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예전에 일본에서 사 온 키티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마신다. 이 시간보다는 조금 일찍 일어났다.
키티를 보면 친구 두 명이 기억난다. 한 명은 홍콩 국제학교를 다니고 스위스에서 공부해서 한국에서 일하다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던 남편을 만나게 돼서, 현재는 아이들을 미국에서 낳고 사는 교포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처음 갖게 된 내 시티폰에 키티 스티커를 몽신 붙여주며 꾸며준 것을 시작으로 나의 키티 사랑은 초등학교 시절 이후 다시 시작되었다.
다른 한 친구는 키티를 좋아하는 내게 "나는 키티를 너처럼 안 좋아해.."라며 큰 아이가 어릴 때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고 헬로우 키티 대신 멜로디 가방을 선물로 준 친구가 기억난다. 그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정말 열심히 살더니 20대에는 회사를 다니며 다른 일도 하는 투잡을 하더니 30대에는 회사를 차렸다.
그래서 나는 산리오의 헬로우 키티와 멜로디를 좋아한다. 그 외에도 여러 캐릭터들을 좋아하지만. 특히 이 두 캐릭터를 더 많이 좋아한다. 오늘따라 이 친구 둘이 기억난다.
나의 어머니는 드라마를 내가 30살이 되도록 우리들 앞에서 본 적이 없으셨다. 여성으로 이 험난한 사회에서 일을 하시느라 보통 아줌마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도 여유롭게 보시지 못하고 사셨던 게 아닌가 싶다. 가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도 드라마를 보려고 앉아서 여유를 부려본 적이 없었다.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는 여유롭게 드라마도 보고 가끔 영화도 본다.
출처: ENA
요즘 보는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 <유괴의날>에는 GOD의 윤계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데 윤계상의 연기도 담백해서 좋고 표현방식도 좋다. 무엇보다 윤계상이 납치범이 되어 천재소녀를 납치했는데도, 그 소녀를 자신의 딸처럼, 보호하고 목숨을 걸고 그 아이를 지키는 것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왜 이 윤계상이라는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 천재소녀를 목숨처럼 지킬까?"
이런 질문을 계속 스스로 하며 보았던 그 대답을 어제 윤계상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었다. 윤계상의 말은 아주 간단하리만큼 간단했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아이잖아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납치한 아이를 지키는 이유가 너무 간단하지만 가슴이 아프다.
아이잖아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이..
아이들을 만나러 분당 어느 중학교로 찾아갔을 때, 한 학생이 컴퓨터를 챙기고 있던 나에게 교탁으로 다가왔다.
"샘은 왜 이런 걸 하시는 거예요?"
아주 뜬금없는 질문이어서 당황했지만 내 마음을 솔직히 내보였다.
"네가 나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나도 그 아이에게 질문을 했지만 내가 생각한 답은 아니었다. 그냥 네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그게 맞아. 그게 너 안의 답인 거야,라는 말을 해줬다.
그래서 나도 내 경험과 아이들의 경험을 쓰려는 이 어마무시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고 하늘에 기도하며 어제 들었던 Above all 을 듣는다.
Above all 찬양을 듣는데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을 오르실 때 인간들에게 당하던 그 수치와 치욕을 당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저게 가능해?..' 내가 처음 그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장면이 생각난다.
성경을 읽을 때 가끔 읽는 구절이 머릿속에 상상이 돼서 한 장면처럼 각인될 때가 있다. 소설책도 읽다 보면 가끔 그 장면이 상상이 갈 때가 있는 것처럼..
성경책을 처음 읽고 신약을 여러 번 읽으며, 이거 가짜라면 희대의 사기극 아니야? 라며 읽을 때도 있었다. 하늘에 묻지도 부탁하지도 않았던 신기한 여러 체험을 하며 나는 신기하리만큼 하나님을 나의 유일 신으로 믿고 있다. 어떻게 하면 거저 받은 그 사랑을 보답할 수 있을까. 오늘도 하늘에 묻고 기도한다.