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좀 더 피곤해져도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

by 수영

얼마 전에 광주에 계신 엄마가 아프셨다.

하루 종일 설사를 하고 전혀 못 드시고 누워만 계셨다.

하루이틀 지나면 괜찮아지실까 싶었는데 3일이 넘어가도록 호전이 없었다.

집 앞 가정의학과에서 수액도 맞으시고 약도 타다 드시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항암치료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태라 오히려 엄마의 도움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고 하루 종일 일터에 묶여 있는 언니는 이런 엄마 아빠를 도와줄 수가 없다.

멀리 서울에서 이 상황을 날마다 전화로 전해 듣는 난 발만 동동 굴렀다.

근처에 계시면 도와드릴 방법이 있겠지만, 가는데만 4시간 걸리는 거리라서,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는데, 그렇게 간다고 해도 딱히 도와드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날마다 가정의학과 가서 수액 맞으시라고 말씀드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프신지 4일째 되는 일요일, 아침 8시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요일 아침에는 손주들이 늦게 일어나는 걸 알고 계셔서 어지간하면 전화 안 하시는데, 이 시간에 전화라니, 깜짝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목소리 내는 것조차 힘이 드시는지 들릴까 말까 하는 작은 소리로 겨우 말하신다.

아무것도 못 드시는데 설사는 계속하고 몸이 너무 안 좋은데, 병원은 다 닫았고 어떻게 하냐고 물으신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쩌지...

고민고민 하다가, 광주 기독병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5년 만에 연락을 했다.

그동안 연락 한번 안 하다가 5년 만에 하는 연락이 부탁이라니, 너무 미안하다.

친구는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의 부탁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받아준다

친구가 일하는 병원 응급실 과장님께 부탁드려 놓을 테니, 엄마는 응급실로 오시면 된다고 말해준다.

엄마는 결국 보호자 없이 혼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가셨다.

친구는 근무가 없는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나와 엄마를 응급실 안으로 안내해 주고 과장님께 직접 부탁을 드려줬다.

그리고 피검사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가 엄마에게 직접 설명도 해주고 나에게도 알려줬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 주시라며 엄마 핸드폰에 친구의 번호도 저장시켜 줬다.


눈물이 났다

엄마가 아프신데 멀리 있어서 도움을 드릴 수 없는 게 속상하고,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엄마가 왜 우는지 영문을 모르는 아이가 "엄마 왜 울어" 자꾸 묻는데 설명은 못하고 혼자 연신 눈물을 닦았다.


눈물과 함께 오랜 내 마음속 질문이 떠올랐다

'삶이 좀 더 피곤해져도 마음을 써서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하는가?'


나도 진료를 할 때 참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타입이다.

내 선에서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큰 병원 가보세요" 하고 의뢰서 한 장 드리고 다음 환자 보면 될 텐데 그 의뢰서 받아 들고 어찌해야 할지 막막할 보호자가 걱정돼서 그렇게 못한다.

여기저기 병원에 전화를 돌리고 그것도 안되면 지인에게 따로 부탁해서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한다.

진료할 때 무리한 요구가 있거나, 진료 온 아이 말고, 아이 동생이나 사촌 아이에 대한 질문이 있어도 화내거나 끊지 못하고 웃으면서 최대한 들어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면 진료가 밀리고, 대기가 길어져서 힘들 애들과 보호자들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서두르다가 진을 다 뺀다.

그렇게 퇴근하고 나면 완전히 방전되어 애들은 아빠에게 맡겨놓고 침대에 눕는다.

진료할 때 한 명 한 명 에너지를 많이 쓰니 나도 힘들고, 그런 나를 보는 남편도 힘들고, 애들한테도 미안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마음을 쓰다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가족들까지 영향을 주는 것 때문에 늘 고민이었다.

마음을 쓰지 않고 간결하게 진료를 보고 에너지를 남겨와서 가족들에게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맞은가. 그래야 내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고 보니 마음을 써주는 도움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친구가 집에서 응급실에 전화 한 통만 해줬어도 너무나 고마웠을 텐데 직접 나와서 엄마를 챙겨주고 이후에도 친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주었다.

곤경에 처했을 때 마음이 담긴 도움을 받으면 평생 기억하게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진료할 때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마음을 써서 도와주는 건 '삶이 피곤해지는 정도'의 일이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삶이 피곤해진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멈추면 안 되겠다 싶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언 3:27)

성경의 이 말대로 사는 게 맞다.


다만 가족들에게도 마음을 쓸 수 있도록 내 에너지 레벨을 올려봐야겠다.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진리이니 운동도 꾸준히 하고, 마음의 회복을 위한 글쓰기도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삶이 좀 더 피곤해질지라도 다른 이들을 도우면, 내 친절은 다른 이를 구하고, 도움을 받은 이는 또 다른 이를 구할 것이다.

내 친구의 도움이 나에게 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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