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주일에 출석하는 교회 앞에 현수막이 붙었다. 방학기간 동안 교육 봉사자를 구한다는 문구였다. 내가 사는 동네 아이들과 수업을 하니 이것도 꽤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근거리에서 교육봉사를 해서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
봉사 마지막 날 나이가 지긋하신 어느 여자분이 나를 찾아오셨다. 그분의 주된 요지는 내가 수업하는 방식 그대로 아이들의 연령에 맞게 25-30명 아이들을 수업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근거리 교회 부설유치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꼬마 슬기가 아직 유치원에 다닐 나이였기 때문에 7세가 된 꼬마 슬기와 함께 영어교육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 즐거웠다.
수업이 없던 첫날, 보조 교사로 아이들을 맡아 달라고 하셨다. 내가 전에 일했던 센터에서는 영어교사에게 영어수업 외에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꼬마 슬기가 어떻게 적응하는지도 볼 겸 내가 가르칠 아이들을 보고 인사도 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날 나에게는 7세 꼬마 남자아이 K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가 지나가면 모든 아이들이 피해 다니는 것 마냥 보이는 것이 이상하고 염려돼서, 나는 K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찬찬히 보니 K가 손에 칫솔 포장박스(보통 칫솔을 사면 나오는 플라스틱과 종이)를 소매 안에 넣어 다니며 아이들에게 칼싸움을 하는 시늉을 하니 아이들이 기겁을 해서 그 아이를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K가 아이들과 놀고 싶은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꼬마 K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말을 걸어보았다. “네 이름이 뭐야? 나는 이번에 새로 여기에서 온 지니 샘이라고 해” “이거 한번 줘볼래?” 아이는 내게 성큼 그 칫솔 포장박스를 보여줬다. 나는 대뜸 “이거 볼래? 옆에를 쿡 찌르면 여기가 뾰족해서 아프잖아. 한번 살짝 만져볼래?”라고 물었다. K는 잠깐 뾰족한 곳을 손을 대보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의 표정을 살피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친구들이랑 많이 놀고 싶잖아. 그런데 이런 뾰족한 걸로 친구들과 놀자고 하면 친구들이 이게 별로 아프지 않은 건데도 무서워할 수 있어" 이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냥 놀면 어떨까?”라고 하니 꼬마 K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칫솔 껍질을 버리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역시 아이들은 밝고 선한 천사다.
알고 보니 K는 몇 년 간 그 유치원을 다닌 아이였는데 조금은 유명한 아이였다. 20-30년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원감 선생님이 봐도 조금은 다르고 가르치기 힘든 아이라고 했다. 한 선생님은 “저 녀석이 제일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는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수업에서 K의 모습을 보고 이해가 갔다.
K는 움직임이 많고 주의집중력이 약한 아이였다. 내 수업의 특성상 쉼 없이 최소 5분 이상을 나를 보고 있어야 한다. 그런 K를 나와 바로 눈이 마주치는 자리에 앉히고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K가 열심히 하면 누구보다 칭찬을 많이 해줬고 조용히 앉아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려고만 해도 한없는 칭찬을 해줬다. 그래서인지 K는 내 수업을 곧잘 따라왔다. 지금도 K가 노력하는 모습이 선하다.
어느 날 누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는 대학원에서 또 다른 대학원으로 옮기고 공부를 하느라 일을 멈춘 지 꽤 되었기 때문에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이사를 가고 내가 사는 동네와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의 교회를 다녔기에 더 알 사람이 없었고, 큰 아이가 5학년쯤 되었을 때니까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사람은 더욱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나를 부르신 분은 꼬마 슬기가 7살이 되었을 때 다니던 교회 부설 유치원, 내가 기억하는 그 7세 남자아이의 엄마였다. ‘맞다. K의 엄마였다’
나는 그 시절에도 엄마들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K의 엄마가 어떤 분이신지 만나본 적이 없다. 다만 수업에 같이 참여하여 학부모들과 아이들과 함께 진행하는 학부모 참관수업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런 나를 기억해주고 인사를 해주셔서 많이 감사했다. 하지만 내가 K의 근황을 물어보았을 때 그 엄마는 “그냥 여전하죠”라고 말했다. 내가 상상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벌써 5학년이나 된 K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염려도 되었다. 그 엄마와 아빠는 선교활동을 간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작은 지갑을 선물로 전해주셨다. 예배를 보고 내려온 북적북적한 교회에서 K 부모님과 나는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변할 수 있을까? 변할 수 없을까?
나는 아이들이 백지상태에서 태어난다고 믿는다. 물론 유전적으로 부모의 성향을 갖고 태어나기는 하지만 태어난 후의 환경적인 요소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게 된다.
백지상태는 ‘tabla rasa’라고도 하는데 철학자 로크는 인간은 원초적 상태로 태어난다고 강조한다. 이 뜻은 아이들은 백지상태 (tabla rasa)로 태어나지만, 환경과 긍정적 자극을 통해 인지가 발달되고 지혜와 지식이 쌓여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은 긍정적 자극과 환경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