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스로그] 정치의 실패는 사랑을 무너트린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아이가 다쳤던 날 밤, 쉽게 잠에 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응급실에서도 이 책을 생각했다. 남의 불행을 내 상황을 위안하는 도구로 삼지 않고 싶었지만, 그건 본능이었다. ‘아이가 암에 걸린 사람도 있는데, 내 아이는 고작 얼굴일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책의 문장을 떠올렸다. 내 마음 또한 문장으로 계속 가다듬고 있었다. 유난히도 새하얬던 병원에서 아이의 얼굴에 생긴 상처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와중에도.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이토록 명징하게 보여주는 책이 또 있을까. 이 책에 관해 쓰려고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냥 책을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 또한 아무에게나 하고 싶지 않았다. 책 이름을 검색한 해시태그를 선배 언니한테 보냈다. 언니는 구질하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구질구질할 정도로 질문하고, 구질구질할 정도로 설명하는 것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했다.
‘어느 한쪽이 권력을 독점하고 책임을 회피하면 타협은 결렬되고 정치는 실패한다. 정치의 실패는 사랑을 무너트린다.’ (119쪽)
나의 사랑이 무너진 건 정치의 실패 때문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남편이 죽도록 미웠던 때가 있었다. 같은 노트북으로 나는 유아용 로션을 검색하고 그는 회사 업무를 할 때,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종종거리고 있는데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볼 때,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싼 아이와 새벽에 푸닥거리하고 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남편은 거기에 있었지만 없었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렇게 억울하고 화가 나 있었다. 그것이 남편 개인 혹은 남편과 내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을 알았다고 달라질 것은 크게 없지만, 그렇게는 계속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남편을 용서해 버렸다. 사과한 사람은 없는, 체념에 가까운 용서였다. 누군가 열이 펄펄 나는데, 사람이라면, 그게 남이라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이 책은 ‘국회의원 보좌진 신성아가 소아암에 걸린 아이를 돌보는 전업 간병인이 된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아서 여기까지 뜸을 들였다. 그렇지만 아이가 암에 걸리고 나서 이 ‘불꽃 같은 책’을 쓰게 된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서사를 사회적 구조와 담론으로 관통시키며,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사유와 성찰로 잘 갈고 닦아 그 본질을 더 잘 보여주는 책이다. 돌봄, 젠더, 생활동반자법, 아픈 어린이의 권리 등 사회 전반의 이슈를 폭넓게 또한 깊이 있게 다루며 각주만 세 페이지에 이른다.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쓸 수 없을까.’ 정희진 선생님이 추천사에 남긴 문장이 내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한다. 모성은 당연히 본능이 아니며 아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의리에 더 가깝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내가 그를 미워하는 건 그가 정확히 가사와 돌봄에서만 특유의 진보성을 잃기 때문이다.’(96쪽) 는 문장도 잊을 수가 없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지독히 개인적인 글쓰기를 주저 없이 권한다고 했다.
이렇게 잘 쓴 글을 보면 더 주저하기 마련이지만, 오늘도 이렇게 썼다.
Written by 무너진 사랑을 찾아 헤매는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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