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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Dec 14. 2016

자유로운 시절 일기 19

즐거운 생활 시작. 영국편. 하나.

학교에선 매달 1번씩 뮤지컬 티켓을, 1번은 영화 티켓을 학생 할인해서 판매를 했었다. 영국이니 역시 Fame이지! 하면서 일본 친구들과 같이 보러 가기로 하고 구매를 했다. 분명히 같이 구매를 하면 다 같이 우르르 모여서 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야에꼬, 준꼬, 료오지, 신따로와 같이 내려갔지만, 두 자리만 붙어있고 나머지 자리는 뚝뚝 떨어져 있었다. ㅠㅠ붙은 두 자릴 준꼬가 나보고 같이 앉을래? 하고 묻다가 야에꼬와 신따로에게 양보하자 하고 우린 떨어진 자리를 선택했고, 뮤지컬 당일에 아무 생각 없이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극장 내부. 역시 최근 사진.
당시에 찍은 사진이 있을리가... 최근 Victoria Place Theatre 사진

아.... 양보하는 게 아니었는데. 극장 뭐 이렇게 커; 야에꼬랑 신따로 자리가 더 앞이잖아..ㅠ

Victoria Palace Theatre는 정말 내가 상상한 그런 곳이 아니었던 것이었던... 학생들이 갈 만한 대학로의 그냥 그런 극장을 상상했는데... (상상하시는게 맞음. ㅇ_ ㅇ; 무식하고 사전 지식이 없었...)

들어서는데 숨이 턱 막히는 느낌. 이런 공간은 정말 그저 와보기만 해도 무언가 보고 느꼈다는 생각이 들 그런 곳이었다. 세상 경험도, 구경도 못해본 스무 살의 나에게 이곳은 정말 버킹검 궁 다음으로 너무나 멋진 작은 영국 자체였다. 그건 그거고.

역시나 학생들에게 팔아먹은 싼 티켓이지! 정말 거의 뒤쪽이었고 잘 보이지 않았다. ㅠㅠ  우리나라 같았으면 굉장히 조용하고 우아한 척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건데, 이렇게 멋있고 웅장하고 역사 깊은 곳에 온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내 집 앞에 온 양 스스럼없었다. 아, 물론 복장이 개판이거나 시끄럽고 그랬다는 게 아니고 숨 막히는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나 할까? 괜히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어쨌거나 거기다가 난 학생이니 조금 철없어도 된다라는 터무니없는 배짱으로 ㅋㅋㅋ 막이 올라가고 시작을 했지만 얼굴도 찡그리고 혼잣말도 중얼 아니, 투덜거리고 턱을 괴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가서 보려는 참 힘든 몸짓을 했다.ㅋ 근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내 팔을 살짝 건드리기에 슬쩍 돌아보니 옆자리에서 누군가가 소곤소곤,

 

opera glass 빌려줄까? 이거로 보면 잘 보일 거야. 


난 사양이 뭔지 모르는 교양도 없는 사람이 돼서 활짝 웃으면서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하며 그 사람 얼굴도 제대로 안 보고 낚아채듯 받아 들고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다가.. 아차 싶었다. 정말 오래 봤다 ㅋㅋㅋ;;; 와 난 정말 염치도 없는가 보다; 얼른 돌려주며 최대한 이쁘게, 마치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하듯 활짝 웃어줬다.ㅋㅋㅋㅋ 


아, 미안 미안. 정말 미안. 깜빡했어.(당연히 영어엔 존칭이 없으니;;)


옆 자리의 남자는 낮게 웃으면서 

괜찮아, 넌 내 친구니까. 계속 봐도 괜찮아. 난 이대로도 잘 보여.


응??????? 친구라고???? 얘가 미쳤나??? 싶어서 빌려준다고 할 땐 쳐다도 안 본 얼굴을 그제야 고개를 많이 꺾어서는, 놀라서 커다래진 그 눈 그대로 최대한 크게 뜨고 옆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눈이 너무너무 이뻐서 폭 빠질 것 같은 유럽인 남자애가 날 보고 웃고 있다. 낯이 익다. 근데 모르겠다. 빤히 쳐다보니 이 아이도 당황했나 보다.


뭘 그렇게 쳐다보니?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설마 나 몰라?

(헐 모지?? =ㅁ =;;;) 응 몰라. 내가 널 알아?

우리 같은 학교잖아; 여기 좌석이 이쪽 줄이 모두 우리 학교 학생이야. 몰랐어?

아!!!!!! 그렇구나!!! 미안 미안! 너 기억이 안 나; 아마 어두워서 그럴 거야. 이따 불켜지면 아마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몰라 ^^;;;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모르겠다. 뮤지컬 내내 생각했지만 모르겠다. 끝나서 불이 켜져도 모르겠다;; 알아보긴 개뿔. 그 아인 내게 자기 이름이 필립이라고 했다. 


그래, 필립 고마워. 덕분에 뮤지컬이 더 즐거웠어. 학교에서 보자~ 잘 가~


하고 지나가려는데, 날 붙잡더니 


나도야. 고마워.


하면서 날 포옹을 한다???? 왜? 하고 물어보니,


왜냐고? 너가 날 이렇게 안아주니까. 기분이 좋아.


하면서 막 웃는다. 그러고는 잘 가! 이런다.. 헐... 얘가 돌아이인가 보다. 하고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친구들과 합류했다. 역시나 나와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료오지가 놓치지 않고 놀린다 ㅋㅋㅋ;; 


으음~ 사랑인가~?? 드디어 꼬마가 사랑을 하는 건가??


미안한데, 난 모르는 사람이란다. 우리 학교 학생이라서 그냥 아는 거래. 그리고 opera glass 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거뿐이야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설명을 해주고는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뭐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야에꼬는 역시나 내일을 걱정하느라 안된다 하고 준꼬와 나는 둘 다 먹자고 꼬드기고. 그러는데 애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응? 왜? 

뒤통수가 따가워서 뒤돌아보니...

방금 자기가 필립이라고 한 그 돌아이가 서있다.


Ah, hi again, Filip? What's the matter?

음... 그게... 너 이름을 안 물어봤어.

하! 그거봐! 너도 나 모르는 거 맞잖아! 내가 널 모르는 건 당연한 거였어!!!

아냐, 그래도 난 니 얼굴은 기억하잖아. 이름 알려줄래?

왜? 왜 내가 너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어야 하지? 우리 어차피 서로 모르는 사이잖아?


Aleksandra!! 그게 얘 이름이야! 이제 그만 가줄래?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가야 하거든? 용건이 있으면 내일 학교에서 얘기하자.


역시 남자답고 단호한 료오지가 끼어들어서 돌아이는 쫓아주었지만, 젠장..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놈 앞이라서 더 징징대지 못하고 우린 그 자릴 우르르 떴다. 야에꼬도 졸지에 우릴 따라 자릴 뜨고는 자주 가던 피카딜리서커스 역 근처 태국 식당으로 향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웅성웅성 교실을 나오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멀리서. 두리번두리번거려 보는데 누군지도 모르겠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데.... 두둥...

1층 입구 근처에서 날 부르는 돌아이가 포착되었다. 얼른 뒤돌아서 도로 들어가려는데 날 발견했다. ㅠㅠ 


Hi, Aleksandra! It's me, Filip! How are you??


후...... 아 정말 여기서 넌 누구냐. 라고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어. 진짜로. 

어제 극장에서 컴컴할 땐 참 멋있어 보였는데 학교에서 보니까 왜 찐따 같아 보이지;

나랑 같이 나오던 야에꼬도, 신따로도 대체 왜 걔한테 아는 척을 하는 건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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