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랄라 Feb 11. 2022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때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와 '성의 변증법’을 읽고



내가 안낳는 이유


 '안낳아?'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면 언제나 나의 생식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이웃이 있다. 이미 한 손에 다섯살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나에게 둘째는 언제 낳느냐는 (낳으라는) 말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한답시고 30시간의 진통을 생으로 견뎌야 했고 친정과 시가의 도움 하나 없이 수시로 해외출장을 가는 남편과 살며 독박육아를 제대로 경험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출산은 물론 결혼조차 하지 않을 거라고 매일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살고 있는데 둘째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여성이 생식수단의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 즉 인공생식으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을 때 여성의 해방이 가능하다는 파이어스톤의 주장에 브라보를 외쳤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임신을 확인했을 때 넘쳐나던 기쁨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던 몇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임신기간 내내 가만히 있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늘 경미한 두통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늘 불안했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에 대한 불안, 뱃속의 아기가 조금 자라자 장애가 있는 아기는 아닐까에 대한 불안 그리고 출산에 가까워지자 분만의 고통이 두려워 떨었다.

 

 분만실의 차가운 침대와 환한 형광등 조명을 벗어나고자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대가로 나는 30시간의 진통을 오롯이 견뎌야 했다. 허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몸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학교 운동장을 돌고 밥을 먹고 샤워를 했다. 기나긴 진통에 지쳐서 아기가 산도를 빠져 나왔을 때는 아기를 만난 기쁨 전에 고통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먼저 찾아왔다. 출산은 고통 그 자체였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씩이나 되는 듯 하지만 그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배운 적이 없다. '배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듯한 고통' 과 같은 막연한 묘사나 '남편이 출산과정을 보면 와이프에 대한 성적 욕구를 잃는다더라' 같은 출산하는 산모 보다 남편의 성욕을 먼저 고려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전해질 뿐이었다.




웨딩드레스와 만삭사진

 

 임신 초기에는 티가 잘 나지 않으니 항상 임산부 뱃지를 잘 보이는 곳에 달고 아직 나오지 않은 배를 부러 내밀고 다녔다. 임산부 배려석에 당당히 앉아있는 쩍벌남에게 더 당당히 대항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임신을 한 여성은 이미 성관계를 경험했다는 사실 때문에 성적 대상화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 임신을 한 기간 내내 오래도록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아 몸을 숙이고 배를 가렸다. 가부장제가 잘 포장해놓은 ‘숭고한 어머니’ 상에 매도되었거나 오랫동안 원했던 임신을 한 황홀감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여성의 몸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질리도록 익숙 했지만 임신한 여성마저 그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임신은 곧 성관계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남편의 정상적인 성기능의 증거 (에이드리언 리치, 더이상어머니는 없다 p.181) 라고 인식하게 되었을 때 한 남성에게 지배 당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기혼 여성이 되어서도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죄책이 들었다. 공개적으로 남편에게 영원히 종속 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분명 임신은 신성하고 생명은 위대한 것임에도 임신한 내 몸은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몸,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몸, 사회가 비난하는 뚱뚱한 몸이 된다는 것은 파이어스톤이 기술한 바와 같이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p.287) 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가장 아이러니 한 장면은 만삭사진을 찍을 때 웨딩드레스를 입는 산모들이었다. 왜 임산부들은 짙은 화장을 하고 불편한 웨딩드레스를 입으며 결혼을 재현해 내려고 하는 것일까? 순결을 상징하는 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만삭사진을 볼 때면 ‘성욕이 박탈된 어머니’, ‘완벽하게 정숙한 여성’ (에이드리언 리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p.204) 상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임신한 여성의 몸마저 성적 대상화 하면서 웨딩드레스를 입혀놓는 아이러니.


 이토록 고통과 혐오가 가득한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은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파이어스톤의 주장처럼 여성이 출산 파업을 선언하고 인공생식이라는 대안을 내세우는게 답일까?

 



여성을 해방시키는 하나의 경험


 에이드리언 리치는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에서 "결국 파이어스톤은 너무 기술 쪽에 치우쳐 모성애와 성욕, 고통과 여성의 소외간의 관계를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p.194)" 고 그의 주장을 반박한다. 리치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가부장제도에서 남성 주도의 의술과 남성문화에 의해 행해진 것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여성이 진정한 성적 자주성을 확보하고 임신과 출산을 해석하는 관점과 과정이 달라질 때에 이것은 완전히 다른 사건, 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출산자체는 질병도 외과수술도 아니다. (같은 책 p.200) 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데에는 이것을 경험하기 위함도 있었다. 아기를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병실이 아닌 최대한 집과 비슷한 공간에서 첫 만남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해서였다. 당시에는 출산은 고통이며, 그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크던지 여성이라면 당연히 감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선택한 고통이었다. 나는 고통의 과정에서조차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견딜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 준 사람은 남편도 남자 의사도 아니다. 예전에는 산파로 불리던 둘라 선생님이 옆에서 진통을 살피고 호흡을 함께 하고 고통 경감을 위한 방법을 알려주셨다. 30시간 이라는 진통과정에서 이미 출산을 경험한 둘라 선생님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마녀사냥으로 산파와 조산사들이 사라지기 전에는 철저히 여성에 의해 조산술이 발달했다. 갑작스러운 남성 산과의가 도구와 함께 등장하여 그 기록조차 삭제되었지만, 리치는 조산원은 출산 전부터 산모에게 신체적 도움은 물론 정신적 지원도 제공하는 곳이였으며 어머니와 함께 하는 곳이었다고 밝혀낸다. 이를 바탕으로 리치는 출산이 다음과 같이 재정의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출산은 격리된 사건이 아니다. 만일 지역마다 모든 여성들이 임신과 낙태 상담, 임신여부 시험, 분만 전 치료, 진통교육,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영화, 정기적인 부인과 검진, 건강한 아기 병원을 비롯하여 임신과정과 출산 후의 치료 및 상담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여성들은 수태, 임신, 자녀양육의 전 과정에 대해, 그리고 모성애를 대체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들의 인생 전체에 대해 생각하고 읽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출산은 다양한 형태의 성욕을 전개하는 하나의 사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드시 성의 결과가 아니라, 두려움, 소극성, 신체와의 분리 등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하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책 p.205)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어 보았다. 리치가 제안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과정, 환경은 지금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임신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입증하기 위해 정상가족을 이루고 살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만약 리치가 제안하는 대로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재정의되고 재해석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감히 둘째를 낳을 도전은 못할지언정 적어도 친구나 지인의 임신 소식에 걱정보다 먼저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있어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쓸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이 된다면 파이어스톤의 주장처럼 반드시 배제하고 배척해야 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출산율을 출생률이라 굳이 고쳐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은 인공생식의 실현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공부공동체 트러블 시즌2를 마무리하는 에세이 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