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예쁜 틀'로 넣으려 한다
고정관념 시리즈 1
우리 막내는 쿠키 만드는 걸 참 좋아한다. 그래서 막내는 용돈을 모아서 쿠키틀을 사곤 한다. 쿠키 반죽을 정성스럽게 한 후 예쁜 모양 틀에 반죽을 넣고 굽게 되면 가지런히 놓인 예쁜 쿠키가 완성된다. 하루는 이렇게 구워진 쿠키들을 보며 ‘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의 눈, 주변의 기대와 부모의 가치관에 의해 성장하며 나만의 가치관을 갖게 된다. 가치관은 심리 가치에 대한 관점, 즉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인 태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당당하게 G20 국가에 들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급격한 경제발전 속에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무분별한 악플, 나와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 친구들 간의 왕따, 무한 경쟁 등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 변동이 매우 빨라지면 그 사회에는 심각한 가치관의 충돌과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특정한 생각이 굳혀지면서 '고정관념'이 생기게 된다.
고정관념의 뜻을 살펴보면 잘 변하지 아니하는 행동을 주로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이라고 한다. 또한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어느 특정 집단을 고정관념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지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런 말들을 들어왔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을 간다."
"일류대를 가야 성공을 한다."
"착한 친구와 놀아라."
"공부 잘하는 친구가 착한 친구다."
"엄마, 아빠가 일하는 친구랑은 같이 놀지 말아라.”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위의 예시는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 이야기일 것이라 단언한다. 나 또한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런 말을 들으며 자라온 나는 아이들에게만은 나의 생각을 주입하거나 내 말이 다 맞다고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생각이 커져. 생각주머니를 키워. 너는 어떻게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니?”를 물어보고 아이들의 생각을 더 확장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잘 키워나갔다.
하지만 나의 고정관념이 아이들에게 설파되었던 부분도 여럿 있다. 나는 유년시절 이민 등을 경험하며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으니 진짜 공부는 대학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권장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와 탈 공교육을 결정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최선이었고 최고였다고 자부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다소 달라졌다. 인터넷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설명하고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의 영상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살면서 고정관념으로 인해 내가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나의 동생과 동생 친구를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어 인연이 끊기게 되었다. 이혼을 준비 중이었던 그 친구가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내 동생이 걱정된 나머지 “00야, 내 동생을 너처럼 물들이지 마라. 정말 부탁한다”라고 내가 말했다고 동생이 전해줬다. 사실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도 없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 동생은 내게 그 이후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는 반대로 내가 상처를 받은 기억도 있다. 일을 하는 엄마로 인해 집에서 주로 나 혼자, 아니면 동생과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6층 복도 아파트에서 친구 엄마는 “윤희야, 너 쟤랑 놀지마!”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너무 놀랐고 창피했다. 내 친한 친구도 그 소리를 듣고 난감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친구와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었는데도 나의 어리석은 고정관념으로 그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또 내 동생에게도 좋은 인연이 되었을지 모르는 관계를 끊어버린것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왜 우리는 이런 고정관념, 가치관으로부터 상처를 주고 받을까?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독일, 핀란드에서는 대학교가 서열화되어 있지 않다. 네덜란드에서는 배관공이 의사만큼 인정을 받고 대우를 받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독일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만 대학을 들어가고 그 외에는 직업학교가 있다. 이러한 나라의 공통점은 대학 진학을 위한 무한경쟁이 없고 사교육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행복한 아이들이 있는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여러 인플루엔서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그런 사람들을 좋게 보기 시작한 것 같다. 학벌 중심보다 실패자들이 다시 일어나서 변화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더 주를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