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만들어 놓은 유산이라는 '틀'
고정관념 시리즈 2
어느 날 모 여대를 나온 A엄마가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일명 내가 혼잣말로 부르는 그 엄마의 별명은 '깍쟁이 엄마'다. 그 집에 방문한 날에는 큰 아이가 다녔던 영재원의 카페테리아와 파우더 룸이 문득 생각났다. 여대의 식당과 카페 안에 있는 파우더 룸과 드라이기를 생각하며 '여자들만 다니는 대학이니 이런 배려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앞서 말한 '깍쟁이 엄마'도 그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온 엄마이다.
내가 그 엄마를 깍쟁이라고 유독 부르는 이유는 앞 동에 같은 반 친구가 사는 것을 알아도 그 친구네와 왕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깍쟁이 엄마의 앞 아파트에 사는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사실 나는 이 모든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엄마들과 많이 몰려다니는 엄마는 못된다.
이런 깍쟁이 엄마가 나를 초대했으니 무슨 일이라지! 미술 관련 일을 해서 그런지 호텔식처럼 테이블보도 천으로 예쁘게 세팅을 하고 망고에, 티, 커피, 예쁘게 자른 떡까지 그냥 마음 편하게 온 나에게 조금은 부담을 갖게 하는 그런 자리였다. 그 깍쟁이 엄마는 나에게 이런저런 학교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도 기대 이상의 초대 준비에 나름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 엄마는 미술작품들을 자신의 딸에게 남겨주고 싶어 했다. 그것이 유산이 된다는 이유였다. 나에게는 다소 생소했지만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고 그림 수집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작품이 상당히 호가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 엄마와 나누고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깍쟁이 엄마는 처음 만났을 때도 "저는 ㅇㅇㅇ동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헐랭... 내가 묻지도 않은 질문의 답을 쏟아내는 통에 그런 이야기에 별로 관심도 없고 스스럼없이 직격탄을 날리는 나는 "그러세요. 잘하셨네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묻지도 않았지만 나는 대뜸 "저는 ㅇ동에 산 적이 있는데, ㅇ동에도 살았고요"라고 설명을 했다.
"원래 ㅇ동이 더 좋다고 그러던데 그거 알아요? 우리 큰 아이 역사 선생님이 알려주셨다는데 ㅇ구, ㅇ구, ㅇ구 중에 ㅇ구가 제일 좋은 동네였대요. 사실 ㅇ동이야 개발된 이후로 아파트값이며 땅값이 올라서 그렇지 뭐, 역사가 있는 동네가 더 멋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셔요?"라고 물었던 나를 보고 그 엄마는 꽤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이런 말을 불쑥불쑥 하는 나의 모습과 생각, 그리고 큰 아이와 막내를 보고 나를 초대했던 것은 아닐지 문득 생각해본다.
잠깐 막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막내는 공부를 위한 사교육을 하지 않고 영어유치원도 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막내는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이나 외국생활을 오래 한 친구들보다 성적이 더 좋았다. 영어 발음도 빠~다 (버터) 바른 것 마냥 좋아서 다들 막내는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영어유치원을 다녔던 아이로 착각한다. 7-9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보다, 이 깍쟁이 엄마처럼 직접 같이 공부를 하고 준비를 했던 막내 친구들보다, 막내 과학 성적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그 사실도 그 깍쟁이 엄마가 말해주어 알았다. 워낙 큰 아이 때부터 교과서를 열어보거나 성적을 관리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아이들이 알려주는 성적이 B이상이면 잘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B는 이해는 하는데 “A와 B의 차이는 집중과 노력의 차이긴 해”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리고 최근 제주 국제학교에 입학하여 3일간 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학교를 그만두고 나오기로 마음먹은 막내의 이야기를 들으러 제주로 향했다. 학교를 여러 번 전학하고 월반을 해도 한 번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막내가 제주에서는 하루 만에 울기 시작했고 평소 잘 찾지 않는 엄마를 찾아 울먹이며 틈만 나면 전화를 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이미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는 책 한 권도 편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밤 10시만 되면 소등하는 기숙사의 엄한 문화와 그 기숙사 사감 교사들의 행동들에 막내가 적응하기 조금은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10명의 학생 중 7명은 외국 명품 브랜드를 갖고 다닌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학교 앞에 즐비한 외제차의 행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제주까지 자신의 차를 몰고 간 그 행동도 이해가 안 가지만 무엇보다 나이에 맞지 않은 명품들을 아이들에게 신기고 사주는 부모들의 모습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유산은 무엇일까?
유산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 상속에 의하여 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뜻한다. 사춘기 시절 여성잡지에도 여러 번 나왔던 나의 어머니는 "나는 너희들에게 돈을 남겨주지 않을 거야. 다 사회에 환원을 할 거야"라고 하셨다. 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던 나에게는 그 말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누가 뭐래. 집에나 있지. 누가 저리 과외교사를 또 바꿔 달랬나. 누가 학교 걸스카웃에서 부회장이 되라고나 했나. 참 나는 그저 조용히 있다 오고 싶은 걸스카웃 학생인데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워"라는 말만 속으로 되삼 켰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제주 국제학교 엄마들과 그 깍쟁이 엄마는 다소 다르다. 그 깍쟁이 엄마는 나에게 "저는 비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게 이해가 잘 안 가요. 그냥 저희 아이도 어디에 보낼지 고민을 해요. 하지만 문·이과를 나눠서 공부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두루두루 좋아하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엄마처럼 공부 늦게 하면 힘들다. 공부는 제때 해야 해. 엄마는 나눠줄 돈이 없어서 너희들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해. 그리고 명품이 너무 많으면 그것은 낭비일 수 있지만 반대로 없으면 슬플 수도 있으니 세일할 때 유럽에 가서 사면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반의 반의 반 가격 이하로 살 수 있대.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이라고 하면 가격을 올려 받아도 그냥 산다고 하더라. 사고 싶으면 외국에 가서 아웃렛에 가서 사자" 라는 말을 가끔 한다.
우리가 자라날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유산은 경쟁, 사교육, 학벌, 돈, 지위, 집, 차 이런 것들일까? 아니면 돈보다는 자신감, 자존감, 함께 하는 마음 등을 남겨줘야 할까? 당연히 정답은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전자나 후자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거기에 창의력과 추진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라는 생각도 한다. 재산이야 마음만 먹으면 금방 탕진하고 돌아올 수도 있고 돈이 너무 많은 대기업 자녀들을 보면 정상범위를 넘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매스컴에 나오기도 하니 그런 극단적인 것과 비교하자면 유산이 없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