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스로그]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계절마다 또는 특정한 때에 찾아보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저는 여름이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겨울에는 <캐롤>을 챙겨 봅니다. 지난 4월 개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를 보고 앞으로 여름에 볼 영화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다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나서는 ‘역시 여름엔 콜바넴’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에도 콜바넴 팬들이 굉장히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요, 개봉 당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영화를 넘어 여름의 필수 아이템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면요. 북부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완벽한 미감과 더불어 철학, 고고학, 문학을 두루 아우릅니다. 화면 가득한 여름의 빛과 함께 담아낸 티모시의 미모… 그리고 OST 또한 환상적인데 한 번 들으면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계속 머리에 맴돕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듣고 있어요!)
이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아이엠러브>, <비거 스플래쉬>와 함께 ‘욕망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무려 89세의 나이에 17살과 24살 청춘의 사랑을, 그것도 퀴어영화를 각색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죠. 서툴지만 뜨겁고, 짧지만 강렬한, 기쁘면서도 울컥한 첫사랑의 감정을 연출, 각본, 연기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이 담아낸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영화는 이탈리아의 여름을 담고 있는데요, 한여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쩐지 좀 쓸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왜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요, 영화가 그리는 청춘의 시기가 지났다는 감각 때문이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거든요. 그런데 마냥 안타깝다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저마다 나이 듦을 감각하는 순간이 다를 것 같은데요. 그 순간이 이토록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일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엘리오(티모시 역)의 아빠가 아들의 이별을 위로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가장 깊이 와닿았습니다.
“내 위치에 있는 부모 대부분은 이런 일이 없길 바랐겠지. 아들이 난관을 극복하길 바라며 기도했을 거야.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중략)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첫사랑의 상흔을 견뎌 나갈 아들에게 (게다가 그 상대가 동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줄 수 있는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있을까요?
저는 이 대사가 나이 듦을 감각한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라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스스로에게 으레 해왔던 ‘아직 젊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식의 응원보다 더 든든한 말로 느껴졌어요.
아, 콜바넴을 보고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를 보게 되다니…
진짜 제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요.
Written by 미혹되지 않을 내년을 기다리는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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