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스로그] 씁쓸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광고 메시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신청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정부와 서울시에서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시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해당 사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서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찾아왔다"며 보낸 광고였죠.
‘결국 시행되고야 마는구나’ 맥이 탁 풀렸습니다. 광고 메시지의 링크를 따라 신청 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신청을 유도하는 모순적인 홍보 문구를 읽고 있자니 수많은 질문이 떠오르며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해당 직종의 노동력이 절실하지만 내국인이 기피하기 때문에 전문 인력을 모셔와야 하는 처지 아니었던가요? 내국인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물가도 차등 적용받나요? 안 그래도 처우(급여와 사회적 인식)가 좋지 않아 내국인도 기피하는 직종인데 어느 이주노동자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차별이 기저에 깔린 노동에 과연 우리집 어린이를 마음 편히 맡길 수 있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이 떠오르는 질문 끝에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이 현대판 노예 사업처럼 느껴지는 건 또 제가 예민하기 때문인가요. 여전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서슴지 않는 나라에서 그저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더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철면피 논리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돌봄 공백을 값싼 노동력으로 메꾸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합니다. (올해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최소 119만 원(하루 4시간)에서 최대 238만 원(하루 8시간) 가량을 받을 그들이 집도 절도 없는 타국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편히 몸 누일 곳이나 있을지 제가 눈앞이 캄캄합니다. 주말이면 가사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숙하는 홍콩의 풍경이 괜히 떠오르는 것은 아니겠죠.
돌봄 공백을 최소화해 출생률을 제고하겠다며 최근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시작부터 단추를 단단히 잘못 끼우는 것 같습니다.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노동 시장, 높은 집값 그리고 지나친 교육열 등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경제적 효율성에 치중한 근시안적 정책은 ‘비혼’ ‘비출산’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 뿐입니다.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하겠다는 늘봄 학교는 어린이와 가족 공동체 그리고 노동자의 삶을 완전히 배제하였고, 남성의 육아휴직은 기간이나 급여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요.
얼마 전 초등 자녀 돌봄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는 분과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저출생 이슈를 두고 “조용한 혁명”이라 표현하시더라고요. 저 또한 이쯤 되니 매해 바닥을 치는 출생률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돌봄 노동의 가치를 묵살하고 외면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여성에게 무급으로 떠넘겨 온, 사실상 착취에 가까웠던 돌봄 노동이 몸을 불린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죠.
희망이랄 게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두 어린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자로서 답답하고 날선 마음을 오늘의 센텐스로그를 빌어 털어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글을 읽어도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대체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아래 기사도 읽어봐 주세요.
written by 사람도, 돌봄 노동도 그저 돈으로 귀결되는 데 오늘따라 더 넌더리가 나는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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