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vin Kim plays Bach’s 6 violin solo
우리나라에서는 실내악이라 번역되는 챔버뮤직은 보통 듀오, 트리오, 콰르텟 등 다양한 구성의 소규모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데 악기의 편성이 작기 때문에 연주되는 공간도 작은 홀이 적합하다. 그런 면에서 포틀랜드 시내에 위치한 TOC (The Old Church)는 말그대로 예전에 교회로 쓰던 공간을 더이상 종교적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소규모 공연 용으로만 쓰는데 클래식 음악의 챔버뮤직을 연주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TOC는 아담한 홀이고 소위 말하는 사운드 어쿠스틱이 매우 좋은데 이는 악기의 소리가 반사되는 공간적 구조가 적절하고 너무 크거나 작지 않아서 소리가 흩어져 버리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솔로 공연은 챔버뮤직이라 칭하지는 않지만, Chamber Music Northwest에서 몇 년째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의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는 단연코 이번 시즌의 시작점인 동시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다. 작년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메인으로 했는데 올해 여름 페스티벌의 테마는 Echoes of Bach이다. 한여름에 5주 동안 이어질 뜨거운 바흐 축제에 들어서기 전, Bach’s Tremendous Technique & Style이라는 타이틀로 이 어마어마한 바흐라는 작곡가의 천재성을 먼저 보여줄 작정이었나보다.
얼마 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큰 감동을 받고 온 터라 무반주 전곡을 한 주의 목,토 이틀에 걸쳐 연주하는 두 공연 티켓을 덜컥 구매하고 연주회 바로 며칠 전에 잡힌 연주자와 함께하는 Q&A 세션에도 다녀왔다. 사실 그동안 바흐의 음악하면 늘 어렵게 느껴졌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는데 , 그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 볼수록 참으로 매력적이고 완벽에 가까운 구성을 가진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은 자신의 이전 세대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고 그 위에 덧붙여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해 나갔는데 도대체 바흐는 누구의 영향을 받은것일까? 바흐 이 전에 그 누구도 이런식의 음악을 만든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화성을 완성하고, 모든 음계를 발전시켜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 후의 모든 음악인들에게 영감을 준 한 인간이라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6곡은 악보상에 바흐가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지 말 것이라고 명시해 두었다고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외롭고, 자기가 내는 소리를 그 어떤 화음으로도 가릴 수 없어 마치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바이올린이 가진 고유의 소리로만 주어진 음악을 펼쳐 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아담한 공간에서 솔로 현악기의 울림으로만 공기를 채웠을 때의 그 황홀한 소리는 어떤 웅장한 오케스트라와는 빗댈 수 없는 매력일 것이다.
이 공연을 들으러 가기 전,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3 혹은 4 악장으로 이루어진 곡의 형식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파르티타는 뭐지? 하는 마음에 찾아봤더니 춤곡이라는 의미에 깜짝 놀랐다. 이 전에 가끔 파르티타 몇 번 혹은 파르티타의 가보트, 미뉴엣하며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이게 무슨 춤곡이야? 했었기 때문이다. 일단 단조(마이너) 곡들은 너무 우울해.. 한 맺힌 한국무용 느낌으로 춤을 춰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파르티타가 춤곡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하나 다시 집중해서 들어봤다. 그러고 보니 가보트는 2박 혹은 4박자로, 미뉴엣은 3박으로 옛 귀족들이 풍성한 옷 입고 춤추기에 괜찮을 것 같기도 하네 싶었다. 여전히 춤을 추기 위한 음악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잘 감상해야 하는 음악이라는 것에 마음이 더 기운다. 왜냐하면, 바흐의 이 무반주 솔로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 자연스레 지나온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승맞게 추억에만 젖게 하지만은 않고, 종종 이렇게 전개 된다고? 하는 순간들이 나오기 때문에 음악에 온전히 나를 맡기기만 하면 된다.
김수빈 바이올리니스트는 이 전에도 여러번 연주를 들었고 믿고 보는 연주자이면서 교수님이기에, 어떻게 이 음악 풀어낼 지 매우 궁금했었다. 연주회 전 날 Q&A 세션에서 나에게도 질문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바흐의 이 솔로곡들을 십대에 연주한 것과 지금의 연주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물었다. 이렇게 어렵고 도전이 되는 곡은 아마도 평생 연습하고 연주할 테지만 요요마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3번이나 녹음하고, 글렌굴드가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오랜 텀을 두고 두번 녹음하며 굉장히 다른 해석으로 연주한 것과 비슷하게 나이가 들면서 어떤 차이점이 생기는 지 궁금했다. 김수빈 바이올리니스트가 십 대 시절 신문에 연주평론이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너무 잘했는데, 앞으로 인생경험만 더 쌓아서 연주하면 좋을것이다라는 평을 받은 적이 있다 했다.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큰 그림을 보며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나만의 pulse(심장박동)을 들으며 모든 음표에 집착하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갖고 어느 지점에 강조를 두고 어느 지점을 넘겨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지혜로워졌다는 것이었다. 인생에 경험이 쌓이며 연주에도 연륜이 묻어난다는 건 이런걸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여러 성부를 올려야 하는 바흐의 음악을 키보드나 기타가 아닌 기껏 손가락 네개를 줄 네개 위에 올려 활로 그어 소리를 내야한다는 제약 앞에 바흐의 무반주 곡들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 첫째날: 파르티타 3번 마장조 곡으로 시작을 했는데 6개 곡 중 첫 시작으로 가장 알맞는 선택이었다. 경쾌하고 익숙한 멜로디로 빠르게 프렐류드(Preludio)를 시작했고, 유명한 가보트(Gavotte en rondeau)와 미뉴엣(Minuet I II), 부레(Bourre), 지그(Gigue)로 이어졌다.
교수님다운 완벽한 활 컨트롤 포스와 황홀한 음색으로 관중을 사로잡으며, 순식간에 공연장 안의 공기를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 채웠다. 무대 위에 다른 악기 없이 혼자 서서 연주 하다 보니 작은 몸짓까지 다 볼 수 있었고, 바로크 시대 곡들을 위한 활을 사용했는지 궁금했다.(보기에는 바로크 활은 아닌 듯 했다) 어느 부분에서는 악보에 piano/forte 표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확실한 대비를 보여줬고 베이스 음이 마치 피아노에서 페달을 밟은 것처럼 잔잔하게 남고 멜로디를 차곡차곡 올려주어 환상적 아르페지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두번째 곡은 소나타2번으로 절제된 비브라토에 베이스와 멜로디가 서로 주고 받는 듯한 연주가 이어졌다. 모든 음을 연주하지만 이끌어가는 주제가 명확하게 있고, 저음부를 깔아주고 탑노트가 수놓아지며 분명 있었는데 금세 사라져버리는 듯한 음악의 잔상이 진하게 남았다. 연주자가 어쩔 수 없이 외로워야만 하는 무반주 소나타는 마지막 알레그로에서 빨라진 단조 음악이 주는 긴장감을 놓치 않으며 수려하게 연주 되었다.
무반주 6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을 꼽으라면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 샤콘느 (Chaconne)일 것이다. 첫째 날의 마지막곡으로 연주된 파르티타 2번은 풍성하고 꽉 찬 사운드로 시작하며 화려한 활사위로 공기 중에 흩어지는 음들을 이어가는 검투사를 연상케 했다. 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요구되는 곡이고, 특히 4악장 지그 (Gigue)는 빠른 춤곡답게 정확한 멜로디가 가빠른 호흡과 함께 화려함을 뽐낸다. 단일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5악장 샤콘느는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고 이전 악장에 이어지는 느낌으로 바로 시작되었다. 이 곡만 따로 연주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이러한 선택은 연주자로써 꽤 잘 한 선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스토리는 진척을 보이면서 늘어지지 않는 분위기로 이끌어 갔고, 이 아름답고 독보적인 멜로디를 듣는 내내 후대의 수 많은 작곡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흐는 이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며, 듣는이들에게 우리 각자의 인생 스토리는 무엇인지 마치 물어보는 것 같았다. 가장 마지막에 첫 테마가 다시 한번 반복되며 마무리를 지었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틀 후에 보자며 아쉬움과 기대를 안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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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은 소나타 1번으로 시작하였다. 토요일이었기에 관객석은 더욱 꽉 찬 느낌이었고, 김수빈 바이올리니스트는 시작과 동시에 굉장한 집중력으로 모든 관객의 몰입을 끌어냈다. 절대 선을 넘지 않은 절제와 연주자의 호흡의 조화가 듣는이들조차 숨 죽이게 만들었고, 활의 각도와 소리 길이 조절이 탁월했다. 환상적 코드와 아르페지오가 이어지며 특히 Fuga에서는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선보였다. 마지막 Presto는 속도는 빠르지만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소리를 내어 주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해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몸 안에 메트로놈이 있어서 박자에서 무너짐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AI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이미 스며들었는데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동은 어떤 인공적인 것도 생산해 낼 수 없는 날 것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파르티타 1번은 4개의 악장에 각각 Double이라 칭하는 변주가 딸려 있어 다른 곡에 비해 길고, 연주자 입장에서도 매우 어려운 도전곡이지 않을까 싶었다. 전체를 다 외워서 연주한 것에 다시 한번 감탄이 나왔고, 이 어려운 곡들을 하며 길을 잃지 않고 완주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연주자의 힘듦만큼 아마 관객들도 정신줄 놓지 않고 집중해서 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변주의 진행이 복잡해지며 관객 입장에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은 곡이다. 그럼에도 3악장 쿠란테 더블 연주할 때에는 거의 묘기대행진 수준이었고 연주자는 무아지경으로 보였다. 3악장을 마친 후에는 관객들도 참았던 숨을 내쉬며 박수가 터져나왔다. 활을 줄에 풀로 붙여 놓은 듯이 찐한 소리가 나기도했고, 사라방드를 연주할 때에는 마치 약음기를 낀 것 같은 음색을 내기도 했다. 격정적인 연주를 보여주었는데 동시에 섬세함 또한 잘 표현되었다.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비유되는 바흐의 무반주 6곡 연주의 마지막은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이었다. 개인적으로 다장조(C major)곡이면서 단순하지 않은 감성이 녹아있는 곡을 좋아하는데 이 소나타 3번이 대표적 예이다. 코드가 많고 다장조이지만 왠지 모르게 슬픈 1악장 아다지오 마지막 트릴을 지나 2악장 푸가로 부드럽게 넘어와 고급스러움의 최고봉을 보여주었다. 마치 반고흐의 별 헤는 밤처럼 수많은 색채가 여러 겹으로 올라간 유화같은 음악을, 밥 로쓰 아저씨가 붓을 쓱쓱 그으며 매우 쉽죠? 했던 것 처럼 바이올린을 갖고 놀듯이 연주했다. 들으면거 파가니니는 자신의 카프리제를 작곡할 때 바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고, 이 모든 연주의 최고의 교훈은 스케일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게 아닐까?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내가 만약 미국에서 죽어서 나의 장례식을 한다면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틀어달라고 유언장에 적어둘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머릿 속에서 떠 도는 작은 메모리들의 회로가 다 연결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둘째날 연주보다는 첫째날에 바이올리니스트 컨디션이 좀 더 나아 보였는데, 그래도 마지막 곡의 마지막 악장 연주는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연주 한 것 같았다. (드디어 끝!! 이라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을 듯)
이 바흐 무반주 프로그램으로 포틀랜드에서만 연주한 건 아니고 버몬트에서 이미 솔드아웃 콘서트를 하고 온 듯 했다. 그럼에도 실력이 받쳐줘야 하는 건 말 할 것도 없고, 체력적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도전이 되는 이 솔로 프로그램으로 포틀랜드에 와줘서 연주자에게 고마웠다. 무려 스무살의 나이에 파가니니 콩쿨을 우승하고 현재는 NEC와 예일대에서 교수님으로 바쁜 와중에 챔버뮤직까지 동부, 서부 작은 도시들에서 콘서트를 열어 주어서 많은 이들에게 이런 고 퀄러티의 실연 감상 기회를 주다니… 올 여름 바흐테마로 연주될 페스티벌도 기대가 더욱 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Chamber Music Northwest 음악 감독으로 활동해 주시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