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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Oct 15. 2015

자유로운 시절 일기 04

불 같은 사랑을 꿈꿔본 적 있나요?

'불 같은 사랑을 꿈꾸는 어린 시절이 누구에게나 다 있었다'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거나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 거라던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거다 라는...

지금은?

나도 한번은 불같은 사랑에 빠졌었다. 그리고 불같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툭하면 불같이 싸웠고 불같이 질투했고 결국 불같이 화끈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불 같은 사랑이 나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그리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해봤고, 그 사랑 덕분에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때는 세상을 다 잃은것 같이 죽을 듯 아팠다. 세상의 모든 슬픈 노래는 내 노래 같고 슬픈 드라마나 영화도 모두 내 얘기 같았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 하고 잘 기억도 안난다. 지금 되돌아보니 그저 20대의 열정이 연애스타일에 고스란히 묻었을 뿐인거였다. 


그 당시,

우리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때 사업에 실패하시고 타국으로 도피하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때까지 얼굴도 보지 못했고, 소식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엄마는 이혼을 위해 행방불명 신고까지 하시고, 나는 한 수 더 떠서 법정에서 엄마의 이혼을 위해 그 어린나이에 거짓 증언까지 했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미움의 찌꺼기가 더 많이 남아있었고 평생 아빠에 대한 나쁜 얘기만 세뇌당하듯 들어온 터라 아빠에 대한 감정은 인간 쓰레기에 대한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듯 했고, 아쉬운 소리는 더 하기 싫은 그런 사이였었다. 

그런 내가, 불같은 1년간의 연애 후에 가슴에 불이 꺼지지 않아 너무 아파서 출근길에도 불을 밟는 것처럼 아팠고, 같이 살던 반려동물들을 쳐다 보아도 불을 쳐다보듯이 아팠고, 내가 혼자 살던 원룸 곳곳에도 잿더미의 냄새가 가시지 않아, 결국 아빠에게 날 좀 여기서 꺼내 달라는 처절하고도 간절한 부탁을 했다. 아무리 아파도 헤어진 남자에게 다시 만나자는 소린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냉정하고 항상 give and take가 중요한 아빠는 조건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을 쳐다보듯 아빠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아빠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낱낱이 밝히고, 아빠가 그 당시 빠져있던 이상한 단체에 나도 다녀오기를 바랬다. 기가막히게도 그 이상한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는 마침 2주간의 수련회를 간다며 지방 산골짝으로 나를 보내기를 원했고, 아빠는 모든 비용을 대줄테니 다녀오라며 엄청나게 기뻐했다. 거기만 다녀오면 내가 원하는 날짜에 내가 원하는 기간만큼 얼마든지 한국을 떠나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서울에 있기 힘들었던 나는 거기라도 좋았기에 당장 엄마 허락도 안받고 떠났다. 아주 기묘한 수련회였고 잡념을 떨치기에는 딱이었다. 누우면 꽉차는 코딱지만한 방에 넣어놓고는 소지품을 모두 압수하고 하루종일 벽을 바라보고 눈을 감고 있게 했기 때문이다. 룸메이트도 특이해서 나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곳을 다녀와서 드디어 아빠를 만났다. 아마 고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이었던 듯 하다. 수년만에 처음 만나는 아빠 앞에서 불같은 사랑 얘기를 하라니. 기가 막혔지만, 한국을 뜨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너무 간절해서 눈딱감고 얘기를 꺼냈다. 놀랍게도, 아빠 성격상 나에 대한 비판과 훈계를 기대했는데, 아빠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넌 복 받은 사람이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불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줄 아니? 아빠는 사랑이 무언지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해. 

이제까지 알아온 아빠가 누구였나 싶었다. 

가슴이 찡해오면서 아, 아빠도 인간이었지. 라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해본 것 같다. 엄마만 불행하고 다친 것이 아니었다. 아빠도 힘들었고 충분히 마음이 다쳤던 것이다. 아빠도 나랑 똑같이 불같은 사랑도 꿈꾸어봤고, 행복한 결혼생활도 꿈꾸었는데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든 엄마하고 잘 맞추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실패한 것이었다. 

덕분에 아빠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노력으로 타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실패한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하기 보다는 조금은 여유있는 마음으로 아빠와의 사랑을 시작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마음이 치유되어 갔던 것 같다. 


내가 엄마하고 살 때, 평생 엄마는 피해자였다. 엄마는 친구들이 연애할 때 다 가본 빵집 한번 못가봤고, 대학 내내 작품 활동을 하느라 바빴고, 수십번의 선만 봤고 그 분들의 스펙은 엄청났다고 했다. 그런데 조부모님들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략결혼을 했다. 아빠는 노는걸 좋아했고, 결혼 하자마자 집에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아빠를 찾는 낯선 여자의 전화도 걸려왔고, 시어머니가 툭하면 찾아와서 엄마에게 행패를 부렸다. 아빠는 항상 시어머니편이었다. 여전히 엄마는 이런 얘기들이나 더 심한 얘기들을 하고, 내 동생도 같이 아빠에 대한 험담을 한다. 지금 엄마와 동생은 내가 아빠한테 세뇌를 당했다고, 그리고 결국 둘이 인간성이 나쁜게 똑같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는 거라고 한다.

아빠는 외국인같이 생기셨다. 인기가 많으셨을테고 연애도 많이 해보셨다. 아빠는 당시 외국계 상사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당연히 돈도 잘벌고 잘나가셨다. 조부모님들끼리는 같은동네에 사셨기 때문에 그런 아빠에게 욕심을 내신 외가에서 혼사를 제안하신거였다고 한다. 아빤 사귀던 여자와 억지로 헤어졌고, 그 여자분이 억울함에 집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빠는 회사에서 팀장급이었기 때문에 바이어 접대가 잦았고, 술먹는 날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친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었고, 친할머니는 혼자 3남매를 키우셨다고 한다. 자연히 아빠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던 것 같고, 애정이 깊었던 막내아들집에 할머니는 자주 오셨었고, 전형적인 아들에 대한 질투를 아빠가 잘 받아주신 효자였다. 

평생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고, 유복한 집안에서 부모 두분다 살아계시고 6자매중 막내셨던 엄마입장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이뻐하고 떠받들며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는데 아빠만 그렇지 않은 나쁜놈이었던 듯 하다.

어찌되었건, 우리 부모님은 모두 사랑을 꿈꿨으나 해본 적은 없는 분들이었다. 사랑을 꿈꾸고 해보는건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을 한 번 해봤기 때문에 그 후에도 사랑을 할 수 있었고, 또 사랑을 못해본 부모님도 이해할 수 있는것이고, 가슴에 사랑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인것 같다. 

내가 항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의 후배 또는 친구에게 주장하는 결혼에 대한 고집이 하나 있다. 

너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하니?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결혼 맞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니? 아니라면 결혼 하지마.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으면 그 사람을 기다리거나 만나기 위해 노력해. 꼭 만날 수 있어. 꿈에 그리던 사랑과 결혼할 수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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