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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Sep 06. 2016

자유로운 생활 일기 17

koktem 살던 시절. 전반부. 하나.

본격적인 카자흐스탄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생일에 나의 술주정을 보고 경악을 하신 아빠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신듯 하다. 나랑 같이 살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내가 입학한 학교 바로 길건너 아파트 단지에 집을 얻어주셨고, 당신의 회사 직원중에 자취를 하던 여직원을 내 감시인(??)으로 붙여서 같이 살게 하셨다. 명목은 좋았지. '현지인과 같이 살면서 빨리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하지만 내 술버릇을 보고 감을 잡으시고는, 나를 감시하라고, 아니, 매일 내 동향을 보고 하라고 시켰다는 걸 나중에 나아아아아중에 알게 되었다.

그때는 내 딴에는 내 편을 만들어 놓는다고 좋아했었지. 나중에 뒤통수 맞은 건 모르고...

이사를 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벼룩시장을 들고와서 내 하우스메이트인 Майгул(애칭: 마야)에게 고양이 무료분양 내지는 헐값분양(?) 하는 집에 찾아가자고 졸른 것이었다. 이미 아빠 회사에서 영어를 잘하는 비서에게서 벼룩시장에 무료로 동물 분양 많이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거든. 마야는 엄청 곤란해 하면서 아빠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나도 동물은 싫다, 그 뒤치닥 거리는 누가하냐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싫은 내색을 팍팍 보였지만,

너가 가기 싫으면 회사에 직원들 수두룩한데 걔들 아무한테나 부탁해서 같이 가면 돼. 어차피 난 고양이가 필요해. 혼자 살 수는 없어.

라고 딱 잘라서 말했고. 마야는 울며 겨자먹기로 나를 따라 나섰다.

와, 도착해서 보니, 한국에 그당시엔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발리니즈라는 품종이었다. 지금이야 자주 보이겠지만. 샴같이 생겼는데 털이 길다. 우아하다! 와! 한마리 분양받으러 갔다가 3형제를 싹 다 데리고 왔다.ㅋ 마야는 기겁을 했지만, 고를 수가 없는데 어떡해. 거기다가 분양가가... 그 당시 완전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리고 집집마다 강아지 또는 고양이를 키우는게 우리나라와는 달리 엄청 일반화 되어 있어서 거의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약 10만원정도를 드리고 세마리를 다 데려왔다는거!!! 장모종이고 귀한 칼라인 seal-lynx point(태비 포인트), 그리고 같은 칼라 단모종 한마리, 그리고 장모 씰포인트 한마리 삼형제를 데려왔다. 오는 길에 pet shop 들러서 화장실과 모레, 스쿱도 사고, 사료도 사서 랄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덜컹 함이... 세마리...ㄷㄷㄷ 그 순간엔 혹 했지만 역시나 저지르고 나면 ㅋ 마야의 눈치도 보이면서 불안불안한게 후폭풍이 몰려왔다. 역시나... 바로 아빠 귀에 들어갔고, 되돌려 주라고 엄청 혼났고, 집주인 귀에도 들어갔고, 결국 땡깡을 부리고 눈물을 보이며 부득부득 우겨서 두마리는 키우게 허락하셨고, 한마리는 되돌려주기로 약속을 했다.ㅠㅠ

어쨋건, 냥이들 덕에 덜 외로워졌다.  


학교 가기 시작한지 이틀 차, 아는게 없다. 러시아와 인근나라(?), 소위 CIS국가에는 외국인, 국경 인접지역의 현지어 사용인이나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시골 학생들을 위해서 대부분의 대학교에 예비학부 과정이라고 하는 빠드팍(줄임. ПодФак: Подготовительный Факультет)이 있다. 대부분 외국인들은 어학연수를 이 빠드팍으로 온다. 나 역시 국립대학의 빠드팍 과정에 입학을 했고. 단 한글자도 읽을 줄도,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른 채 왔다.ㅋ 근데 와보니 반에 100%가 러시아어를 접해본 사람이다. 불공평해. 러시아어 전공자도 있고, 학원 다니다 온 사람도 있고, 이미 이곳에 산지 오래되어 아는 사람들도 있다. 난 뻔뻔하게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 영어로 질문하고 답했다;;; 선생님은 자꾸만 빠 루스끼!(러시아어 사용하세요) 라고 외치지만 어쩌라고. 모르는데. 기본 인사 조차 모르는데;;

우리 반에는 중국 사람 2명, 스페인 사람 1명, 터어키 사람 1명, 한국 사람은 4명이나 있다!! 대체 한국 사람이 적은 나라는 어디란 말인가!! 그 당시엔 정말 놀라웠다. 이 구석탱이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라까지 와 있는데 반의 50%가 한국사람이라니... 쉬는 시간이 되었다. 딱 봐도 40대 혹은 더 되 보이는 한국인 아줌마 두명이 수근 거리는데 날 흘낏흘낏 쳐다보면서 대놓고 내 얘기를 하더니, 나랑 눈이 딱 마주치니까 나한테 말을 건다.


저기, 자기 혹시 XX그룹 부도나서 여기로 해외 도피한 XXX 사장이 데려온 사람 맞지? 그 사람 정부지?


헐?? 정부?? 나 그래 보이나... 내가 20대 라는 이유로 그렇게 추측을 한걸까? 아니믄 그 사람을 닮은 걸까? 아니믄 내가 남의 첩같이 생겼나? 그렇게 생긴건 뭐지? 골때리는 시츄에이션인데... 화를 낼 수도 없고, 안 낼 수도 없는...


죄송한데요. 알고 물으시는 건가요? 그냥 그 말이 사실이라도, 사실 아닌 추측이라도 둘 다 무례한거 아시죠?

어머, 어마, 미안해. 아닌거야?


아니, 그거 참. 사실이어도 내가 진짜 그 사람이어도 이렇게 묻는건 무조건 미안해 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 사람이 자기한테 불이익이라도 준 적 있나? 진짜 이 아줌마는 정내미가 확 떨어지네.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다...


죄송하지만 말씀하시는 그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라고 하고는 쏘아? 아니 째려보고 다시 칠판을 쳐다봤다. 그 아줌마는 내 행동에 조금은 충격도 받았고 자기가 한 말이 미안하기도 했는지 둘이서 또 뭐라뭐라 해댄다. 그치만 그것도 잠시, 굉장히 뻔뻔한 이 아줌만


그럼 자긴 누구야? 여긴 어떻게 왔어?


하고 묻는다. 진짜 ㅋㅋㅋㅋㅋ 한국 아줌마 최고! 낯짝 두꺼운건 우주 최고다! 아빠 따라서 왔다고 대답을 해 주니 또 아빠가 누군지 묻는다. 후덜덜;; 어차피 말씀드려도 모른다고 딱 잘라서 말하고 대화를 끝내려 했더니... 자긴 한국인 거의 다 안단다. 말해 달란다. 허허... 한국 사람 4명이 눈이 동그래져서 날 쳐다보고 있다. 걍 씹어줬다. 너무나 흔한 네가지 없는 20대라고 생각하던지 말던지. 말 섞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고. 역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학부 준비과정은 러시아어 문학, 러시아어 문법, 카자흐스탄 역사, 지리, 수학, 카자흐어 또 머였지? 대충 이렇게 몇 가지 과목을 러시아어로 배운다. 난... 나에겐... 그냥 모두 자장가로 들렸지만 -_-ㅋ 담임 선생님은 문법과 문학을 가르쳤다. 주 과목이었고, 제일 중요한 성적을 좌지우지 했고, 성적에 따라서 낙제? 유급처리도 있었고, 심하면 퇴학도 ...ㄷㄷㄷ 당할 수 있다. 담임이 꼭 주 과목을 가르치는건 아니었다. 고등학교처럼 선생님들이 계속 바뀌면서 들어오는데, 나중 일이지만, 주 과목이 담임이었던 것이 나에겐 엄청 다행이었다.


여튼, 일주일 내내 학교를 다니고는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인사와 헤어질 때 하는 인사, 감사합니다와 미안합니다만 겨우 외웠다. 둘째주 부터는 눈치가 생겨서 조금씩 알아듣는 단어와 말도 꽤 생겼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서 할 수 있는 말은 여전히 인사 정도다. 수업시간에 거의 벙어리 수준이긴 해도 영어를 쓰는 빈도도 낮아져서 선생님도 굉장히 만족해 한다. 하지만 뻔뻔한 아줌마들 말고, 다른 한국인인 대학생 아이를 선생님이 먼가 말을 할 때마다 매번 뭐라고 하셨어요? 저건 머래요? 하면서 여전히 귀찮게 했다.

이주차의 어느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киоск(키오스크)와 магазин(마가진)의 차이를 배울거라고 하셨다. 매거진? 잡지인데... 알고보니 작은 간이상점과 보통 상점이라고 옆에서 한국애가 설명해준다.

아하! 우리 아파트에 동과 동 사이에 서있는 버스 매표소 같이 생긴곳이 키오스크고, 단지 입구에 있는 큰 가게가 마가진인가보다 하고 생각은 했다.

차이점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은 마가진에 가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자, 대답은 알렉산드라부터 시작해 볼까요?


헐.. 왜???? 난데??? 내가 못하니까 당연히 나중에 시킬 줄 알았는데...

뭔가 재섭는 아줌마들이 킬킬거리면서 쳐다보는데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모른다고 하려다가 대답을 했다.


보드카


선생님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맞아요, 하면서 기뻐하신다;; 그렇지만 살짝 웃으시면서


보드카 말고 또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시길래... 내가 머.. 아는 단어가 있어야지.


꼬냑


선생님은 맞습니다. (약간 웃음을 참으시면서) 다른 것도 있지요?


삐바 (맥주를 말한다. 술이름은 카자흐스탄 오자마자 내 생일에 다 배웠단 말씀이지. 훗)


선생님은 이젠 웃음기가 가셨고 약간 불안해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말해보세요.


샴판스꼬예(샴페인이란 소리다. 내 생일에 엄청 터뜨렸는걸!!)


내 표정은 참으로 천진난만했고, 반은 대답을 러시아어로 했다는 자랑스러움이 누가봐도 내 얼굴에 한가득 묻어났기에 선생님은 다시 얼굴을 정색을 하시고, 다른 말씀 없이


잘 알았습니다. 다음 사람은? 마가진에 가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하시며 아무일도 없었던듯 질문을 이어나갔다. 학생들은 참 단어공부들도 열심히 하나보다. 빵, 연필, 우표

(우표는 대체 왜???), 우유, 책(너무한거 아냐?) 등 학생들은 살 수 있는것보다 자기가 아는 단어들을 다 얘기하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덕분에 시간이 엄청 오래걸렸다. 책은 책방에 가서 사는거에요, 우표는 우체국에 가야 살 수 있어요 등등. 보조 설명을 엄청 오래했다. 설마 얘들이 한두살 먹은 학생들도 아니고 다 어른들인데 몰라서 그랬을까... 아는 단어 자랑좀 하고 싶었겠지. 참 선생님은 착하시다. 일일이 대꾸하고 설명을 해주시니...

 마가진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 주시고는.


자, 이제 우리 키오스크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키오스크에 가면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자 알렉산드라부터 대답해보세요.


이 선생님이??? 알면서 이러시낭?? 의아했으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절도 있게 끊어서 대답했다!!!


보드카!

음... 맞습니다. 또 다른것은?

꼬냑

또?


난 답답해서 한번에 대답해드렸다.


삐바, 샴판스코예, 비노!


하나 더 대답을 했다는 자랑스러움에 난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까지 짓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참고로 비노는 와인이다!


선생님은 '깔바싸!' 하시더니 다음사람에게 또 질문을 계속 하셨다. 역시나 애들은 날 보란듯이 아는 단어들을 마구 자랑스럽게 마치 초딩들처럼 크게 대답들을 했고, 난 깔바싸가 무얼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그 땐 사전을 찾을줄도 몰랐고 사전이 있지도 않았으며, 있었어도 사전까지 찾을 열정은 없었다. 그저 공책 한구석에 한글로 깔바싸라고 적어놓았다. 집에가서 마야한테 물어봐야지.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서 대충 인사를 하고 일어나는데, 선생님이 부르신다. 그리고 또 한국인 한명도 잊지 않고 부르신다. 무슨 일일까 하면서 선생님한테 다가갔다.

굉장히 천천히 또박또박 날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말씀을 하신다. 선생님, 그래봤자 못알아듣습니다만... 눈만 껌뻑이면서 선생님을 쳐다보다가 아는 단어가 나왔다. 보드카!!! 옆에 한국인을 보고 다시 눈을 껌뻑거리니까 선생님이 나한테 얘기해주라고 그랬나보다.


저...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키오스크에서는 보드카를 사면 안되요. 키오스크에 파는 보드카는 질이 낮아서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파요. 라고...


ㅋㅋㅋㅋㅋㅋㅋ 빵 터졌다. 아 우리 담임 잘 안웃고 시리어스하게 생기셔서는 이런 유머감각이... 근데 얼굴은 심각하시다. 진짜 레알 진심이신가보다.ㅎ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제서야 웃으시면서 작별인사를 러시아어로 해보란다. 애들한테 항상 묻묻해서 도수응응응~ ㅎ하는걸 눈치 채셨나보다. 발음을 또박또박 교정을 해주신다. 담임이 급 좋아졌다. 발음교정받고 이쁘게 작별인사하고 학교를 나왔다.


아줌마들, 내가 선생님하고 따로 무슨 말을 했는지 밖에서 묻는다. 그냥 씩 웃음으로 대답해줬다. 아줌마들이 괜히 친한척을 하면서


자기 아빠 진짜 누군데!! 선생님한테 와이루 먹였어? 갑자기 왜저렇게 친해졌어? 자긴 어디 살어? 같이 갈까?


아우.. 진짜 이 아줌마들.. 어차피 통역을 해 준 저 대학생애가 다 얘기할게 뻔한데 굳이 내가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


꼭땜(коктем) 삽니다. 어차피 걸어가면 바로 길건너편이라서 혼자가도 됩니다.


헐? 꼭땜? 진짜? 잘사네? 그럼 잘가~


삐죽거리면서 아무래도 맞는거 같아~ 그 사장 첩 아닐까? 꼭땜이래~ 수상해~ 이런소릴 하면서 다른반 아줌마들하고 합류하더니 우르르 반대편으로 가버린다. 에휴..  다 들리는구만.

말이 건너편이지... 학교가 대학이다보니 거기다가 카자흐스탄의 제1 국립대학이라서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그 중 빠드팍 건물에서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않고, 내려와서도 정문쪽은 큰길이 주도로라서(대통령 다니는 길) 굉장히 넓고 바로 횡단보도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옆문으로 돌아 나와야 하고, 단지도 커서 아파트까지 오는데는... ㅠㅠ 걸어서 무려 20분이나 아니 그보다 더 걸린다. 화장실이라도 급한 날은 택시를 타야할 정도다.ㅋ

내가 처음 갔을 때는 카자흐스탄의 국립대학인데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칸막이만 있지 문이 없었다.ㅠㅠ 마주보며 볼일을 보던...ㄷㄷㄷ 나중에 화장실을 고쳤지만 그래도 칸막이와 문은... 서있으면 서로 다 보인다 ㅋㅋㅋ 서부영화에서 술집을 들어갈때 용수철처럼 밀고 들어가면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문이 크기도 딱 그정도로 어중간하게 중간에만 있다... 결국 앉아야만 얼굴이 가려지는.. -_-ㅋ

별의 별 상상을 다 했다. 공산국가라서 화장실에 숨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만든건가..

퍼세식이라서 냄새도 그렇고 난 꼭 집에와서 화장실을 이용했지 학교에선 절대로!!! 이용하지 않았, 아니 못했다. 그래도 집이 제일 가까웠고 아주 쾌적하고 치안도 잘되있는 좋은동네라고 하더라. 그러고보니 낮이나 밤이나 단지안이 사람이 사는가 싶을정도로 조용하긴 굉장히 조용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참 드물게 엘리트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이더라... 물론 지금은 아니겠지만, 2천년대 초반인 당시엔 그랬다.

카자흐스탄 국립대학, 일명 카즈구 영어로는 카즈누(KazNu)

학교 참 옴팡지게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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