로를 알게 되는데 10년도 넘게 걸렸으니 말이다...

아빤 출세에 대한 야망이 있었고 돈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여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건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아빠가 우리를 버린 적도 없었고, 엄마에게 사기 친 적도 없었으며 우리와 함께 살지 않았던 20여년을 우리를 자랑스럽게 잘 길러준 엄마에게 감사하며 살았던 것이다.

20년 후... 지금. 엄마는 예전의 못된 아빠같은 성격과 미워하던 외할머니의 남존여비 사상을 갖고 있고 아빠는 그 반대로 거짓말을 싫어하고, 입밖에 낸 약속은 꼭 지켜야 하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는 올바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언가의 피해자라는건 어쩌면 내가 만드는 부분이 크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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